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방산봉수대(占方山烽燧臺)

-위치: 변산면 대항리( E 127。34′, N 35。30′20″)
-재료: 석축
-시대: 삼국시대

부안에서 격포방향으로 30호 국도를 따라 20km지점, 변산해수욕장 2km 못미쳐에 대항리 마을이 있다. 마을 중앙에는 400살은 넘음직한 당산나무가 서 있고, 도로 오른쪽 전북체신청 변산휴양소 간판이 있는 골목으로 바닷가에 이르면 지방기념물 제50호 「대항리 패총」이 있다.

점방산봉수대는 이 마을에서 북쪽으로 도로변에 있는 해발 100m도 안되는 나즈막한 산봉에 있다. 백제성모텔 못 미쳐 도로에서 밭길을 따라 15분 정도 산봉에 오르면 연대(煙臺)를 쌓은 듯한 석축과 무너져내린 무수한 돌무더기가 있는데, 여러 흔적이나 정황으로 보아 이 곳이 점방산봉수대임이 확실하다. 연대로 보이는 직경 7.8m, 높이 2m가 넘는 원형석축이 있고, 상층부 일부는 움푹 파인 채 잡목과 넝쿨이 우거져 있다. 동남쪽으로도 자연석들이 무수히 흩어져 있다. 이 마을 사람들도 점방산은 잘 모르나 나즈막한 이 산을 봉화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6.25때까지만 해도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봉수대 안으로 피신하기도 했었다는데, 그 후 마을사람들이 허물어다 담장을 쌓았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34 부안현 봉수조에는“재현서육십일리 남응월고리 북응계화도 (在縣西六十一里 南應月古里 北應界火島)”라고 하였다. 또「朝鮮古蹟調査資料」에는 “산내면 대항리 봉화산 원형 경5간(약 9.1m) (山內面 大項里 烽火山 原形 經五間)”이라고 하였다. 참고로 산내면은 변산면의 옛 행정구역 명칭이다.

이 곳에 오르면 고군산군도가 떠 있는 서해가 한 눈에 들어오고, 동남쪽 즉 내변산쪽으로는 노적봉, 장군봉, 흥라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무성한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나 월고리봉수대가 있는 격포의 봉화산이 남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에 있는 계화도봉수대는 한 눈에 들어온다. 즉 월고리봉수대― 점방산봉수대― 계화도봉수대가 일직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라북도 문화재지」, 「전라북도지」, 「부안군지」 등에는 점방산봉수대의 위치를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다음은 1990년에 간행된 「전라북도 문화재지」의 기록이다.
“점방산봉수대는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의 남동쪽 대항마을에서 직선거리 3.1km지점 (부안군지는 2km)에 있는 해발 260m(부안군지는 280m) 고지의 봉화산 정상에 있다. 대항리의 묵정, 서두터, 합구, 방포, 자미동 마을과 지서리의 뙤밭동, 지동, 지남, 중계의 석문동, 군막동, 불무동을 산록에 거느리고, 중계골짜기에서 흘러내려 馬山峰谷에서 북류, 동류, 남류를 거듭하는 만곡천인 백천내는 다시 동류하다가 90。로 꺾이어 북류하면서 이 봉화산 발등을 씻으면서 해창을 거쳐 서해로 흘러가는 굴곡의 정점에 점방산봉수대가 있다.”

그런데 위에서 기록한 해발 260m(혹은 280m) 산 정상 어디에도 봉수대 흔적은 없다. 그리고 위급상황을 신속하게 전해야 할 봉수대라면 비록 낮더라도, 서로 응신할 수 있도록 마주보고 있는 곳이 좋을 것이며, 오히려 낮기에 봉수대 관리상 편리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서해안 다른 지역의 봉수대들 중에도 나즈막한 산봉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위의 기록은 잘못된 기록일 수 있다.

남서쪽으로는 격포의 봉화산이, 북으로는 계화도의 봉화산이 훤이 내다보이는 점, 연대를 빙 둘러 쌓은 직경 12.3m의 석축, 무수한 돌무더기, 그리고 마을사람들의 증언들을 종합해 볼 때, 바로 이 곳이 점방산봉수대터임을 확인할 수 있다.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3년 0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