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부안이 낳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 시인 이매창의 시세계 부안읍의 진산인 성황산에 있는 서림 공원 입구에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 매창(梅窓)의 시비가 있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매창 시비에 적힌 시조> 이화우(梨花雨)에서 추풍낙엽으로 이어지는 시간적 이별이 일순간 천리 공간을 뛰어넘어 그리운 임에게로 향하고 있다. 매창이 유희경과 이별하고 지은 이 시조는 <가곡원류>에 실려 전하는데 이별가로서 이보다 더한 절창(絶唱)이 또 없을 듯하다.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 시인으로 평가받는 …

한국 초상화의 마지막 거장 채용신이 그린 “간재 전우” 초상

    간재(艮齋) 전우(田遇, 1841~1922)는 어려서부터 학문이 뛰어났으며 스승 임헌회를 따르며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여러 벼슬을 제수 받고도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 았다.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수구파 학자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개화파로부터 전우를 죽여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전통적인 도학의 중흥만이 국 권회복의 참된 길이라고 여기고 부안, 군산 등지의 작은 섬에서 학문을 폈으며, 72세부터 82 세에 죽을 때까지 계화도에 정착하여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었다. 그는 전통적인 유학사상을 그대로 실현시키려 한 점에서 조선 최후의 정통유학자로 추앙 받고 있다.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은 …

未聞金堤西津, 聞於扶安東津

    지금의 동진대교가 있기 전에는 그 자리에 나루가 있어 배로 강을 건너야만 했다. 이곳은 부안군내에서도 대표적 나루로, 이 나룻터에는 뱃사공이 나룻배와 더불어 연중 대기하고 있다가 길손들을 건네주는 일을 해왔다. 그들은 세습하여 뱃사공 노릇을 하였는데 정기적, 항시적으로 이용하는 주민들이 거두어 주는 뱃새경과 외지인들에게서 받는 선임(船賃)으로 생활을 유지했다. 뱃새경은 이용하는 횟수에 관계없이 근처 주민들은 한 가구당 1년에 보리 1말, 또는 5되씩 2회에 걸쳐 부담해야 했다. 이렇듯 동진나루의 수입이 꽤 좋다보니 그 관할권을 놓고 부안의 원님과 김제의 원님 간에 송사가 벌어졌다. 동진강이 …

항일독립투사 아나키스트 백정기 의사

  나의 구국일념은 첫째 강도 일제(日帝)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쟁취함이요. 둘째는 전세계 독재자를 타도하여 자유평화 위에 세계 일가(一家)의 인류공존을 이룩함이니 공생공사(共生共死)의 맹우(盟友) 여러분 대륙(大陸)침략의 왜적 거두의 몰살은 나에게 맡겨주시오 겨레에 바치는 마지막 소원을 중국 상해에서 백정기 의사가 1933년 3월 17일 의거한 날 침략거두 아리요시(有吉) 일파 도륙을 모의하며 동지들에게 남긴 말이다.     6월5일,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에서는 항일 독립투사인 구파(鷗波) 백정기(白貞基.1896-1934 ) 의사 의열사 준공식 및 영정 봉안, 동상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백씨 종친회와 유족대표, 영원면 주민들, 정읍시민 들, 광복회원, 보훈처 …

내소사 고려동종의 용뉴

  우렁찬 종소리의 근원, 범종의 용 용은 장식 위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범종을 메달기 위한 목적으로 종 위쪽에 만들어 놓은 장치를 종뉴라 하는데, 대부분 용의 형상을 취하고 있어 용뉴라고도 한다. 그런데 종 위에 앉아 있는 용을 특별히 포뢰(蒲牢)라고 한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에 의하면 포뢰는 용의 또 다른 화현(化現)이다. 포뢰는 바다에 사는 경어(鯨魚 ; 고래)를 가장 무서워하여 그를 만나면 크게 비명을 지른다고 한다. 종은 그 소리가 크고 우렁차야 한다. 옛사람들은 포뢰 모양을 만들어 종 위에 앉히고 경어 모양의 당(撞)으로 …

