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림공원(西林公園)의 어제와 오늘

  부안고을의 주산(主山)이요 진산(鎭山)인 성황산은 산 전체가 공원이니 이름은 서림공원(西林公園.)이다. 그 빼어난 경관과 울창한 숲 사이로 뻗어난 등산로를 따라 거니노라면 마치 어머니의 가슴에 안긴 것 같은 포근함이 있어 우리들의 요람이요, 안식처이기에 충분하다. 산 너머 저쪽에서 밤새워 어둠을 살라 먹고 해맑은 고운 얼굴로 다시 솟는 해를 맞아 하루의 생활을 활기차게 시작하려는 착하고 부지런한 부안 시민들이 새벽 네 시면 벌써 공원 숲길의 적막을 깨며 등산로를 메우면서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남녀노소가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답게 인사 나누며 걷고 뛰고 야호! 호연지기 함성도 지르면 …

떠돌이 신을 모신 여단(厲壇)과 기우단(祈雨壇)

    여단(厲壇) 여단(厲壇)이라 함은 제사를 못 받아먹는 이름 없는 떠돌이 귀신인 여귀(厲鬼) 즉 돌림병으로 죽은 귀신이나 각종 사고 등으로 제명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비명횡사한 귀신들에게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 주는 제사의 제단(祭壇)을 말한다. 이들 여귀들에게 제사 지내 주는 제도는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없었는데 1401년 조선조 태종(太宗) 1년에 권근(權近 : 1352~1409)의 주청으로 명(明)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처음으로 서울의 북교(北郊)에 제단을 쌓고 제사지낸 것이 그 시초며 이후 각 군현(郡縣)에 명하여 여제(厲祭)를 지내도록 하여 생긴 제도다. 이에 따라 우리 고을의 주산인 성황산에도 여단을 쌓고 여제를 지냈을 …

나라 지킴이 신을 모신 사직단(社稷壇)

앞에서 성황산에는 옛날부터 부안 고을을 수호하는 성황신(城隍神)을 모셨던 사당이 설치되어 있어서 산 이름을 성황산이라 부른 것 같다고 말하였거니와 성황산에는 성황사(城隍祠) 외에도 몇 가지 자연신인 산천신(山川神)이나 이름 없고 주인 없는 떠돌이 귀신들을 제사 지내주는 여단(厲壇)과 가뭄이 심할 때에는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는 기우단(祈雨壇)을 설치하여 제사하는 행사가 이루어졌었다. 그 중에서도 사직단(社稷壇)에서 행해졌던 사직제(社稷祭)는 종묘제(宗廟祭), 문묘제(文廟祭)와 함께 국가에서 행하는 삼대 대제(大祭)의 하나였다. 사직단(社稷壇)은 사신(社神)인 토지의 신과 직신(稷神)인 오곡의 신을 제사하는 제단이다.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하는 사직제는 멀리 삼국시대부터 행하여져 왔었는데 임금이 제주(祭主)가 되어 제사지내는 …

성황산의 고을 지킴이 신들

    고을 지킴이 신을 모신 성황사(城隍祠)  부안고을의 주산(主山)이며 진산(鎭山)인 성황산(城隍山)은 일명 상소산(上蘇山)이라고도 한다.  해발 115m 높이의 이 아담한 동산형의 산은 변산 반도의 한 자락이 큰다리 두포천(斗浦川)과 삼간평야(三干平野)를 훌쩍 건너 호남평야를 향하고 동쪽으로 달려오다가 동진하구(東津河口)에 다다라 급하게 멈춰 서 부안고을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이 되었다. 울울창창한 노송과 아름드리 잡목으로 덮여있는 이 산의 주봉은 동남으로 약간 기운 듯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서북으로 느릿하게 뻗은 몸통은 삼메봉(三山峰)을 이루어 마치 긴 병풍처럼 부안 고을을 감싸면서 순후하고 아름다운 부안의 역사문화를 꽃피운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 같은 산이다. 옛날 …

행정의 전문가 향리(鄕吏) 이야기 [2]

  부안고을의 향리 이야기 고을의 행정을 수행하는 중심 관청은 수령의 집무처인 동헌과 아전들의 우두머리격인 이방의 집무소인 질청(作廳:椽廳)이었다. 부안고을의 관아인 동헌은 부안군청의 뒤 지금의 중앙교회 자리였고 그 내삼문 아래 옛 경찰서 자리에 질청이 있었다. 질청의 옆 동편으로 군청 자리에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闕牌)와 위패(位牌)를 모신 객사(客舍)가 있었으며 서편으로 옛 교육청 자리 뒤에 형방청이 자리하고 객사 앞에 호방청이 있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군청을 중심으로 한 그 일대가 부안고을의 행정 중심지였다. 아전이란 별난 족속이 아니다. 오늘날의 도청이나 군청의 공무원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다른 점이 …

