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의 나루(津)

    나루는 강이나 냇가,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일정한 터 즉 장소를 말한다. 배로써 사람, 또는 물자를 실어 나르기 때문에 나르는 곳이라는 뜻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기에 도(渡), 진(津)이라 하였으며, 이보다 좀더 큰 규모면 포(浦), 더 큰 바다 나루는 항(港)이라 하였다. 역사적인 먼 옛날의 나루로는 백제(百濟)의 두 번째 도읍지 이름이 곰나루(熊津)로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公州)지방의 금강(錦江)나루였음을 알 수 있고, 우리 부안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나루로는 동진강 하구, 지금의 동진대교(東津大橋) 자리에 있었던 동진(東津)나루였다. 동진나루는 1970년대 말경까지도 있었으며, 숫한 …

부안의 원(院)-동진원(東津院), 금설원(金設院), 수세원(手洗院)

    조선조 시대에 부안에는 원(院)이 세 곳에 있었다. 동진원(東津院)과 수세원(手洗院), 금설원(金設院)이 그것이다. 원(院)이란 공적인 임무로 지방에 파견되는 정부의 관리나 상인 등의 공공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던 시설로서 국가에서 경영하는 일종의 여관이었다. 지방도로의 요처나 인가가 드문 곳에 나라에서 원을 설치하였는데 역참(驛站)의 일부 기능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역참에서도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부안현의 역원조에 의하면 <부흥역: 현의 서쪽 2리에 있다. 동진원 : 동진의 언덕에 있다. 수세원: 현의 남쪽 60리에 있다. 금설원: 현의 남쪽에 있다.> (扶興驛 在縣西二里, 東津院 吊津岸, 手洗院 在縣南六十里, 金設院 在縣南)라고 …

역참(驛站)

    고려시대에도 부안지방에 역참(驛站)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 하면 고려시대의 역참조직의 자료에 의하면 전라도(全羅道)지방에는 전공주도(全公州道)에 속하는 역참이 21개소, 승나주도(昇羅州道)에 속하는 역참은 30개소, 남원도(南原道)에는 12개소가 있었는데 부안지방의 역참인 부흥역(扶興驛)은 어느 도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제(金堤)의 내재역(內才), 고부의 고원역(苽原․瀛原․鶯谷), 정읍의 천원역(川原), 고창의 청송역(靑松․茂長), 태인의 거산역(居山), 임피(臨皮)의 소안역(蘇安) 등 부령과 보안현을 중심으로 한 그 주변 고을의 역참들은 보이지만 부안지방에 있었음직한 역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미루어 보건대 고려시대에 부안지방에도 역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역참과 그 기능의 일부가 비슷한 …

부안의 교통. 통신기관 부흥역(扶興驛)

  조선조시대(朝鮮朝時代)에 교통과 통신을 담당하였던 역참(驛站․郵驛)과 함께 여행자를 위하여 전국의 요로(要路)에는 원(院)을 설치하였었는데 이 역과 원이 우리 부안지방에도 있었으며, 그 자취가 지명 등으로 굳어져 남아 있다 행안면의 역리(驛里)마을이나 부안읍내 구역말(舊驛里) 등이 그 예다. 동문안을 구역말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부안의 행정치소가 행안 역리에 있었던 고려 때에는 부령현의 역원이 지금의 동중리 근처에 있었던 것 같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4권 부안현(扶安縣)의 역원(驛院) 조에 의하면 부안의 역은 부흥역(扶興驛)이라 하였으며, 부안읍내 서쪽으로 2리에 있다 하였으니 <부흥역 재현이리(扶興驛 在縣二里) 지금의 행안면 역리(驛里)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역원은 치소로부터 조금 떨어진 읍성의 …

서림공원(西林公園)의 어제와 오늘

  부안고을의 주산(主山)이요 진산(鎭山)인 성황산은 산 전체가 공원이니 이름은 서림공원(西林公園.)이다. 그 빼어난 경관과 울창한 숲 사이로 뻗어난 등산로를 따라 거니노라면 마치 어머니의 가슴에 안긴 것 같은 포근함이 있어 우리들의 요람이요, 안식처이기에 충분하다. 산 너머 저쪽에서 밤새워 어둠을 살라 먹고 해맑은 고운 얼굴로 다시 솟는 해를 맞아 하루의 생활을 활기차게 시작하려는 착하고 부지런한 부안 시민들이 새벽 네 시면 벌써 공원 숲길의 적막을 깨며 등산로를 메우면서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남녀노소가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답게 인사 나누며 걷고 뛰고 야호! 호연지기 함성도 지르면 …

떠돌이 신을 모신 여단(厲壇)과 기우단(祈雨壇)

