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회가 저지른 ‘인재’의 장소, 그 오늘날

    잃어버린 옛 우반동 경관 물은 반계로 이어져 절정을 이루고(水接磻溪勝) 산은 우반 골짜기에 깊이 숨어 있도다(山藏愚谷深) 시냇가에 핀 꽃은 지나가는 객의 발길을 사로잡고(磵花迷客路) 숲속에서 들려오는 퉁소 소리는 마음을 시원하게 하네(林籟爽人心) 조선 인조 때 김세렴(金世濂, 1593~1646)이 지은 시입니다. 우반 골짜기라 함은 당시 보안현의 우반동(지금의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골짜기를 말합니다. 옛날에는 이쪽 사람들이 산속에서 퉁소를 즐겨 불었나 봅니다. 진서면의 산속마을인 대소도 퉁소와 관련이 있으니 말입니다. 각설하고, 조선시대의 시인이나 묵객(墨客)들이 우반동의 경치를 보고 감탄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시로 표현하고자 하는 감흥에 …

“쪄 말려 떡해먹으믄 맛나”

홀태질하는 할머니 #1. 11월1일 오후. 내소사 가는 길, 진서면 원암마을에서 마주친 한 풍경입니다. 올해 여든일곱의 장판례 할머니. 그이는 집 앞의 시퍼런 콩밭에 주저앉아 낫으로 베어가며 콩대에서 콩을 하나하나 따내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여, 콩대 하나에 한두개 정도밖에 열리지 않은지라 이잡듯 콩대를 뒤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굼뜨고, 까칠하게 쇤 손가락들 사이로 퇴색한 가을빛을 덧칠하며 말입니다. “9월에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통 안열렸어요. 이런 일도 처음인거 같아요. 밥에나 얹어먹을까 허고 한두개씩 달린 거 따보는고만요.” 콩대를 베어내는 일도 힘에 부치는지 콩대가 쉬 베어지지 않습니다. …

치도리 당집 무신도의 주인공은 임경업이 아니다

    얼마 전에 위도 지역에도 임경업 당이 존재한다는 언론보도를 접한 적 있다. 일부 학자들이 위도면 치도리 당집을 답사해, 당집 안에 걸려 있는 무신도를 살펴보고, 치도리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제기한 주장을 언론이 보도한 것이다. 지금까지 조선조의 실존 인물인 임경업 장군과 관련된 신앙의 분포권은 연평도를 중심으로 한 인천광역시와 경기도권, 그 아래으로는 충청도 일대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지역에선 임경업 관련 사당이 있기도 하고, 임경업 장군을 마을의 수호신 또는 바다의 신으로 모시는가 하면, 해마다 임경업을 위한 굿이 행해지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마을의 …

‘엄정한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공원내 환경저해시설 정비현황

  국립공원은 수려한 자연생태계 및 자연 및 문화경관을 보호·보존하면서 지속가능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서 국민들이 영속적으로 그 혜택을 향유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지정하여 관리하는 지역이며, 우리나라는 1967년 국립공원제도가 도입된 이래 모두 20개소의 국립공원이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엄정한 보전을 추구하는 국립공원의 이념과는 달리 해상을 제외하고 국립공원내 39%에 달하는 사유지 문제는 토지소유주 등 공원내 거주민들로부터 토지이용과 건축물의 제한에 대한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등 불만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국립공원 주요입구와 계곡변 등에 공원지정 이전부터 설치된 각종 영업시설, 주택, 축사 등이 노후·불량상태로 난립·산재되어 있어 …

자연과의 공존을 꿈꾸는 변산반도국립공원

  국립공원의 시설물은 일반 도심에서 볼 수 있는 시설물과 다르다. 외형은 도심의 그것과 유사할 수 있으나 설치하게 된 동기 또는 접근 자체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연과 시설물이라는 부조화의 개체들이 모여 본래 하나의 모습이었던 것처럼 일체화되도록 융화시켜 자연에 순응하며 공존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국립공원의 시설물은 건축의 3대 요소인 「구조」, 「기능」, 「미」에 「환경」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추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의 주택이 그것의 장소로부터 쉽게 확장될 수 있고, 그곳에 자연이 근사하다면, 그곳의 환경과 호흡을 같이 하도록 하게 하라. 만약 …

