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는 이 없는 건선면 면소재지의 오늘-줄포면 원난산 마을

  12월 21일 오전 11시 40분. 줄포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원난산 가는 버스를 타고 출발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원난산 마을은 인접한 목상·목중·남월·목하 마을과 함께 줄포면의 난산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각자 소유한 차량들이 주 교통편이지만 아주머니들이나 노인네분들은 시내버스에 의존하여 줄포 시내를 왕래합니다. 출발시각이 훨씬 넘어서고 있는데도 운전기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손님은노인네분들 몇몇입니다. 한 아주머니가 종이가방 짐을 들고 허겁지겁 차에 올라탑니다. “휴~, 차 떨낄 뻔 했네. 부안에서 약 지어가지고 11시 15분 차를 탔는디, 이 차를 탈 수 있을라나 걱정을 많이 혔네. 이 차 놓치면 1시차를 탈라고 혔는디, …

“친환경적으로 행복하게 살자” – 변산면 마포·산기 마을

    꿈을 이루는 마포리 마을 만들기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마을 만들기’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사는 농어촌마을의 지속적인 해체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정점에 있는 오늘날에는 마을이 텅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해오던 전통적인 ‘마을공동체’의 모습은 대부분 더 이상 볼 수가 없는 현실이고, 없는 일손에 각자 먹고 살기 바쁜 주민들의 그림자들만 남아 있는 형편입니다. 물론 여전히 마을들마다 백중 때나 정월에 마을잔치를 하거나 친목모임을 꾸려나가거나 마을회관에 모여앉아 놀이와 담소를 이어가고는 있습니다만, 해체되고 있는 마을의 ‘재구성’을 …

근대사회가 저지른 ‘인재’의 장소, 그 오늘날

    잃어버린 옛 우반동 경관 물은 반계로 이어져 절정을 이루고(水接磻溪勝) 산은 우반 골짜기에 깊이 숨어 있도다(山藏愚谷深) 시냇가에 핀 꽃은 지나가는 객의 발길을 사로잡고(磵花迷客路) 숲속에서 들려오는 퉁소 소리는 마음을 시원하게 하네(林籟爽人心) 조선 인조 때 김세렴(金世濂, 1593~1646)이 지은 시입니다. 우반 골짜기라 함은 당시 보안현의 우반동(지금의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골짜기를 말합니다. 옛날에는 이쪽 사람들이 산속에서 퉁소를 즐겨 불었나 봅니다. 진서면의 산속마을인 대소도 퉁소와 관련이 있으니 말입니다. 각설하고, 조선시대의 시인이나 묵객(墨客)들이 우반동의 경치를 보고 감탄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시로 표현하고자 하는 감흥에 …

“쪄 말려 떡해먹으믄 맛나”

홀태질하는 할머니 #1. 11월1일 오후. 내소사 가는 길, 진서면 원암마을에서 마주친 한 풍경입니다. 올해 여든일곱의 장판례 할머니. 그이는 집 앞의 시퍼런 콩밭에 주저앉아 낫으로 베어가며 콩대에서 콩을 하나하나 따내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여, 콩대 하나에 한두개 정도밖에 열리지 않은지라 이잡듯 콩대를 뒤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굼뜨고, 까칠하게 쇤 손가락들 사이로 퇴색한 가을빛을 덧칠하며 말입니다. “9월에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통 안열렸어요. 이런 일도 처음인거 같아요. 밥에나 얹어먹을까 허고 한두개씩 달린 거 따보는고만요.” 콩대를 베어내는 일도 힘에 부치는지 콩대가 쉬 베어지지 않습니다. …

와우형국의 마을 산세는 황금벌판의 꿈으로 사라지고

  계화면 조포마을 계화면 창북리에서 계화리 쪽으로 조금 가다 우회전하여 줄곧 달리다보면 비교적 큰 마을이 나옵니다. 주변 일대가 워낙 넓은 간척지 논이다보니 마치 육지 속의 섬 같습니다. 이 마을은 필시 오래 전에는 섬이었을겁니다. 줄무늬잎마름병이 휩쓸고 간 아픈 농지에도 가을은 왔는지라 누렇게 영근 황금벌판의 농부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락 수확을 이미 마친 농가는 보리 심는 ‘전쟁’으로 한창입니다. 비 오기 전에 보리를 심어야 하므로 논바닥에 깔린 짚더미를 빨리 치워달라 서로들 아우성입니다. 동북으로는 동진강이 바다와 만나고 있고 서로는 계화도가 보이며 남으로는 부안읍내로 향하는 …

