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범 연작 시]지운 김철수8 -“좌우수습 위해 사회동당 창당 나섰지만…”

  “해방이 되자, 지운은 해방은 우리의 힘으로 되었다고 주장하며 외세의 관여를 배격하였다. 민족주의자들도 통일이 필요하고 공산주의자들도 통일해야 되고, 또,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서로 통일이 되어야 비로소 완전한 독립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해방이 된 후 이틀 후에 공주감옥소에서 출옥한 지운은 고향으로 내려와서 20여일을 쉬었다. 바로 상경하여 그를 중심으로 당 조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박헌영을 중심으로 통일을 기해야 한다는 것과 박헌영이 당을 조직하려 한다면 거기 동참해서 파별 없이 당을 조직하도록 힘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장안파의 지지를 받는 지운은 …

[이용범 연작 시]지운 김철수7-고문한 자리에 고자리가 슬고…

    “조선 독립운동에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김철수는 1928년에 검거되어 8년 8개월 동안 형무소에 있다가 만기 출소한 뒤, 1940년 여름 다시 수감되어 해방될때까지 감옥생활을 했다. 항소하자는 권유를 뿌리친 것은 제국주의 일본의 법률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에서였다. 고문으로 실신하여 정신을 잃을 정도였지만 민족의 독립을 위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또한 그는 국내와 일본, 만주, 중국, 소련 등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사회주의자였으며, 민족의 독립이라는 대의명분 아래서는 민족운동가들과의 협조체계를 긴밀히 했었다..”(정재철의 ‘민족의 하나됨을 위한 고독한 삶’ 중에서) 지운 김철수 · 7 조선공산당 재건과 독립운동에 몸 …

[이용범 연작 시]지운 김철수6 – “풍설흑야風雪黑夜에 김동지였지!”

    “김철수는 자신이 사회주의 사상을 갖게된 것은 천성적으로 가난한 사람과 약자를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고, 특히 걸인이나 아려운 자들을 보면 도와주는 집안 고모의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하였다. 이러한 성향은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반쪽의 독립과 불쌍한 자들의 계급해방을 위한 행동으로 나타났다.”(정재철의 ‘민족의 하나됨을 위한 고독한 삶’ 중에서)   지운 김철수 · 6 그는 천상 동지였습니다. 흩날리는 눈발 헤치며 비밀리에 서울가다 이리역에서 환승換乘하는 사이 옛 동지 임혁근을 찾았습니다. 늙은 아버지 돌보고 단칸 방에서 취위에 떨며 굶주린다는 소식 듣고 담요 한 장 가지고 …

[이용범 연작 시]지운 김철수5 – “마오쩌둥의 부음 듣고 심장 아렸습니다”

일본 유학 중에 사귄 의제 허백련의 기록에 보면, 김철수는 매사가 분명하여 일본 학생들과도 싸움이 잦았으며 유학생들 중에서도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하루는 일본에 있는 조선 청년회에서 일본의 저명한 문사 三宅雪嶺씨를 초빙, 시국강연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三宅의 강연은 영국과 아일랜드가 합병하여 사이좋은 형제국이 되었듯이 일본과 조선도 그와 같은 사이라는 내용이었다. 맨 앞좌석에서 강연을 듣던 김철수는 강연 도중에 일어나 단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것은 강연이 아니오. 이런 강연은 들을 필요가 없으니 三宅은 내려가시오. ”김철수는 큰 소리로 외치며 三宅을 떠밀어 내려하였다. “끝까지 강연을 들어봅시다.”강연을 …

[이용범 연작 시]지운 김철수4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식민지 시대에 의식 있는 청년들은 어느 곳에 있거나 무엇을 하든지 간에 머리 둘 곳 없는 외로움이 있었고 민족의 해방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1915년에는 일본에 있는 친구들과 첫 비밀 결사인「裂指동맹」을 결성하였다. 장래 사방으로 흩어져서 독립운동을 할 것과 어느 곳에서든지 서로 연락을 하며 독립운동을 하자고 결의하였다. 그 뒤 두번째 비밀결사는 한국인 10명, 중국인 20명, 대만인 10명이 모여 「신아동맹단」을 결성하여 중국, 조선, 대만의 동지들과 일본에 대한 반제국주의 연대 투쟁을 벌일 것을 선언했다. 민족 문제로 고민하던 김철수는 식민지 시대에 겪는 고통의 근원은 …

[이용범 연작 시]지운 김철수3 – “귀신이 되어 곡귀곡귀 독립하자는 거지요”

    김철수는 18세 때 아버지를 대신해서 정읍에 간 적이 있었다. 이곳에서 떡을 주어서 먹었는데, 이 떡은 합방을 기념하는 떡이라는 말을 뒤에 듣고 떡을 개워내려하였지만 토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두승산을 바라보면서 이 좋은 산천이 일본에게 넘어가는 것은 서로 싸우기만 하는 당파 때문이라며 일본의 침략을 막지 못한 것을 슬퍼하면서 눈물 흘렸다. 이 때, 앞으로 사는 동안 ‘내 사람’이나 ‘내 당파’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 했다. 화호보통학교와 군산 금호학교에서 신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대학 정치과 전문부에 임학하였다. 1914년에는 친구 일곱 …

[이용범 연작 시] 지운 김철수2 – 당신 말년 지독히 가난했지만…

  한학자 서택환을 만나다 “김철수는 백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동진강 수로가 닿는 곳으로 아버지는 쌀 위탁판매업을 하는 넉넉한 소지주였고 재주가 있는 이들의 교육에 열성이었다. 그 당시 이평면 말목에는 구례 군수를 지내다 부모 상(喪)을 당하여 군수직을 사직한 서택환이 서당을 열고 있었다. 김철수는 그를 통해서 한국의 선비 정신을 배웠으며, 민족의식에 눈을 뜨게 됐다. 서택환은, “우리나라가 다 망해 간다. 너희들이 일어나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후일, 사상운동을 하다가 구속되어 재판을 받을 때, 예심판사가 누구를 사숙했냐고 묻자, 자신은 유학자인 서택환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라고 주장하여 …

[이용범 연작 시] 지운 김철수1 – “그는 이미 큰 사람이었습니다”

이용범 시인은 그의 두 번째 시집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에게'(2006년)에 ‘지운 김철수’ 연작시 26편을 발표했다. 부안21은 이 시인의 허락을 얻어 이 시들을 연재해 올릴 계획이다. /부안21   지운 김철수 · 1 1893년 부안군 백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화호보통학교 다니면서 일본인 선생에게 일본 아이와 성적이 뒤바뀌었다고 통 크게 따진 어린 시절 그는 이미 큰 사람이었습니다 /이용범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에게’

  포구는 이미 자신이 더 이상 포구가 아닌 줄 압니다 뱃길은 진작 지워진 손금이고요 메마른 갯벌에 햇살은 차라리 서럽습니다 봄입니다 빈 포구에 물결 대신 봄바람이 일렁입니다 갈대는 그리움으로 흔들립니다 [알림] 이용범 두 번째 시집 출판기념 떠난 사람은 남은 사람에게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에게 그리운 편지를 씁니다 나문재가 불긋 파릇한 글씨로 마른 갯벌에 받아씁니다 ㅊㅏㅁㅁㅏㄹㄹㅗ ㄱㅡㄹㅣㅂㄷㅏㅇㅣㅇ 이용범 시 이용범 시인은 부안 줄포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원광대 재학시절 고려대 현상문예(1985년), ‘소설문학’ 신인상(1986년) 당선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했으며, 5세대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동인시집으로는 <그리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