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의 나루(津)

    나루는 강이나 냇가,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일정한 터 즉 장소를 말한다. 배로써 사람, 또는 물자를 실어 나르기 때문에 나르는 곳이라는 뜻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기에 도(渡), 진(津)이라 하였으며, 이보다 좀더 큰 규모면 포(浦), 더 큰 바다 나루는 항(港)이라 하였다. 역사적인 먼 옛날의 나루로는 백제(百濟)의 두 번째 도읍지 이름이 곰나루(熊津)로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公州)지방의 금강(錦江)나루였음을 알 수 있고, 우리 부안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나루로는 동진강 하구, 지금의 동진대교(東津大橋) 자리에 있었던 동진(東津)나루였다. 동진나루는 1970년대 말경까지도 있었으며, 숫한 …

다시 풍어를 기원하며, 원당제-용왕제-띠뱃놀이 속으로

위도면 대리마을의 정월초사흗날 풍경 “돌아보건대, 무릇 대저항리(대리의 옛이름)의 원당은 큰 바다의 험준한 봉우리 위에 위치하여 신령스럽고 기이한 기운이 특별히 이곳으로 모여들어,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숭배합니다. 당신(堂神)이 신령하여 O…O 기도가 있으면 반드시 응답하니, 팔도 연로(沿路)에 있는 큰 O…O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O…O, 모두들 그(堂神)의 그윽한 가호를 받아 재물이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향과 예물을 올려 축원하기를 누가 정성껏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원당을 세운 지가 이미 오래되어 비바람이 새고 스며들어 보수하여 고치는 것이 시급한데, 재력이 넉넉하지 못하여 마음 속의 경영한 바를 괴롭게도 (실현할) 좋은 방도가 …

부안의 원(院)-동진원(東津院), 금설원(金設院), 수세원(手洗院)

    조선조 시대에 부안에는 원(院)이 세 곳에 있었다. 동진원(東津院)과 수세원(手洗院), 금설원(金設院)이 그것이다. 원(院)이란 공적인 임무로 지방에 파견되는 정부의 관리나 상인 등의 공공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던 시설로서 국가에서 경영하는 일종의 여관이었다. 지방도로의 요처나 인가가 드문 곳에 나라에서 원을 설치하였는데 역참(驛站)의 일부 기능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역참에서도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부안현의 역원조에 의하면 <부흥역: 현의 서쪽 2리에 있다. 동진원 : 동진의 언덕에 있다. 수세원: 현의 남쪽 60리에 있다. 금설원: 현의 남쪽에 있다.> (扶興驛 在縣西二里, 東津院 吊津岸, 手洗院 在縣南六十里, 金設院 在縣南)라고 …

강,물,흐,르,듯,이,

      60년대 중반에는 선산이 있는 백산면 대수리로 손수 토담집을 지어 거처를 옮겨 살았다. 분단된 한국에서 작은 고통이라도 분담한다는 자세로 초라하고 고독한 생활을 시작했다. 집 앞에 자그마한 화단을 가꾸고 유난히 꽃과 나무와 자연을 사랑하여 잘 키운 꽃들을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고 여러 차례 지리산 천왕봉과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했다. 그렇지만 지운이 고국의 독립을 위해서 사회주의를 택했던 까닭에 분단된 한반도에서는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나라 잃었던 식민지 시대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상 전위에 서서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넘나들며 죽음을 무릅쓰고 힘쓰던 독립운동가에게 …

역참(驛站)

    고려시대에도 부안지방에 역참(驛站)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 하면 고려시대의 역참조직의 자료에 의하면 전라도(全羅道)지방에는 전공주도(全公州道)에 속하는 역참이 21개소, 승나주도(昇羅州道)에 속하는 역참은 30개소, 남원도(南原道)에는 12개소가 있었는데 부안지방의 역참인 부흥역(扶興驛)은 어느 도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제(金堤)의 내재역(內才), 고부의 고원역(苽原․瀛原․鶯谷), 정읍의 천원역(川原), 고창의 청송역(靑松․茂長), 태인의 거산역(居山), 임피(臨皮)의 소안역(蘇安) 등 부령과 보안현을 중심으로 한 그 주변 고을의 역참들은 보이지만 부안지방에 있었음직한 역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미루어 보건대 고려시대에 부안지방에도 역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역참과 그 기능의 일부가 비슷한 …

