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반도국립공원의 깃대종 ‘변산바람꽃과 부안종개 이야기’

        변산반도국립공원에는 996여종의 동물과 877여종의 관속식물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 많은 생물종 중 관심을 끄는 종이 바로 변산반도의 깃대종인 변산바람꽃과 부안종개이다. 깃대종이란 특정지역의 생태적·문화적·지리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 동·식물로써 사람들이 보호해야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종으로 2007년 국민의 투표와 설문조사를 통해 전국의 국립공원마다 2종씩 선정되었다. 변산바람꽃(Eranthis byunsanensis B.Y.Sun)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식물로 변산반도에서 처음 발견되어 변산바람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높이는 10㎝정도이며 내변산일대의 햇볕이 잘 드는 습윤한 지역에 자생하는 다년초이다. 이른봄 눈이 녹기도 전 성급하게 꽃망울을 터트리는 야생화이며 학술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3년부터로 …

성년 된 변산반도국립공원 보전과 이용의 조화

    올해는 변산반도국립공원이 지정된 지 20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입니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설립된 1년후인 1988년 6월 1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당시 공원관리이념은 70년대의 지역개발위주의 기반시설조성에서 한단계 발전하여 훼손된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하여 보전과 개발을 조화롭게 추진하는 단계에 있었습니다. 1987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창립되고 1988년 변산반도국립공원과 월출산 국립공원을 마지막으로 20개의 지정된 이후 보다 체계적으로 국립공원을 관리하기 위해여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1998년 2월 28일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내무부 산하에서 환경부 산하로 이전하면서 보전지향적 국립공원관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의 변산반도는 도립공원으로서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

우리나라 유일의 반도공원 ‘변산반도국립공원’

    국립공원의 이념과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지정현황 국립공원이라는 개념이 최초로 정립된 국가는 미국인데 1869년 미국 와이오밍(Wyoming)주 옐로우스톤(Yellowstone)지역의 경이롭고 신비한 자연현상을 탐험하기 위한 ‘옐로우스톤 탐험대’가 옐로우스톤의 신비로운 자연현상은 결코 사유의 개념이 아닌 국민 누구나 이용하고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는 주장이 결국 오늘날의 국립공원 이념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국립공원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967년 3월 3일 법률 제1909호로 공포되고 1967년12월 29일 건설부장관이 지리산을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공고하면서 최초의 국립공원이 탄생하게 된 이래 1988년 변산반도와 월출산이 지정되면서 전국에 20개의 국립공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의 개요 …

위도 파시(波市)를 그리며…

  지난 5월1일, 위도에 다녀왔다. 격포항에서 파장금항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40분, 자동차로 부안에서 격포 가기만큼의 시간이다. 그렇건만 육지의 부안사람들에게 위도는 여전히 낯설고 먼 피안의 세계였다. 부안사태 후론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감성일까. 배에서 내리자마자 파장금항 모퉁이 한 식당을 찾았다. 식탁에 오른 반찬들이 섬 정취를 물씬 풍겨준다. 전어구이, 생굴 넣고 끓인 김국, 그리고 병어회무침이라고 해야 할지 병어김치라고 해야 할지 하여튼 병어를 잘게 썰어 양파 오이 등과 무쳐놓은 찬은 적당히 발효가 되어 시큼달콤한 게 입맛을 당겼다. 그러나 식탐 부릴 겨를도 없이 …

쌈터 주민들을 내쫓는 자리에 석정문학관이 들어섭니다 – 부안읍 선은리 선은동

    “마을의 자랑? 마을의 자랑은 무슨 놈의 자랑이여. 몇 대째 여기서 나고 여기서 컸는데, 그런 우리를 내쫒는 게 유명한 시인의 문학관 짓는다고 할 짓여? 보상이라도 제대로 해줘야지, 헐값여 헐값! 그 돈 받아가지고 어디 가서 무슨 집을 져? 우리같은 늙은이들이 어디로 쫓겨가라고. 갈데도 없어! 우린 절대로 못나강게 우리 집 빼고 알아서 허라고 혔어.” 집을 매입당할 처지에 있는 아주머니는 아주 격분했습니다. 해질녘을 그늘 삼아 마당에서 깨를 터는 그이의 바깥양반은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위기감으로 크게 짓눌리는 듯 생애의 주름을 무겁게 접는 표정입니다. …

