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중반에는 선산이 있는 백산면 대수리로 손수 토담집을 지어 거처를 옮겨 살았다. 분단된 한국에서 작은 고통이라도 분담한다는 자세로 초라하고 고독한 생활을 시작했다. 집 앞에 자그마한 화단을 가꾸고 유난히 꽃과 나무와 자연을 사랑하여 잘 키운 꽃들을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고 여러 차례 지리산 천왕봉과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했다. 그렇지만 지운이 고국의 독립을 위해서 사회주의를 택했던 까닭에 분단된 한반도에서는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나라 잃었던 식민지 시대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상 전위에 서서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넘나들며 죽음을 무릅쓰고 힘쓰던 독립운동가에게 분단된 조국에는 작은 토담집과 겨울의 칼바람과 공안 당국의 감시가 있을 뿐이었다.
식민지 시대에 나라의 독립을 방해하고 친일 했던 사람들이 다시 득세하는 이곳에는 진정한 해방이 찾아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위사람들에게 얘기 할 때는 “내가 어디 공산주의 했간디, 모다 나라를 위해서 한 것이지”라고 얘기하곤 했다.<정재철의 “김철수를 다시 생각한다” 중에서>
지운 김철수 · 11
통일 가로막는 교육 걱정했습니다
어릴 때 교육이 중요한 거여 요새 학교 교육이라는 것이 반공 교육만 하니 머리가 클 수가 있겠느냐고 내개 어느 마을을 가는데 멸공마을이라고 간판을 달아 놓았어 멸공이 뭐냔 말이여 원래 좌나 우나 같이 필요한 거여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어야 발전하는 거지 통일하려면 좌 우익 진보 보수 가리지 말고 멀리 보고 강물 흐르듯이 함께 가야는 것이여
강,물,흐,르,듯,이,
/이용범
(기사작성 2007·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