‘왕등도공화국’으로 독립허고 싶당게

    위도면 왕등도 마을 우리가 왕등도를 찾은 날은 안개가 많은 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여객선으로 위도의 파장금항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곧바로 미리 예약한 어선으로 갈아탔습니다. 왕등도에 들어가는 배가 일주일에 두 대 밖에 없고 섬 주변도 둘러보며 낚시도 할 겸 해서 어선을 빌렸습니다. 제법 빠르게 달렸는데도 파장금항에서 출발한지 40분 정도 지나서야 왕등도가 보이기 시작했고, 여전히 안개는 뿌연하게 섬들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중종 18년 계미년(1523)에 충청도 관찰사 윤희인이 장계(狀啓: 임금에게 글로써 보고함)하기를 “6월 27일 서천포 만호(舒川浦萬戶) 권한(權暵) 등이 왜선과 직도(稷島)에서 만나 …

아직은 촛불을 끌 때가 아닙니다

    반핵전사 고 최경임 님 추모 3주기를 보내며 시인 신석정은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라는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1930년대의 시인지라 오래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아직은 촛불을 끌 때가 아닙니다’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부안읍 서외리에 사는 이상공 씨 이야기입니다. 그는 딱 3년 전의 9월4일에 잃은 아내 최경임 씨를 추모하는 촛불을 그 날 이후 밤마다 켜 왔습니다. 모두가 ‘그때 그 일’을 잊어버린 채 일상생활로 돌아가 있지만 ‘사랑하는 임’이기에 그는 오늘도 애닳게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밤마다 켜는 촛불은 ‘사랑하는 …

쌈터 주민들을 내쫓는 자리에 석정문학관이 들어섭니다 – 부안읍 선은리 선은동

    “마을의 자랑? 마을의 자랑은 무슨 놈의 자랑이여. 몇 대째 여기서 나고 여기서 컸는데, 그런 우리를 내쫒는 게 유명한 시인의 문학관 짓는다고 할 짓여? 보상이라도 제대로 해줘야지, 헐값여 헐값! 그 돈 받아가지고 어디 가서 무슨 집을 져? 우리같은 늙은이들이 어디로 쫓겨가라고. 갈데도 없어! 우린 절대로 못나강게 우리 집 빼고 알아서 허라고 혔어.” 집을 매입당할 처지에 있는 아주머니는 아주 격분했습니다. 해질녘을 그늘 삼아 마당에서 깨를 터는 그이의 바깥양반은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위기감으로 크게 짓눌리는 듯 생애의 주름을 무겁게 접는 표정입니다. …

모정이 있어 마을을 여유롭게 합니다 – 동진면 장등마을 모정

    무더위가 푹푹 찌는 한여름 날에는 그 어디보다도 모정(茅亭)이 최고의 피서지겠죠? 사방이 터지고 천장과 기둥과 바닥 모두 대개 목재를 다듬어 지은지라 다가가 앉기만 해도 곧장 시원한 바람이 살갑게 맞이합니다. 요즘의 집들은 바람의 흐름을 차단하는 구조로 가고 있어 더 덥습니다. 채광과 통풍을 위하여 만들었던 봉창은 이제 그 말조차 듣기 어려워졌고, 확 트인 마루도 샷시작업을 하여 폐쇄형 거실로 사방을 막아버린 터에 모기장으로 바람이 통하도록 했다 한들 답답한 구조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새로 짓는 집들도 선풍기와 에어컨을 사용할 요량으로 바람의 순환을 막아버립니다. 에어컨은 전기 …

가무로 노니는 흥의 산중문화사가 있었으리라 – 진서면 대소뜸

      진서면 석포2리의 해발 200미터쯤 되는 산중 ‘오지’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 대소뜸. 사람이 사는 집이라곤 53년전에 들어와 터를 잡아 살아왔다는 조병문 옹 집과 10년 전에 들어왔다는 중년의 모씨 집 두 가호뿐인지라 마을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문명세계(?)와의 거리상으로 보아 오지라고 하기에도 망설여지는 곳입니다. 차라리 오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모씨의 역설은 의미있는 발언입니다. 현대문명의 최첨단물인 인터넷과 핸드폰은 닿지 않지만 두 가호 중 한집에는 마루를 개량해 만든 거실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청정하고 시원한 산중 자연바람도 한여름의 무더위는 물리칠 수 없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