모정이 있어 마을을 여유롭게 합니다 – 동진면 장등마을 모정

    무더위가 푹푹 찌는 한여름 날에는 그 어디보다도 모정(茅亭)이 최고의 피서지겠죠? 사방이 터지고 천장과 기둥과 바닥 모두 대개 목재를 다듬어 지은지라 다가가 앉기만 해도 곧장 시원한 바람이 살갑게 맞이합니다. 요즘의 집들은 바람의 흐름을 차단하는 구조로 가고 있어 더 덥습니다. 채광과 통풍을 위하여 만들었던 봉창은 이제 그 말조차 듣기 어려워졌고, 확 트인 마루도 샷시작업을 하여 폐쇄형 거실로 사방을 막아버린 터에 모기장으로 바람이 통하도록 했다 한들 답답한 구조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새로 짓는 집들도 선풍기와 에어컨을 사용할 요량으로 바람의 순환을 막아버립니다. 에어컨은 전기 …

가무로 노니는 흥의 산중문화사가 있었으리라 – 진서면 대소뜸

      진서면 석포2리의 해발 200미터쯤 되는 산중 ‘오지’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 대소뜸. 사람이 사는 집이라곤 53년전에 들어와 터를 잡아 살아왔다는 조병문 옹 집과 10년 전에 들어왔다는 중년의 모씨 집 두 가호뿐인지라 마을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문명세계(?)와의 거리상으로 보아 오지라고 하기에도 망설여지는 곳입니다. 차라리 오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모씨의 역설은 의미있는 발언입니다. 현대문명의 최첨단물인 인터넷과 핸드폰은 닿지 않지만 두 가호 중 한집에는 마루를 개량해 만든 거실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청정하고 시원한 산중 자연바람도 한여름의 무더위는 물리칠 수 없나 봅니다. …

변산(邊山)의 수난(受難)

    원(元)나라의 일본 정벌 시 배를 건조한 변산 우리 민족(民族)의 역사(歷史)를 보면 유사(有史)이래 수많은 타 민족의 침략으로 고통과 어려움을 당했다. 이곳 영산(靈山)인 변산도 역사의 수난 속에서 온갖 시련과 희생을 겪어 왔으니 고려 시대로부터 6 .25동란까지의 수난을『부안 군지 1988』에 기록된 대강만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1차로 고려 시대부터 시작되는데 고려 원종(元宗15년 1274)년 원(元)나라는 일본 정벌(政伐)을 이유로 고려에 대소(大小) 전함 9백 척의 건조를 요구해 오는데 배(船)의 종류는 쾌속선(快速船) 3백 척, 몰수선(沒水船) 3백 척, 천석주(千石舟) 3백 척의 건조를 요구하고 원(元)나라는 총 감독관에 홍다구(洪茶丘) …

아! 아름다운 변산(邊山)

    노령산맥이 서해를 향해 달리다 한가닥 던져놓은 산뭉치 간혹 타지역(他地域)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부안(扶安)을 잘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변산(邊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변산(邊山)은 부안(扶安)의 대명사이며 부안을 대변하는 지명이다. 부안(扶安)의 역사(歷史)나, 문화(文化), 생활(生活)의 터전이 변산이며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未來)의 부안까지도 변산(邊山)은 밖변산인 해변과 더불어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인 것이다. 이러한 변산반도는 태고(太古)에 한반도(韓半島) 남, 서쪽을 내려 뻗고 있는 노령산맥(蘆嶺山脈)이 어쩌다가 저 넓은 호남평야(胡南平野)를 훌쩍 뛰어 넘어 서해를 향해 한 뭉치 던져 놓은 기묘한 형국으로 남, 서, 북은 모두 바다로 …

小松의 辯

  제가 그랬습니다. 구지(嶇地)에서 태어나 넓고, 높게 보지도 못하고 사려마저 깊지 못하니 세상을 살아가는 요량이 있었으리오 그저 덤벙거리다… 나름의 몫도 헤아리지 못한 채 괜스레 두려워 망설이는 사이 하나를 가진 사람은 둘을 향해 뛰어가고……. 열을 가진 사람은 백을 향해 달려간 후……. 나는 왠지 밀리고 채이고 부대낀 채로……. 누가 볼세라 고개를 숙인 채 모퉁이로 돌아 ……. 홀로 해명 태명 변방을 서성이다……. 어느 날은 죽장(竹杖)을 친구하여 변산(邊山)의 산새랑, 다람쥐랑, 청솔모 아줌씨랑 만난 듯 숨어 버리는 그들과 하루는 내변(內邊)에서… 한날은 돛단배 멀어져 간 황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