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화도갯벌의 대물 ‘우줄기’

      작년 가을에 계화도갯벌의 대물을 소개한 적이 있다. 문헌자료를 찾지 못한데다 이 대물에 대해 아는 이가 없어 ‘계화도갯벌의 대물’이라고만 소개했었는데, 사이버상에서 이를 본 갯벌전문가인 백용해 선생이 이 대물의 실물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해 엊그제 18일, 새만금 다큐 제작팀(엠비씨 장덕수 피디), 월간 우리바다 윤성도 기자와 함께 계화도갯벌에 다녀왔다. 18일은 물이 많이 쓰는 9물이어서인지 양지포구 갯골 바닥이 다 드러나 보트를 돌려 나갈 때 애를 먹었다. 그 넓던 동진강 하구도 실개천처럼 가늘게 느껴졌다. 평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던 조간대 하부 깊숙한 …

[이용범 연작 시]지운 김철수8 -“좌우수습 위해 사회동당 창당 나섰지만…”

  “해방이 되자, 지운은 해방은 우리의 힘으로 되었다고 주장하며 외세의 관여를 배격하였다. 민족주의자들도 통일이 필요하고 공산주의자들도 통일해야 되고, 또,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서로 통일이 되어야 비로소 완전한 독립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해방이 된 후 이틀 후에 공주감옥소에서 출옥한 지운은 고향으로 내려와서 20여일을 쉬었다. 바로 상경하여 그를 중심으로 당 조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박헌영을 중심으로 통일을 기해야 한다는 것과 박헌영이 당을 조직하려 한다면 거기 동참해서 파별 없이 당을 조직하도록 힘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장안파의 지지를 받는 지운은 …

‘봉래구곡작전’과 실상사

  문헌에, 변산의 4대사찰로 내소사, 선계사, 청림사, 실상사를 꼽았다. 청림사는 古청림사와 新청림사가 있는데, 고청림사는 서운암 가마소 가는 길에 있었으며, 지금 전라북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개암사 지장전에 모셔져 있는 청림사석불좌상이 이곳 고청림사지에 있었던 석불이다. 신청림사는 지금의 청림마을에 있었던 절로 언젠가 소개했던 내소사고려동종이 나온 절이다. 여러 정황이나 절의 규모로 미루어 볼 때, 위의 4대사찰 중의 하나인 청림사는 신청림사인 듯 하다. 선계사는 우반동 선계안골에 있었던 절로 1850~1870년 무렵에 제작한 변산 고지도에 선계사가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조선 말기까지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내소사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니 …

[오! 주류성-7] 원효가 변산에 온 까닭

    개암사 뒷산이 이고 있는 울금바위에는 남. 북. 서 3곳에 굴실이 있다. 북쪽의 굴실은 3곳 중 제일 협소하며 백제부흥운동 당시 군사들을 입히기 위해 베를 짰다해서 베틀굴이라 전해오고 있으며, 서쪽의 굴실은 3곳 중 가장 큰 굴로 역시 백제 부흥운동 당시 복신이 병을 이유로 나오지 않았던 굴이라하여 복신굴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남쪽의 굴실은 바위절벽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지표에서 20여 미터나 되는 암벽중간에 있어 사다리가 없이는 도저히 오를 수가 없는 곳이다. 굴실의 크기는 6∼7평정도이고, 이 석굴 바로 옆에 3평 크기의 또 하나의 굴실이 …

[오! 주류성-6] 주류성(周留城)과 백강(白江)은 부안에 있다

    국어사전은 주류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충청남도 한산(韓山)에 있었던 백제의 성. 백제가 망한 뒤 유신(遺臣)인 복신(福信)·도침(道琛) 등이 백제 부흥을 위하여 웅거하던 곳. 처음 유인궤(劉仁軌)의 나당(羅唐)연합군의 공격을 크게 물리쳤으나 복신·도침의 내홍(內訌)으로 죽고, 증원된 나·당(羅唐)의 수륙(水陸) 대군의 공격을 받아 의거(義擧) 4년만인 663년에 성이 함락되었음.”/새 우리말 큰사전(삼성출판사) 또 다른 문헌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제 말기의 성. 일명 지라성(支羅成)·두량이(豆良伊)라고도 한다. 백제 멸망 후 복신(福信)·승려 도침(道琛) 등이 부흥운동을 하던 근거지로 신라 문무왕 1년(661)에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한때 전세가 유리하였으나 부흥군 지휘자 사이의 반목으로 …

