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구곡작전’과 실상사

 

▲6.25때 불타 없어지기 전의 실상사

문헌에, 변산의 4대사찰로 내소사, 선계사, 청림사, 실상사를 꼽았다.

청림사는 古청림사와 新청림사가 있는데, 고청림사는 서운암 가마소 가는 길에 있었으며, 지금 전라북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개암사 지장전에 모셔져 있는 청림사석불좌상이 이곳 고청림사지에 있었던 석불이다.

신청림사는 지금의 청림마을에 있었던 절로 언젠가 소개했던 내소사고려동종이 나온 절이다. 여러 정황이나 절의 규모로 미루어 볼 때, 위의 4대사찰 중의 하나인 청림사는 신청림사인 듯 하다.

선계사는 우반동 선계안골에 있었던 절로 1850~1870년 무렵에 제작한 변산 고지도에 선계사가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조선 말기까지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내소사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니 말할 것 없고…,

실상사가 육이오 때 불탔다는 데 대하여는 정말이지 아쉬움이 크다. 변산의 크나 큰 문화유산 하나를 잃은 것이다.

그동안, 나이 자신 분들의 사진첩 속에 혹 불타 없어지기 전에 찍은 실상사 사진 없을까? 백방으로 알음해 보고, 도나 군 자료 뒤져봤으나 실상사 사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부안문화원 채규병 국장님을 만나 구할 수 있었던 사진이 바로 위의 사진이다. 나중에 유종남 선생님을 만나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거 내가 준 사진이야’ 하신다.

어쨌든, ‘6・25동란으로 효실’이라는 막연한 문헌 기록만 접해왔는데, 얼마 전 육이오 때 변산에서 빨지산 활동을 했던 줄포 사는 김영권 선생님으로부터 실상사가 불탄 내력을 들을 수 있었다.

봉래구곡작전

51년 여름, 빨지산 토벌대들은 사자동 실상사에 진을 치고 변산 빨지산 토벌에 나섰다. 그 당시 변산 빨지산은 병력도 많지 않고, 화력도 형편없었다고 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변산 빨지산을 통틀어 총은 15정 정도가 고작, 그런 빨지산들은 일당백으로 토벌대와 맞서 싸워 크게 이겼다고 한다. 작전명은 ‘봉래구곡작전’…,

빨지산에게 크게 패한 토벌대들은 퇴각했는데, 후미가 막 빠져나갈 무렵 실상사에 불길이 솟았다고 한다. 그때 상황을 지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유서깊은 천년고찰이 그렇게 어이없게 불탔다니…,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실상사가 어떤 절이던가?

신라 689년(신문왕 9년) 초의선사가 창건하였고, 조선 제4대 세종 임금의 형인 효령대군의 원당이 되어 궁재로 중수하고, 또 숙종 때 영허선사(映虛禪師)가 중수하였다. 대웅전, 나한전, 요사, 산신각 등이 있었다고 하며, 대웅전 안에는 고려초기 작품인 불상과 고사경, 고인경, 화엄경소(華儼經疎) 등의 경판과 효령대군의 원문과 월인천강지곡 등 국보급 문화재들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근래에는 원불교 창교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실상사 옆 실상초당에서 원불교 교법을 마련했던 곳이기도 하다. 1986년 9월 9일 실상사터와 그 주변 16,725㎡가 전라북도 기념물(제 77호)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1920년대 초에 육당 최남선은 변산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내소사, 직소폭포를 지나 실상사를 둘러본 후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곧 실상사가되니 영락한 지 오래다. 4대 사찰 중 으뜸이던 풍모는 겨우 그 대적광전의 모습으로 볼 뿐이다. 퍽 크게 만든 관음상인데 잘룩한 허릿매와 넓다란 옷자락과 너그럽고도 어우러진 모습이 고려조 초기의 것임이 의심이 없으며, 절에서 전하는 바로는 서역으로부터 배를 타고 원암 앞바다에 와 닿았는데, 처음 수상한 배가 들어오니 주민들이 다투어 붙잡으려 하였지만 속인에게는 물러나더니, 혜구두타가 나가니 저절로 달겨들어 비로소 그 위에 앉으신 이 관음상을 모셔 내리고, 그로 인해 이곳을 석포(石浦)라고 일컫게 되었다 한다.

수십 년 전까지도 당우가 여러 채 더 있고 불상도 오래된 것이 많았었는데, 집들은 불타 없어지고 부처는 많이 파손되어 이렇게 소잔하여졌다 한다. 그 중에서도 한 불상은 보화가 많이 들어있다 하여 일찍이 도적이 들었었다. 도적은 별다른 것이 나오지 않자 실망하고 돌아갔으나, 그 복장에서 효령대군의 원문과 고사경 및 고인경(古寫經及古印經)이 수백권 나왔는데, 더러는 도난을 당하고 아직 남아 있는 대부분은 높이 쌓아 두고 있다. 대개는 해인본의 제종경론이요, 그 밖에 고려판화엄경소 같은 희귀본도 몇 가지 끼어 있다. 이 밖에 법화경 판목이 불탁 한켠에 쌓여 있을 뿐이요, 다른 아무 불상이 없음은 미상불 소조한 생각이 든다….”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3년 0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