자연과 함께하는 국립공원 자원봉사활동

    지난 2007년 12월 7일 태안앞바다에서 일어난 ‘삼성-허베이 스피리트 원유 유출 사고’때 보여준 우리 국민들의 단합된 모습을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원봉사에 참여한 인원이 100일만에 100만명을 훌쩍 넘겼다고 한다. 기름제거 뿐만 아니라 식사제공, 방제물품지원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자원봉사활동이 이어졌다. 하나하나의 작은 손길이 모여서 이뤄낸 기적 같은 일이 아니었나 싶다. 자원봉사(自願奉仕)의 한자를 풀이해 보면 ‘스스로 원하여 돕는 일’이라고 되어 있듯이 일반적으로 자원봉사는 무보수성과 자발성을 배경으로 실행되고 있으며, 특히 요즘은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과 기업에서까지 졸업과 취업을 위한 …

[오! 주류성-5] 주류성(周留城)과 백강(白江)은 어디인가?

    662년 총력을 기울인 두량이성(豆良伊城) 싸움에서 백제부흥군한테 패한 신라는 타격이 컸다. 당군이 백제부흥군에 포위되어 곤경에 빠진 틈에 독자적으로 백제부흥군 세력을 발본색원하려던 태종무열왕의 야망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패전 충격으로 인해 태종무열왕은 통일의 웅지에 불을 당겨 놓고 아직 그 귀결을 보지 못한 채, 태자 법민에게 마무리과업을 물려주고 죽고 만다. 이처럼 백제부흥군은 두량이성 싸움 승리로 기세를 떨쳐 백제 부흥도 눈앞에 두는 듯 했으나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복신이 모반하지 않을까 의심한 풍왕은 복신을 죽이는 자중지란에 빠지게 된다. 이때의 상황을 <구당서>백제전 용삭2년조의 …

[오! 주류성-4] 豆良伊城은 부안에 있다

    전영래 박사는 “고사비성(古沙比城)은 궁색스럽게 5만분의1 지도상에서 찾아낸 김제군 진봉면의 古沙里가 아니라 百濟五房城 중의 하나인 中方古沙夫里城으로 오늘의 고부(古阜)임을 밝혔다. <삼국사기> 지리편에도 ‘古阜郡 本 百濟古沙夫里郡 景德王 改名今因之…(고부군은 본래 고사부리군인데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주서(周書)’.‘북사(北史) 등의 백제전에는 국내를 오방(五房)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했는데 당 고종대에 엮어진 ’한원(翰苑)(蕃夷部 百濟)에 인용된 ‘괄지지(括地志)’에는 ‘房은 중국의 도독(都督)과 같으니라’하고 다음과 같이 오방을 설명하고 있다. “國南二百六十里에 古沙城이 있는데 城房百五十里步요 이는 그 中房이라 房은 兵千二百人을 거스리며 國東南百里에 得安城이 있는데 城方은 一里요, 此其東方이라. 國南三百六十里에 卞城이 있는데 …

[오! 주류성-3] 두량이성(豆良伊城)은 어디인가?

    660년 백제 도성이 함락되자 소정방은 의자왕과 왕자 융 등 포로들(구당서 58명, 유인원의 平百濟碑에는 7백여명,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장사 88명, 백성 12,807명, 김유신전에는 왕과 신하 93인 군졸 2만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을 당에 끌고 가서 고종에게 바쳤다. 당 고종은 의자왕 일행을 접견했으나 죄를 묻거나 벌을 주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 ‘금자광록대부위위경’이란 벼슬을 주어 예우했다. 그러나 며칠 뒤 의자왕은 억울하고 분통터지고 한 많은 망국의 설움을 감내하기 벅차 이국땅에서 허망하게도 지존의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렇다고 백제가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었다. 투항을 거부한 백제군은 …

[오! 주류성-2] ‘장패들‘과 ’신라28장군 묘’

    상서면 소재지인 감교리 일대의 들판에는 전쟁과 관계되는 지명이 많다. ‘장밭들(長田坪) 또는 將敗坪)’, ‘신라 28장군 묘’, ‘대진터(對陣터)’, ‘되야지터(退倭地터)’ 등이 그것이다. ‘되야지터’는 정유재란 때 왜군을 물리친 연유로 유래된 지명이므로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장밭들 또는 장패평’, ‘신라 28장군 묘’, ‘대진터’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장밭들(長田坪)‘을 살펴보자면 ’將‘자가 ’長‘자로 변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싸움이 벌어졌던 곳에서 연유된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장패평(將敗坪)‘은 너무도 확연하다. 문자 그대로 ’장군이 싸움에서 패하였던 들판‘이란 뜻이다. 그리고 청등리 개암사 입구 동쪽 도로변에는 19기의 고인돌이 몰려있다. 원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