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의 역사
봉수란 높은 산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횃불(봉·烽) 낮에는 연기(수·燧)로 변방의 위급상황을 릴레이식으로 중앙에 올리는 통신수단을 말한다. 오늘날의 전기통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통신문화유산이다.
오늘의 통신제도가 확립되기 이전에는 봉수제, 우역제, 파발제가 통신제도로 이용되다가 봉수제는 오늘날의 전기통신으로, 우역제나 파발제는 우편제도로 변천되었다.
봉수는 기원전 300년경에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더대왕 시대에 사용되었음이 문헌에 보이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백제(온조왕), 가락국(수로왕) 때부터 봉수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제도화된 것은 고려 의종 때로 보인다.
고려시대에 정비된 봉수제도는 조선시대로 이어져 잦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며, 왕조 안정의 중요 수단으로 삼았다.
세종조에 이르러서는 봉수의 거화수(炬火數), 봉화군(烽火軍)의 정원 등을 규정하고 봉수망을 재정비하여 사용해 오다가 조선 말 근대 통신시설인 전기통신이 설치되자 1895년 5월 9일 우리나라 봉수제도는 완전 폐지되었다.
봉수의 종류
오늘날과 같이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변방의 위급한 정보를 가장 빨리 중앙에 전달하는 무선통신격인 봉수제도는 군사목적으로 많이 사용하였는데 조선시대에는 수발기관에 따라 직선봉수와 간선봉수가 있었으며, 직선봉수와 간선봉수는 해안이나 국경지역에서 시작하는 연변봉수(沿邊烽燧)와 연변봉수를 받아 중앙으로 연결하는 내지봉수(內地烽燧), 그리고 최종적으로 내지봉수의 내용을 받는 경봉수(京烽燧) 등 선로에 따라 3종류의 제도가 있었다.
봉수 노선
전국의 주요 간선로를 5로(路)로 나누고, 이 5로의 기간선로를 (直烽), 직봉 사이의 중간지역을 연결하는 보조선을 간봉(間烽)이라 하고, 30리마다 설치하여 전국에 369개소의 직봉과 254개소의 간봉 등, 총 623개소가 있었으며, 제주에는 별도로 25개소의 직봉과 38개소의 간봉을 두었다.
<전국의 직봉로선>
제1로 : 경흥(두만강 변)→함경도→강원도→양주 아차산
제2로 : 다대포(동래)→경상도→충청도→천림산(광주)
제3로 : 강계(평안도)→황해도→서울(모악 동봉)
제4로 : 의주(평안도)→평안도→서울(모악 서봉)
제5로 : 순천(전남)→전라도→충청도→개화산(양천)
<전북지방의 봉수로>
전북지역의 봉수로는 해안선을 연결하는 제5로를 연결하는 연변봉수와 내륙의 내지봉수로 20여개소가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연변봉수로(해안선 13개소)
→전남 영광→고창 상하(고리포)→소응포→월고리(부안 격포)→점방산(부안 대항리)→계화산(부안 계화도)→길곶(김제 심포)→사자암(군산 어은)→화산(군산 화산)→점방산(군산 월명공원)→오성산(군산 성산)→불지산(군산 성산)→소방산(익산 함라)→광두산(익산 용안)→충남(은진 강경산)→
내지봉수로(내륙 7개소)
→경남 함양→봉화산(남원 아영)→사두봉(장수)→비봉산(장수)
→성치(진안)→두치(임실)→소방산(익산 함라)
↓
태평(진안)→탄치(완주)→충청남도→
월고리봉수대(月古里烽燧臺)
-위치: 변산면 격포리 산71 ( E 126。 28′, N 35。 36′)
-재료: 석축
-시대: 삼국시대
월고리봉수대는 변산반도의 서쪽 맨 끝지점인 격포에 있다. 이곳은 옛날 수군의 근거지로 수군별장, 첨사 등을 두어 왔고,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 관활의 격포진이 있었던 곳이다. 수심이 깊고 항구로서의 기능이 좋아 1986년 제1종항으로 지정되어 황금어장인 칠산바다의 입항이자 서해 각 도서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또 주위에 채석강, 격포해수욕장, 적벽강, 궁항, 상록해수욕장 등 명승지가 많아 사계절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월고리봉수대는 바로 이곳 격포항 남쪽 봉화산(174.2m) 정상에 있다. 원래 월고리봉수대는 문헌상의 기록이고 실제로는 격포리봉수라고 부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 34 부안현 월고리봉수조에 “월고리봉수 재현서칠십오리 남응무장소응포산 북응점방산(月古里烽燧 在縣西七十五里 南應茂長所應浦山 北應占方山)”이라 하였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산내격포봉대산 원형경오간(약 9m) (山內格浦烽臺山 圓形經五間)”이라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산내”는 산내면이 변산면으로 개칭(1987년)되기 이전의 행정구역 명칭이다.
이 곳에 오르면 남쪽으로 줄포만 너머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와 해리면의 면계에 있는 봉백산(烽白山) 소응포봉수대와 격포의 월고리봉수대 그리고 변산면 대항리 점방산봉수대가 일직선상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봉수대는 파손된 것을 1995년 복원한 것이다. 규모를 보면 하단둘레는 30m, 중간 연대는 둘레가 21.6m 상단둘레는 5.7m 이며, 하단 높이는 1.4m, 중대는 1.1m, 상대는 1.8m로 총 높이는 4.3m이며, 불을 피우기 위하여 굴뚝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12계단으로 되어 있다.)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3년 04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