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고구려 재침

 

661년 6월에 신라에서는 태종 무열왕이 죽고 그의 아들이자 김유신의 생질인 문무왕 김법민이 즉위하였으며, 당고종은 소정방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다시 고구려를 치게 하였다. 661년 6월 당에 가있던 김인문이 돌아와 '당제는 이미 소정방을 파견하여 수륙 35도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케 하였으며, 대왕으로 하여금 군사를 일으켜 당군과 서로 호응하라 하오니 비록 상중이오나 칙명을 어기기는 어렵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문무왕은 7월에 김유신을 대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내었으나 웅산성(회덕)에서 백제군에 길이 막혀 더 나아갈 수 없었다. 9월 25일에 문무왕은 친히 군사를 독려하여 웅산성(충남 회덕 계족산성)을 무너뜨리고, 우술성(지금의 충남 대덕)을 공격하니 성을 지키던 달솔 조복과 은솔 파가는 항복하고 말았다. 우술성 항복 이후 백제는 크게 위축되어 신라에 큰 위협이 되지 못하였다. 이해 겨울 당의 소정방은 평양성을 포위하고 있었는데 식량이 다해 추위와 눈속에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당은 신라에 식량을 요청하였다. 이에 신라왕은 김유신, 김인문, 양도 등 9명의 장수로 하여금 수레 2,000여대에 쌀 4,000석과 벼 2만2,000여석을 싣고 평양으로 가게 하였다. 662년 1월 23일 김유신은 식량을 운반하여 고구려와의 경계인 칠중하에 이르렀다. 군사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먼저 건너려 하지 아니하므로 김유신은

하며 군사를 독려하여 마침내 식량을 소정방에 전하는 데 성공하였다. 신라로부터 식량을 공급받은 소정방은 기력을 회복하자 2월에 군사를 돌려 돌아갔다. 한편 침체에 빠진 백제군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일본에 가있던 왕자 부여풍의 귀국이었다. 662년 5월에 그는 환국하면서 왜의 원군을 170여 척의 병선에 싣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