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부인(林下夫人)

 

ⓒ부안21

 

부안 생태기행-변산 ‘으름’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천하양골(天下陽骨) 변강쇠가 옹녀의 양각(兩脚) 번쩍 들고 옥문관(玉門關)을 굽어보며, “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히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 소나기를 맞았던지 언덕 깊게 패였구나. 도끼날을 맞았는지 금 바르게 터져 있다. 생수처(生水處)의 옥답(沃畓)인지 물이 항상 고여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옴질옴질 하고 있노. 천리행룡(千里行龍) 내려오다 주먹바위 신통하다. 만경창파 조개인지 혀를 삐쭘 빼였으며, 임실(任實) 곶감 먹었는지 곶감씨가 장물(臟物)이요, 만첩산중 으름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영계백숙 먹었는지 닭의 벼슬 비치였다. 파명당(破明堂)을 하였는지 더운 김이 그저 난다. 제 무엇이 즐거워서 반쯤 웃어 두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영계 있고, 제사상은 걱정 없다”

여성의 비밀스러운 곳을 ‘4·4조’로 질펀하게 표현한 명창 신재효가 개작한 판소리 여섯마당 중의 하나인 ‘가루지기타령’의 한 대목으로 여기에는 ‘으름’도 끼어 있다. 도대체 으름이 어떻게 생겼기에 이런 질펀한 소리한마당에 끼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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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향 또한 독특한 ‘한국바나나(?)’

으름은 머루, 다래와 함께 산에서 나는 과실 중의 하나다. 처음 열릴 때는 어린아이의 고추모양이다가 한참 굵어질 때는 남성의 그것과 영락없이 닮았다. 색깔도 처음엔 초록색이지만 차츰 갈색으로 짙어진다. 열매가 완전히 익으면 두꺼운 껍질이 세로로 길게 벌어지면서 동그스름하고 말랑말랑한 과육이 들어 난다. 이때는 여성의 그것을 쏙 빼닮았다고하여 점잖은 옛 어른들도 임하부인(林下夫人)이라는 엉큼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매우 익살스런 이름이다. 제주도에는 ‘아은땐 조쟁이되고 어룬 되면 보댕이 되는 것이 뭐고?’하는 수수께끼가 있다고 한다. 제주도 사투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어릴 때는 남성의 그것 같고 어른이 되면 여성의 그것 같은 것이 뭐게?’ 하는 물음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신재효만이 으름을 그것에 비유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폐일언하고…,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으름이 잘 익으면 저절로 껍질이 쫘악 벌어지는데 이때에 먹는 으름 맛은 씨가 많아서 그렇지 바나나보다도 더 달고, 향 또한 독특하다. 몇 년 전, 마침 으름이 익어갈 무렵 변산 산행에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동행한 적이 있다. 일행들은 모처럼만에 으름을 원 없이 따먹었는데…, 며칠 후 이 아이는 자기 아버지에게 퇴근할 때 으름 좀 사다달라고 하더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사람도 어렸을 때 이 맛난 으름을 찾아 온 산을 헤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으름(Akebia quinata Decne)은 으름덩굴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수로 숲의 가장자리에서 다른 나무를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이다. 황해도 이남의 전국의 산지, 주로 계곡 주변에 자생한다. 으름은 긴 잎자루 끝에 타원형의 작은 잎이 다섯 장씩 모여 하나의 잎을 이룬다. 꽃은 3~4월에 피고 열매는 9~10월에 익는다. 으름은 암수가 모두 한 그루에 있어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서 따로 피는데 암꽃은 수꽃보다 큰 편이고 꽃받침 잎이 뒤로 젖혀진다. 암꽃의 암술머리에는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어 있어 쉽게 수꽃가루가 묻는다. 부안에서는 ‘어름’ 혹은 ‘얼음’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 익어 쫙 벌어진 으름의 새하얀 과육(果肉)의 색깔이 얼음 색깔과 같아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식용, 약용, 천연염색제, 공예용, 환경농업 등에 다양하게 쓰여

예부터 으름은 먹거리 만으로의 열매가 아니고 그 쓰임이 다양하다. 열매가 아직 벌어지기 전에 따다 썰어 말려서 차(茶)를 다려 마시는데 임산부의 부종에 이뇨제로 효과가 좋다고 한다. 뿌리껍질을 벗긴 것은 목통(木通)이라 하여 소변이 잦고, 배뇨장애 통증이 있는 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봄에 나오는 어린잎은 나물로 먹으며, 덩굴은 질기고 강하여 나뭇단 등을 묶는데 쓰거나 바구니 등 생황용구를 만들어 쓰고, 덩굴을 적당한 길이로 잘라 솥에 넣고 삶아 천연염료로 이용하는데 고운 황색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으름의 쓰임은 이게 다가 아니다. 최근에는 과일농가에서 으름녹즙으로 과일 맛내기 한다고 한다. 야생과일 중에서는 최고의 당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정기(精氣)가 충만하다고 하여 으름녹즙을 만들어 과일나무에 서너 차례 뿌려주면 과일의 당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글 사진 / 허철희(글쓴날 200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