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쪄 말려 떡해먹으믄 맛나”

홀태질하는 할머니

#1.

11월1일 오후. 내소사 가는 길, 진서면 원암마을에서 마주친 한 풍경입니다. 올해 여든일곱의 장판례 할머니. 그이는 집 앞의 시퍼런 콩밭에 주저앉아 낫으로 베어가며 콩대에서 콩을 하나하나 따내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여, 콩대 하나에 한두개 정도밖에 열리지 않은지라 이잡듯 콩대를 뒤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굼뜨고, 까칠하게 쇤 손가락들 사이로 퇴색한 가을빛을 덧칠하며 말입니다.

“9월에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통 안열렸어요. 이런 일도 처음인거 같아요. 밥에나 얹어먹을까 허고 한두개씩 달린 거 따보는고만요.” 콩대를 베어내는 일도 힘에 부치는지 콩대가 쉬 베어지지 않습니다. “콩 다 따시려면 한 일주일은 걸리겄고만요.”

“일주일이 뭐야, 한달은 걸리겄어요. 내가 뭐 힘이 있어야지요. 30년전 교통사고로 병신이 되고나서 후유증으로 더 힘들고만요. 저 앞에서 운전수가 눈길을 잘못 들이대는 바람에 시내버스에 타고 있던 내가 지붕을 뚫고 바닥에 쿵 떨어졌어요. 허리뼈가 망가진거지. 운전수를 그냥 내보내줬는데, 이렇게 후유증이 올 줄 알았어야지. 내가, 운전수가 한번만이라도 찾아왔드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턴디, 한번을 와보지를 않도만요. 사람 사는 세상에, 그게 평생 가슴에 맺히데요. 이렇게 병신이 되고나니 일어서서 일을 할 수가 있어야지. 영감도 나 먼저 가네 하고 가버리고, 내가 빨래를 해주기가 싫었던게지.”

집은 남루했으나 곶감들이 마루에 줄줄이 걸려 있어 겨우 사람 냄새가 났습니다. 놉 얻어 마늘도 심어놓아 홀로 살아가면서도 내년 봄을 향한 살림살이 준비는 하나하나 챙기고 있었습니다. 밭 옆의 마을길로 동네 아주머니가 들어가며 뭐라 말하지만 할머니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합니다. “안보여, 아무것도. 콩도 건성으로 따는 것여. 다 잊어버렸어. 한글도 다.” 그이의 몸이 기억하는 것은 지금 여기 산다는 것뿐일까요. 그래서 그이는 콩 한대에 겨우 하나씩이나 매달린 콩을 찾느라 주섬주섬거릴까요.

우리 아들이 보면 난리나요

#2.

같은 날 같은 마을에서 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풍경. 한 2천평 가까이 되는 논, 말이 논이지 누런 잡초들로 우거져 있으며 한쪽 귀퉁이에 가까스로 잡초들과 뒤섞여 있는 나락들을 볼 수 있는 논입니다. 그 논에서 세 명의 노인네들이 쭉정이나 다름없는 나락을 베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쓰러진 벼들도 많아 콤바인으로 수확을 하기 전에 낫으로 일차 베어내는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만, 이 노인네들은 수확을 아예 포기한 논빼미에서 이삭 줍듯 낫질을 합니다.

풀밭을 헤치고 그이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봤습니다. “아따 여그는 풀농사를 지으셨네요잉, 어쩌다가 이 지경을 만들었데요?” “그러게 말이오. 논 임자는 따로 있어요. 서울에 사는 양반인디, 모만 심어놓고 약도 안치고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 때가 되어 나락을 거두러 왔다가 이 꼬라지를 보고 포기하고 돌아가버렸어요. 그래두 아까운디 내버려둘 수는 없고 해서 우리가라도 비어보고 있소. 처음에는 풀 속에 섞어진걸 비어내려 하니 까탈스럽도만 이제 좀 요령이 생겼고만.” “서울 양반은 농사 안질라면 딴 사람에게 맡기기라도 허지 그런데요.” “요샌 누가 남의 땅 지을라고 허간디. 글고 논 임자가 부잔게 굳이 안맡긴 모양이오.”
한 할머니가 한마디 더 덧붙입니다. “우리 아들이 보면 난리나요. 이런 실속도 없는 허드렛일 한다고, 그리서 지금 몰래 나와 비는거요.” 쭉정이는 불 놓고 알맹이는 거둬들인다드니, 잡초는 불 놓고 쭉정이라도 건져내는 판입니다. 쭉정이 쌀을 한 가마나 건질런지요. 할머니들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잃어버린 삶의 풍경

