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부인(林下夫人)

    부안 생태기행-변산 ‘으름’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천하양골(天下陽骨) 변강쇠가 옹녀의 양각(兩脚) 번쩍 들고 옥문관(玉門關)을 굽어보며, “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히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 소나기를 맞았던지 언덕 깊게 패였구나. 도끼날을 맞았는지 금 바르게 터져 있다. 생수처(生水處)의 옥답(沃畓)인지 물이 항상 고여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옴질옴질 하고 있노. 천리행룡(千里行龍) 내려오다 주먹바위 신통하다. 만경창파 조개인지 혀를 삐쭘 빼였으며, 임실(任實) 곶감 먹었는지 곶감씨가 장물(臟物)이요, 만첩산중 으름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영계백숙 먹었는지 닭의 벼슬 비치였다. 파명당(破明堂)을 하였는지 더운 김이 그저 난다. …

‘위도상사화’와의 첫 만남

    세계에서 위도에서만 자라는 ‘위도상사화’ 한반도 중하부에 위치한 변산반도를 안고 있는 부안은 일부 난대식물의 북방한계선으로 식물자원의 보고다. 호랑가시나무, 미선나무, 꽝꽝나무, 후박나무 등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변산바람꽃, 그리고 세계적 희귀종인 노랑붓꽃…, 여기에 더하여 위도상사화가 있다. 지난 18일 위도에 다녀왔다. 위도상사화가 보고 싶어서였다. 육지에는 상사화가 만발한데 위도상사화는 혹 져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기우였다. 파장금항에서 위도 소재지인 진리 가는 길섶 곳곳에는 위도상사화가 무리지어 하얗게 피어있었다. 반가웠다. 이제야 위도상사화와 첫 상면을 하게 된 것이다. 2003년 8월21일(격포-위도 해상시위) 파장금항-진리 거리행진 때 지천으로 피어있는 위도상사화를 …

점방산봉수대(占方山烽燧臺)

-위치: 변산면 대항리( E 127。34′, N 35。30′20″) -재료: 석축 -시대: 삼국시대 부안에서 격포방향으로 30호 국도를 따라 20km지점, 변산해수욕장 2km 못미쳐에 대항리 마을이 있다. 마을 중앙에는 400살은 넘음직한 당산나무가 서 있고, 도로 오른쪽 전북체신청 변산휴양소 간판이 있는 골목으로 바닷가에 이르면 지방기념물 제50호 「대항리 패총」이 있다. 점방산봉수대는 이 마을에서 북쪽으로 도로변에 있는 해발 100m도 안되는 나즈막한 산봉에 있다. 백제성모텔 못 미쳐 도로에서 밭길을 따라 15분 정도 산봉에 오르면 연대(煙臺)를 쌓은 듯한 석축과 무너져내린 무수한 돌무더기가 있는데, 여러 흔적이나 정황으로 보아 이 곳이 …

내소사의 봄

내소사에 봄이 완연하다. 벚꽃은 지금 만개, 이번 주가 지나면 질 것 같다. 조선 초, 김시습이 이곳에 와 시 한 수를 남겼다. 蘇來寺소래사 金時習   김시습 梵宮倚山外    범궁은 산모퉁이에 의지해 있고 夕陽樓閣開    석양에 누각이 열려 있다오 僧尋泉脈去    스님은 샘 줄기를 찾아가는데 鶴避茗烟廻    학은 차 끓이는 연기를 휘돌라 가네 寺古松千尺    절은 오래되어 천 길이나 자랐고 山深月一堆    산은 깊어 달이 한 무더기라 無人堪問話    말 물어 볼만한 이 없어서 庭園獨徘徊    뜰에 홀로 서성거릴 뿐 글쓴이 :   부안21   …

