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사 응진전 16나한상

  개암사 응진전의 열여섯 나한들을 보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봉안하였으며, 그 좌우로 금강경, 새끼호랑이, 염주, 경전 등을 들고 다양한 자세를 취한 나한들을 배치하였는데, 각자 너무 재미있는 표정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나한상은 조선 숙종 3년(1677)에 조성한 것으로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작품이다. 나한의 크기는 대략 92cm에서 98cm 사이, 옷은 최근에 색칠한 것이다.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3년 02월 26일

궁안리 ‘쌍조석간 당산’

  부안에 멋쟁이 할머니 당산이 있다. 계화면 궁안리 대벌 마을을 지키는 쌍조석간 당산이 바로 그 멋쟁이 할머니 당산이다. 그렇다면 이 할머니 당산이 왜 멋쟁이란 말인가? 영조 25년(1749)에 세운 이 당산은 높이 3.6m, 밑둘레 2.4m의 거대한 화강석 기둥 위에 한 쌍의 새를 앉혔는데, 그 모습이 매우 특이하고 멋있다. 또, 할머니 당산 곁에는 보조신인 할아버지 당산이 서 있는데, 이 할아버지 당산은 3년마다 마을 뒤 구지산에서 큰 소나무를 베어다 세운다. 할머니 당산은 3년마다 새 할아버지를 짝으로 맞아드리는 셈이다. 그러니 멋쟁이일 수밖에… 이곳 당산제 …

우동리당산제의 신랑신부

    우동리 당산제는 다른 지방의 당산제에 비해 특이한 점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줄다리기 전에 치르는 혼례의식이다. 올해 신랑은 우동리 부안김씨 종손인 김종덕 씨가 신부는 우동리에서는 제일 막동이 (54세, 이름은 경황이 없어 못 물어봤다. 다음 기회에…)라는 중년 남자를 뽑았다. 이는, 여자는 달거리를 하기 때문에 부정하다하여 남자로 신부를 삼는다고 한다. 올해 신부로 뽑힌 이 중년남자는 어찌나 걸판지고 재담이 넘치는지 좌중에게 연신 폭소탄을 날린다. 줄다리기는 남북(남과 여)으로 나뉘어 하는데, 암줄과 숫줄의 고를 연결하기 전에 신랑 신부는 각기 자기 편의 줄 …

도청리 당산제

  아직도 부안에는 여러 마을에서 당산제를 올리고 있다. 그 중의 한 마을이 변산면 도청리 도청 마을로 한 해도 빠짐없이 치르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치르겠다고 이백연 씨는 말한다. 그런데 이 마을도 전라도 말로 심이 팡기기는 마찬가지다. 해마다 마을 주민이 줄기 때문이다. 용줄도 제대로 못 메 줄이 추욱 늘어질 정도다. 그래서 인근마을에서 힘을 보태 와야 한다. 그러다보니 풍물도 여성들이 큰 몫을 한다. 그런데 판은 작아도 이보다 신명난 판은 없다. 오죽하면 거동도 불편한 80이 넘은 상노인 한 분은 기어코 쇠를 잡고 옛 가락을 …

까치댕이에서 보름달 만나다

  보름날은 매년 찾아오지만 집에서 먹는 찰밥과 나물반찬 빼놓으면 보름달은 없다. 어렸을 때 연을 날리다가 보름 전에는 액맥이를 해서 연줄을 끊어버린다. 다음날 학교에 가면 멀리 사는 친구들이 자기집 나무에 연이 걸려 있다는 말을 듣고서도 아마 내 연은 누구도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날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원에 살 때는 방패연을 많이 띄웠고 정읍에 살 때는 가오리연을 날렸다. 가오리연을 만들 때는 대나무를 적당히 다루고 연줄과 꼬리로 징평(평형)을 맞추어서 만든다. 연줄 싸움을 위해서는 연줄에다 풀도 먹이고 할머니가 쪼아준 사금파리를 연줄에 먹이곤 했다. …

‘봉래구곡작전’과 실상사

  문헌에, 변산의 4대사찰로 내소사, 선계사, 청림사, 실상사를 꼽았다. 청림사는 古청림사와 新청림사가 있는데, 고청림사는 서운암 가마소 가는 길에 있었으며, 지금 전라북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개암사 지장전에 모셔져 있는 청림사석불좌상이 이곳 고청림사지에 있었던 석불이다. 신청림사는 지금의 청림마을에 있었던 절로 언젠가 소개했던 내소사고려동종이 나온 절이다. 여러 정황이나 절의 규모로 미루어 볼 때, 위의 4대사찰 중의 하나인 청림사는 신청림사인 듯 하다. 선계사는 우반동 선계안골에 있었던 절로 1850~1870년 무렵에 제작한 변산 고지도에 선계사가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조선 말기까지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내소사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니 …

[오! 주류성-7] 원효가 변산에 온 까닭

    개암사 뒷산이 이고 있는 울금바위에는 남. 북. 서 3곳에 굴실이 있다. 북쪽의 굴실은 3곳 중 제일 협소하며 백제부흥운동 당시 군사들을 입히기 위해 베를 짰다해서 베틀굴이라 전해오고 있으며, 서쪽의 굴실은 3곳 중 가장 큰 굴로 역시 백제 부흥운동 당시 복신이 병을 이유로 나오지 않았던 굴이라하여 복신굴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남쪽의 굴실은 바위절벽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지표에서 20여 미터나 되는 암벽중간에 있어 사다리가 없이는 도저히 오를 수가 없는 곳이다. 굴실의 크기는 6∼7평정도이고, 이 석굴 바로 옆에 3평 크기의 또 하나의 굴실이 …

[오! 주류성-6] 주류성(周留城)과 백강(白江)은 부안에 있다

    국어사전은 주류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충청남도 한산(韓山)에 있었던 백제의 성. 백제가 망한 뒤 유신(遺臣)인 복신(福信)·도침(道琛) 등이 백제 부흥을 위하여 웅거하던 곳. 처음 유인궤(劉仁軌)의 나당(羅唐)연합군의 공격을 크게 물리쳤으나 복신·도침의 내홍(內訌)으로 죽고, 증원된 나·당(羅唐)의 수륙(水陸) 대군의 공격을 받아 의거(義擧) 4년만인 663년에 성이 함락되었음.”/새 우리말 큰사전(삼성출판사) 또 다른 문헌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제 말기의 성. 일명 지라성(支羅成)·두량이(豆良伊)라고도 한다. 백제 멸망 후 복신(福信)·승려 도침(道琛) 등이 부흥운동을 하던 근거지로 신라 문무왕 1년(661)에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한때 전세가 유리하였으나 부흥군 지휘자 사이의 반목으로 …

[오! 주류성-5] 주류성(周留城)과 백강(白江)은 어디인가?

    662년 총력을 기울인 두량이성(豆良伊城) 싸움에서 백제부흥군한테 패한 신라는 타격이 컸다. 당군이 백제부흥군에 포위되어 곤경에 빠진 틈에 독자적으로 백제부흥군 세력을 발본색원하려던 태종무열왕의 야망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패전 충격으로 인해 태종무열왕은 통일의 웅지에 불을 당겨 놓고 아직 그 귀결을 보지 못한 채, 태자 법민에게 마무리과업을 물려주고 죽고 만다. 이처럼 백제부흥군은 두량이성 싸움 승리로 기세를 떨쳐 백제 부흥도 눈앞에 두는 듯 했으나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복신이 모반하지 않을까 의심한 풍왕은 복신을 죽이는 자중지란에 빠지게 된다. 이때의 상황을 <구당서>백제전 용삭2년조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