[영남엔 곽재우, 호남엔 김홍원] 영욕으로 점철된 김홍원의 일생

  치적에 대한 엇갈린 평가 그러나 김홍원의 관리로서의 삶이 그렇게 영광스러운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후에 그는 위의 평판과 전혀 상반되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사헌부 관원들은 그를 관직에서 파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한 예를 살펴보자. 그는 선조 39년(1606) 8월에 원주목사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같은 왕 40년(1607) 7월에 사헌부에서는 그를 파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계를 올렸다. 원주는 관동의 큰 고을로 목사가 조방장까지 겸하고 잇기 때문에 직임이 몹시 중대합니다. 따라서 진실로 적임자가 임명되지 않으면 (이 지역을) …

개암사 대웅보전은 법당인가, 용궁인가?

  개암사 법당(대웅보전)은 용궁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다른 절의 법당에 비해 유난히 용이 많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는(혹 틀렸을지 모르니 다음에는 정확히 세어서 메모해 두리라), 천정 사방에 한 마리씩 네 마리, 동서 보에 한 마리씩 두 마리 천정 중앙에서 석가모니불을 호위하는 다섯 마리의 용이 있고, 또, 닫집 안에 다섯 마리의 용이 석가모니불을 호위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당 안에만 열여섯 마리의 용이 있고, 법당 밖 용두까지 합하면 도합 열여덟 마리의 용이 이 법당을 수호하고 있다. 불국정토로 인도하는 사찰의 수호신-용 사찰에서 가장 흔히 …

칠산바다 수호신 ‘개양할미’

  칠산바다 수호신 ‘개양할미’ 변산반도는 노령산맥이 서해를 향해 달리다가 우뚝 멈춰 선 형국으로 서해상에 깊숙이 돌출되어 있다. 이곳 변산반도 서쪽 맨 끝지점(변산면 격포리 죽막동) 해안가 높은 절벽 위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 수성당이 있다. 이 당집은 女海神 개양할미를 모신 곳이다. 개양할미를 서해를 관장하는 聖人으로 여겨, 水聖을 모신 堂집이라고 부르게 된 게 아닌가 한다. 전설에 의하면 개양할미는 딸 여덟을 낳아 칠산바다 각지에 시집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았다하여 수성당을 구랑사(九娘祠)라고도 불렀다 한다. 그리고 개양할미는 키가 매우 커서 굽나막신을 신고 서해를 걸어 다니면서 수심을 재고, 풍랑을 …

개암사 대웅보전 ‘귀면’

  사악한 무리를 경계하는 벽사의 화신 사찰 법당의 안팎에서 흔히 다리도 없고 팔도 없고 몸뚱이도 없는, 오직 얼굴만 보이는 물상을 만나볼 수 있다. 주로 법당 전면 문짝의 궁창이나 처마 밑, 기둥머리, 창방, 평방, 불단 등에 장식되며 그림이나 목각(木刻)의 형태로 되어 있다. 이 물상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눈은 반구형으로 돌출되었고 코는 중앙에서 넓은 자리를 차지하며 높이 솟아 콧구멍이 드러나 있다. 귀와 수염, 머리카락을 갖추고 있으며 눈 위쪽 좌우에는 큰 뿔이 솟아 있다. 입을 크게 벌려 커다란 치아를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아래위로 …

벼농사 문화의 발상지-부안

위의 두 볍씨자국토기편은 전영래 박사가 습득, 소장하고 있다. 부안의 문헌에 볍씨자국토기편은 보이는데 사진자료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전영래 박사를 수소문해 여쭈어 봤더니 당신이 소장하고 있노라고 했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박사님 댁을 방문하여 찍은 사진이 위의 사진이다. 박사님은 ‘출토’가 아니라, ‘습득’이라고 ‘습득’을 유독 강조 하셨다. 김제 벽골제 민속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볍씨자국토기편은 위 사진의 것을 모조한 것이다. 말 나온 김에 하는 얘기지만, 김제 벽골제 민속박물관에 들를 때마다 김제가 부럽기만 하다. 3면에 바다를 끼고 있고, 너른 들을 끼고 있는 부안… 일찍이 해양문화가 발달하고, 김제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