격포 월고리봉수대

  봉수의 역사 봉수란 높은 산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횃불(봉·烽) 낮에는 연기(수·燧)로 변방의 위급상황을 릴레이식으로 중앙에 올리는 통신수단을 말한다. 오늘날의 전기통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통신문화유산이다. 오늘의 통신제도가 확립되기 이전에는 봉수제, 우역제, 파발제가 통신제도로 이용되다가 봉수제는 오늘날의 전기통신으로, 우역제나 파발제는 우편제도로 변천되었다. 봉수는 기원전 300년경에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더대왕 시대에 사용되었음이 문헌에 보이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백제(온조왕), 가락국(수로왕) 때부터 봉수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제도화된 것은 고려 의종 때로 보인다. 고려시대에 정비된 봉수제도는 조선시대로 이어져 잦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며, 왕조 …

풍년기원의 용신제

  김형주(향토사학자.전 부안여고 교장) 지난 4월 8일(1999년) 변산 位金山城 아래 개암동, 개암호의 만수로 넘치는 수문 앞에서는 길이 6.5m, 폭 2.1m 크기의 거대한 龍塘旗에 청룡이 용트림으로 오르는 모습을 그린 용신을 모시고 풍년을 기원하는 龍神祭가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용은 물을 관장하는 水神이어서 물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上西面 농민회원들이 한해의 농사일을 시작하는 始農의 의식을 겸한 물내림의 행사로 개암호 깊은 물에 棲依하고 있을 농업의 신인 용신에게 雨順風調와 除厄進慶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농민들의 협동 단합을 다짐하는 한마당 굿놀이 판의 축제를 연 것으로 …

이완용휼민선정비

  자를 경덕(敬德), 호를 일당(一堂)이라 한 을사오적 가운데 한 명인 이완용은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에서 우봉(牛峰) 이씨 호석(鎬奭)과 신씨(辛氏) 사이에서 태어나서 열 살 때부터 판중추부사 호준(鎬俊)의 양자가 되었고, 1870년에 양주 조씨 병익(秉翼)의 딸과 결혼했으며, 1882년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했다. 이후 규장각 대교 검교, 홍문관 수찬, 동학교수, 우영군사마, 해방영군사마 등을 거쳐 육영공원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웠고, 사헌부 장령, 홍문관 응교 등을 거쳐 1887년에 주차미국참찬관(駐箚美國參贊官)이 되어 미국에 갔다가 이듬해 5월에 귀국하여 이조참의를 지냈다. 이 해 12월에 다시 참찬관으로 미국에 갔다가 1890년 10월에 귀국하여 우부승지, …

강,물,흐,르,듯,이,

      60년대 중반에는 선산이 있는 백산면 대수리로 손수 토담집을 지어 거처를 옮겨 살았다. 분단된 한국에서 작은 고통이라도 분담한다는 자세로 초라하고 고독한 생활을 시작했다. 집 앞에 자그마한 화단을 가꾸고 유난히 꽃과 나무와 자연을 사랑하여 잘 키운 꽃들을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고 여러 차례 지리산 천왕봉과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했다. 그렇지만 지운이 고국의 독립을 위해서 사회주의를 택했던 까닭에 분단된 한반도에서는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나라 잃었던 식민지 시대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상 전위에 서서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넘나들며 죽음을 무릅쓰고 힘쓰던 독립운동가에게 …

“어! 나무에 쏘세지가 열렸네” – 부들

    부들을 보노라면 어릴 때 빈병이나 떨어진 고무신, 찌그러진 양은냄비와 바꿔먹던 ‘아이스께끼’가 생각난다.’ 팥을 갈아 넣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팥 색깔 나는 물에다 나무젓가락을 꽂아 얼린 얼음과자인데 부들같이 생겼었다. 그런데 이 요물이 어찌나 맛이 있던지…, 이런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내가 언젠가 방죽에 핀 부들을 보고 아이에게 물은 적이 있다. “저게 뭐같이 생겼니?” 아이는 “어! 나무에 쏘세지가 열렸네!” 하는 것이었다. 아! 그렇군. 요즘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자라는 아이들이 1960~70년대의 아이스께끼를 알 리가 없지. 생긴 거야 쏘세지가 훨씬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