    여단(厲壇) 여단(厲壇)이라 함은 제사를 못 받아먹는 이름 없는 떠돌이 귀신인 여귀(厲鬼) 즉 돌림병으로 죽은 귀신이나 각종 사고 등으로 제명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비명횡사한 귀신들에게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 주는 제사의 제단(祭壇)을 말한다. 이들 여귀들에게 제사 지내 주는 제도는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없었는데 1401년 조선조 태종(太宗) 1년에 권근(權近 : 1352~1409)의 주청으로 명(明)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처음으로 서울의 북교(北郊)에 제단을 쌓고 제사지낸 것이 그 시초며 이후 각 군현(郡縣)에 명하여 여제(厲祭)를 지내도록 하여 생긴 제도다. 이에 따라 우리 고을의 주산인 성황산에도 여단을 쌓고 여제를 지냈을 …

나라 지킴이 신을 모신 사직단(社稷壇)

앞에서 성황산에는 옛날부터 부안 고을을 수호하는 성황신(城隍神)을 모셨던 사당이 설치되어 있어서 산 이름을 성황산이라 부른 것 같다고 말하였거니와 성황산에는 성황사(城隍祠) 외에도 몇 가지 자연신인 산천신(山川神)이나 이름 없고 주인 없는 떠돌이 귀신들을 제사 지내주는 여단(厲壇)과 가뭄이 심할 때에는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는 기우단(祈雨壇)을 설치하여 제사하는 행사가 이루어졌었다. 그 중에서도 사직단(社稷壇)에서 행해졌던 사직제(社稷祭)는 종묘제(宗廟祭), 문묘제(文廟祭)와 함께 국가에서 행하는 삼대 대제(大祭)의 하나였다. 사직단(社稷壇)은 사신(社神)인 토지의 신과 직신(稷神)인 오곡의 신을 제사하는 제단이다.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하는 사직제는 멀리 삼국시대부터 행하여져 왔었는데 임금이 제주(祭主)가 되어 제사지내는 …

성황산의 고을 지킴이 신들

    고을 지킴이 신을 모신 성황사(城隍祠)  부안고을의 주산(主山)이며 진산(鎭山)인 성황산(城隍山)은 일명 상소산(上蘇山)이라고도 한다.  해발 115m 높이의 이 아담한 동산형의 산은 변산 반도의 한 자락이 큰다리 두포천(斗浦川)과 삼간평야(三干平野)를 훌쩍 건너 호남평야를 향하고 동쪽으로 달려오다가 동진하구(東津河口)에 다다라 급하게 멈춰 서 부안고을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이 되었다. 울울창창한 노송과 아름드리 잡목으로 덮여있는 이 산의 주봉은 동남으로 약간 기운 듯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서북으로 느릿하게 뻗은 몸통은 삼메봉(三山峰)을 이루어 마치 긴 병풍처럼 부안 고을을 감싸면서 순후하고 아름다운 부안의 역사문화를 꽃피운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 같은 산이다. 옛날 …

행정의 전문가 향리(鄕吏) 이야기 [2]

  부안고을의 향리 이야기 고을의 행정을 수행하는 중심 관청은 수령의 집무처인 동헌과 아전들의 우두머리격인 이방의 집무소인 질청(作廳:椽廳)이었다. 부안고을의 관아인 동헌은 부안군청의 뒤 지금의 중앙교회 자리였고 그 내삼문 아래 옛 경찰서 자리에 질청이 있었다. 질청의 옆 동편으로 군청 자리에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闕牌)와 위패(位牌)를 모신 객사(客舍)가 있었으며 서편으로 옛 교육청 자리 뒤에 형방청이 자리하고 객사 앞에 호방청이 있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군청을 중심으로 한 그 일대가 부안고을의 행정 중심지였다. 아전이란 별난 족속이 아니다. 오늘날의 도청이나 군청의 공무원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다른 점이 …

행정의 전문가 향리(鄕吏) 이야기 [1]

  향리의 뿌리는 지방의 호족(豪族)이었다 향리란 지방의 행정기구인 관아에 딸린 하급 관리인 구슬아치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 아전들은 고을의 수령인 감영(監營)이나 부목군현(府牧郡縣). 진영(鎭營). 역원(驛院)의 수령의 명을 받아 행정을 수행하는 최 일선의 행정 전문가요 오늘날의 지방공무원들이었다. 아전을 크게 나누면 임금이 정사를 펴는 중앙의 각 관서에 딸린 경아전(京衙前)과 지방관청에 딸린 외아전(外衙前)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아전이라 하면 외아전인 향리(鄕吏)를 이르는 말로 쓰고 있다. 이들의 집무소가 고을 수령의 정청(政廳)인 관아 즉 동헌(東軒)을 중심으로 지근지처인 그 앞에 있다고 하여 아전이라 호칭 한다. 그 외에도 서리(胥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