안정을 찾아가는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숲-소나무숲과 진달래

    보통 나무를 그릴 때 잎은 초록색, 줄기는 갈색으로 그린다. 하지만 이 초록색도 여러 가지가 있다. 연두색, 녹청색, 청록색 등… 물감으로는 만들 수 없는 색들을 자연은 만들어 낸다. 참나무류나 생강나무는 새잎이 나올 때 잎 전체를 하얀 잔털로 감싸고 나오기 때문에 멀리서 바라보면 솜털을 뒤집어 쓰고 있는 듯 은색으로 보인다. 여린 잎을 찬바람에서 지켜내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느티나무, 까치박달, 소사나무 등은 연한 녹색을 띠다가 잎이 커지면서 점점 색도 진해진다. 이처럼 자연은 처음부터 강렬한 색으로 세상에 인사하지 않고 자신을 조금 낮추듯 …

“어! 나무에 쏘세지가 열렸네” – 부들

    부들을 보노라면 어릴 때 빈병이나 떨어진 고무신, 찌그러진 양은냄비와 바꿔먹던 ‘아이스께끼’가 생각난다.’ 팥을 갈아 넣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팥 색깔 나는 물에다 나무젓가락을 꽂아 얼린 얼음과자인데 부들같이 생겼었다. 그런데 이 요물이 어찌나 맛이 있던지…, 이런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내가 언젠가 방죽에 핀 부들을 보고 아이에게 물은 적이 있다. “저게 뭐같이 생겼니?” 아이는 “어! 나무에 쏘세지가 열렸네!” 하는 것이었다. 아! 그렇군. 요즘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자라는 아이들이 1960~70년대의 아이스께끼를 알 리가 없지. 생긴 거야 쏘세지가 훨씬 더 …

갯벌에 묻힌 줄포항

  줄포는 조기어장으로 유명한 칠산어장의 입항으로 목포나, 군산보다도 먼저(1875년) 항만이 구축되었다. 1900년대 초에는 제물포(인천), 군산, 목포와 함께 서해 4대항으로 꼽히었고, 대상(大商) 객주만도 5,6명이 머물렀을 정도로 번창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는 어업조합이 들어서고, 상권은 일본상인들이 주도했다. 이때 일본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헌병분소가 파견되어 있었다. 지금의 삼양사 모태인 도정공장도 이 무렵에 들어 섰는데 인부만도 수 백명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항구가 번성하자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경찰서, 우편국, 식산은행(출장소), 곡물검사소, 소방서, 남선전기, 어업조합, 줄포운수, 신탄조합, 줄포공립보통학교 등 15개 기관과 일본인 업소 30여 곳, 중국인 포목상과 음식점만도 …

“내변산 ‘실상사’ 사진을 찾습니다”

    변산의 4대사찰 ‘실상사’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많은 역사가 스쳐갔지만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꿋꿋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깊고 장엄한 산세와 계곡, 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물과 폭포, 기묘한 암봉과 암벽들, 산자수명한 많은 절경과 명승지가 있으므로 오랜 역사의 향기를 뿌리면서 전설과 신비를 간직해왔다. 이 곳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에는 산과 어울려 역사를 함께한 사찰 ‘실상사’가 있다. 내변산의 직소폭포 가는 길, 천왕봉과 인장봉 사이에 자리 잡은 실상사는 변산반도 4대 사찰 중의 하나로 신라 신문왕 9년(689)에 초의스님이 처음 짓고 조선시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