행정의 전문가 향리(鄕吏) 이야기 [1]

  향리의 뿌리는 지방의 호족(豪族)이었다 향리란 지방의 행정기구인 관아에 딸린 하급 관리인 구슬아치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 아전들은 고을의 수령인 감영(監營)이나 부목군현(府牧郡縣). 진영(鎭營). 역원(驛院)의 수령의 명을 받아 행정을 수행하는 최 일선의 행정 전문가요 오늘날의 지방공무원들이었다. 아전을 크게 나누면 임금이 정사를 펴는 중앙의 각 관서에 딸린 경아전(京衙前)과 지방관청에 딸린 외아전(外衙前)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아전이라 하면 외아전인 향리(鄕吏)를 이르는 말로 쓰고 있다. 이들의 집무소가 고을 수령의 정청(政廳)인 관아 즉 동헌(東軒)을 중심으로 지근지처인 그 앞에 있다고 하여 아전이라 호칭 한다. 그 외에도 서리(胥吏). …

부안의 관아(官衙)와 공해(公廨)

  수령의 집무소 관아 앞에서 조선시대 부안의 행정치소인 읍성(邑城)에 대하여 그 형태와 규모, 위치 그리고 세 곳의 성문의 문루와 그에 관한 명사(名士)들의 시문(詩文) 등을 간략하게 살펴보았거니와 이와 같은 행정치소의 공간 안에는 고을의 수령이 정사를 보는 동헌(東軒)을 중심으로 여러 부속 공해(公廨) 들은 어디에 어떻게 배치되어 고을행정이 펴져 왔는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서 관아(官衙)와 공해(公廨)라 함은 관공서와 그에 따른 건물을 총칭하는 말이며, 고을의 수령을 비롯한 육방(六房) 관속들인 아전들이 집무하는 건물이란 뜻으로 관사(館舍)라 하기도 하고 이속(吏屬)들이 모여 고을의 일을 처리하는 곳이란 뜻으로 순수한 …

문루(門樓)에서 피어난 명인(名人)들의 시문(詩文)-2

부안읍성 남문루의 이름은 취원루(聚遠樓)다. 이 취원루에 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 부안현의 누정(樓亭) 조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취원루(聚遠樓) :곧 성의 남쪽 문루인데 서쪽으로 변산을 대하고 북쪽으로 큰 바다를 바라보며 동쪽과 남쪽은 큰 들을 임하였다. <聚遠樓 : 卽城南門樓 西對邊山 北望大海 東南臨大野> 하고 이행(李行)과 허종(許琮) 두 사람의 남문루에 올라 지은 시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1887년에 부안의 유림들에 의하여 간행된 군지 <부안지(扶安志)>의 누정 조에는 남문루를 후선루(侯仙樓)라고 기록하고 일명 취원루 라고도 한다 하였으며 1932년에 역시 유림들이 간행한 군지 <부풍승람(扶風勝覽)>의 누정 조에도 <부안지(扶安志)>와 같은 내용으로 적고 …

문루(門樓)에서 피어난 명인(名人)들의 시문(詩文)-1

부안읍성에는 동․서․남 세 곳에 외부로 드나드는 성문의 다락(城門樓)이 있었으며 동문의 다락은 청원루(淸遠樓)라 했고, 서문의 다락은 개풍루(凱風樓)며 남문 다락은 취원루(聚遠樓)또는 후선루(候仙樓)라 하였다. 이들 성문은 성안 사람들이 외부로 나다니는 문이요, 외부인이 성안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로 안과 밖의 경계점이라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계(淨界)와 부정계(不淨界)를 구획 짓는 문으로 깨끗하고 착한 것만 받아들이는 성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성안에서의 삶은 안온(安溫)하며, 평화스러워야 하고 풍요와 자손의 번창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성문거리에는 성안 사람들의 지킴이신인 오리 솟대당산과 성문 지킴이인 장승신장(長丞神將) 한 쌍씩을 돌로 조성하여 세워 놓고 있다. …

부안읍성(扶安邑城)의 규모와 특징

부안의 진성(鎭城)이라고도 하는 부안읍성이 15세기 초에 어떤 이유로 주변의 다른 여러 고을의 읍성들 보다도 그 규모가 4․5배 이상 더 크고 전라도 감영이 있는 전주읍성(全州邑城)보다도 3배가 넘는 큰 성곽으로 축조 되었을까에 대하여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하여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부안지방에는 백제(百濟)때부터 고려(高麗)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많은 성곽들이 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현재 확인 실측된 성지(城址)의 수만도 15개소나 된다.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부안진성(扶安鎭城)인 부안읍내의 읍성을 비롯하여 흔히 고성(古城)이라 하는 행안면 역리산 토성지(驛里山土城址)와 옛 보안현의 치소성 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보안면 영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