맺는말

고구려, 백제, 왜의 연합이 신라와 당의 연합과 부딪친 백강 전투는 이후 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꾼 대규모 국제 해전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한 채 의견이 분분해왔다. 이제 백강 전투의 정확한 지점은 행안면과 상서면 사이의 들판이라는 주장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여러 사서들의 본 기록들과 맞아들어가는 지리적 환경은 부안을 제쳐두고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기벌포를 또한 백강이라 했던 <삼국사기>의 기록이 그러하며, 백강의 오른쪽 언덕의 산에 진을 쳤다는 위 별기의 기록 또한 그렇다. 동진강 하구는 백산을 제외하면 산이 없는 완전 평야지대이다.

또한 위에서 조사한 이 지방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들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동진강은 이곳에서 부안을 지나 15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동진강과 이 곳을 정확히 구분을 하지 못한 채 중국이나 일본의 사서에 '백강'으로 기록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계화도에 먼저 상륙한 당군은 이곳을 거점으로 부안읍에 있는 상소산을 중심으로 한 동진강 하구에서 상서면에 이르는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이 지역을 통해 뭍에 올랐던 것이다. 이는 평원광야에서 '적을 맞으면 승패를 알 수 없다'고 예언했던 충신 흥수의 말과도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다. 즉 당군은 평지에서 백제군을 맞아 싸우기를 원했던 것이다.

한편 변산의 천연의 요새지에 웅거하던 백제는 유정자 고개를 최후의 보루로 삼아 3년 동안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이곳이 무너지자 백제의 사직도 마침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