변산에 퍼지는 蘭향기

  넉넉한 자태를 뽑내고 있는 ‘蘭’ ‘蘭’을 선인들은 사군자 중의 하나로 꼽았다. 3월이면 벌써 꽃대궁이 올라오기 시작하여 4월이면 연한 황록색의 꽃을 피운다. 맑고 청아한 향기와 함께… 어렸을 적에야 ‘蘭’이 그렇게 귀한 존재일 줄도 모르고 꽃대궁을 한 줌씩 따가지고 다니면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3변 이야기 예로부터 변산에는 유명한 것 세 가지가 있다. 변재(邊材), 변청(邊淸), 변란(邊蘭)이 바로 그것으로 삼변(三邊)이라고 한다. [변재]고려·조선시대에 변산은 나라의 귀중한 재목창이었다. 변산에서 나는 재목(소나무)을 변재(邊材)라 하는데, 궁재(宮材)나 선재(船材)로 쓰기 위해 나라에서 특별히 관리했다. 고려시대에는 문장가 이규보 같은 이가 …

부안의 봄을 막지 마라!

    지난 17, 18일 변산을 찾았다. 꽃샘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오는 봄을 막지는 못하나 보다. 복수초, 변산바람꽃은 이미 다 졌고 노루귀, 꿩의바람꽃, 현호색, 산수유, 생강나무, 목련, 매화 등이 서로 먼저 피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 한 해 부안사람들은 계절을 잊고들 살았다. 뙤약볕에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에서 모기에 뜯기며 핵싸움 시작한 것 같은데 언제 나락은 익었는지…, 단풍은 얼마나 곱게 물들었는지…, 가로수의 낙엽이 거리에 딩구는가 했더니 두꺼운 옷으로 몸을 칭칭 감아야만 하는 세한이었고 저들의 야만적인 핵몰이에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야만했다. …

낙엽속의 보물 노루귀

  간밤에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안변산으로 들어갔다. 인적이 거의 없는 계곡을 따라 변산바람꽃, 노루귀, 꿩의바람꽃 등이 지천으로 피고 지는 곳을 안다. 변산바람꽃은 이미 져버려 찾아보기 어려웠고 잎이 노루귀를 닮은 노루귀가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빽빽히 나있는 솜털은 추위를 이기기 위한 생존전략일까. 그마저 비에 다 젖어있다. <3월 16일 안변산 사자동에서> 백과사전에서 찾은 노루귀 산의 나무 밑에서 자란다. 뿌리줄기가 비스듬히 자라고 마디가 많으며 검은색의 잔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잎은 뿌리에서 뭉쳐나고 긴 잎자루가 있으며 3개로 갈라진다. 갈라진 잎은 달걀 모양이고 끝이 …

‘자운영’이라고 했더니 ‘자우림’이라고 했다던가?

  어느 대학 교수가 학생들과 여행길에서 자운영을 보고 학생들이 무슨 꽃이냐고 묻기에 “자운영”이라고 알려 줬더니, 나중에 자기들끼리는 “자우림”이라고 하더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자우림”은 어느 보컬의 이름이다. 그럴 것이다. 요즈음 신세대들한테 자운영은 좀 낯선 이름일 것이다. 죽을둥 살둥 그 힘겨운 보리고개를 넘던 시절, 온 논에 자운영이 곱게 피는 봄이면, 보리모강지는 아직 뜨물도 차지 않았는데 양식은 떨어지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쑥이며, 자운영순 뜯어다 나물 해 먹고, 독새기 훑어다 푸때죽 쒀 먹으며 연명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 흔하던 자운영이 어째서 자취를 …

추억의 뚝새풀

  뚝새풀 학명은 ‘뚝새풀(벼과) Alopecurus aequalis var. amurensis’이지만 부안에서는 ‘독새기’라고 한다. 저지대의 습지나 논 등에서 자라는데, 예전의 봄 들판엔 온통 자운영, 독새기 천지였다. 그런데 하찮아 보이는 이 독새기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요즈음 아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 이 독새기를 훑어다 푸때죽 쑤어 먹으며 보리모강지에 뜬물이 잡힐 때까지 연명했었다. 또한, 한방에서는 이 독새기의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를 약재로 쓰는데, 전신 부증을 내리고, 어린아이의 수두와 복통설사에도 효과가 있으며, 종자는 찧어서 뱀에 물린데 바르기도 한다. 歸鄕詩抄 – 신석정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