#3.
한달 전 10월l일 오전, 같은 마을. 나락을 거둬들이기에는 좀 이른 때인 듯싶습니다만, 한 할머니가 마당에서 홀태에 나락을 훑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발견하자마자 놀라워할 시간도 없이 나의 몸은 이미 그이에게 향했습니다. 작게 묶여진 나락 다발들이 하나의 낟더미를 이루고 있고 연세 지긋한 할머니는 낟알들을 싹싹 훑어내렸습니다. 이빨 사이에 누런 나락 모가지들을 끼운채 홀태는 청명한 천고마비의 가을하늘을 살 지우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담장 바깥쪽으로는 텃밭이 있고 알알이 영그는 쑤시가 살지고 있어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시골스런’ 풍경이 펼쳐지는 그림입니다.

운좋게도 우연히 이 풍경과 마주한 나로서는 마치 1970년대 초까지도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터라 시간이 거꾸로 되돌려진 느낌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경북 봉화나 전남 여수 등지에 가게 되면 아직도 황소로 밭을 가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만, 홀태에 나락을 수확하는 모습은 아마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우리네 물질문명의 ‘잃어버린 삶’입니다. 농경박물관이나 사극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그 잃어버린 모습이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매우 살가우면서도 ‘진기한’ 풍경이었습니다만, 그 할머니마저도 한 30년만에 처음으로 재현해내고 있는 홀태짓이랍니다.
여든 한 살이라는 할머니는 30년만에 해보는 일임에도 홀태일이 복잡하지 않아서 그런지 몸놀림이 익숙하게 나락을 훑어내렸습니다. 이빨 사이에 수북이 쌓인 나락 모가지들을 한번씩 빼내고는 이내 그이는 홀태가 움직이지 않도록 한 발로 밟고 같은 일을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연세가 연세인지라 힘에 부치는 몸소리도 나락 훑는 소리에 뒤섞입니다. 궁금합니다. 할머니는 왜 30년만에 갑자기 홀태를 들고 나왔을까요? 집 마당이 내소사 가는 길에서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내소사 관광객들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이의 집은 한식집을 운영합니다만, 관광객을 끌기 위한 일종의 삐끼(호객) 연출로 전혀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럴 작정이었다면 그이는 도로 옆 주차장에 버젓이 내놓고 연출을 해보였을겁니다.
“9월에 비가 많이 왔잖아요. 저기 길 건너 논에 가보았더니 나락이 많이 자빠져 있네. 물에 축축히 엉켜 자빠져 있는 것들이 벌써 싹을 틔우고 있지 뭡니까. 아깝잖어, 그대로 내버리기에는. 내가 낫들고 들어가 포도시 비긴혔는디 논바닥이 질퍽히서 끌어내오지를 못허겄어. 볏다발이 물 먹은지라 어찌나 무거운지, 그리서 아들놈보고 끄집어 내달라고혀서 여까지 가지고 왔어. 근디 아들놈은 내가 하는 짓이 한심해보이는 모양여. 나락도 별로 나오지도 안허겄고만 힘들게 헛일한다는거지 머.”
낟더미를 살펴보니 모가지에 달린 낟알들은 이미 연두색 새싹들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모가지가 물기에 젖어 있어 싹 틔우기에 충분했습니다. 할머니는 싹이 튼 나락들을 골라내기에도 바빴습니다. “싹이 겁나게 나버렸고만. 이 훑은 나락을 쪄 말려서 밥을 해먹든 떡을 해먹든 하면 맛이 좋아, 근디 왜 이걸 버려. 수십년만에 홀태짓하니까 옛날 생각이 많이 나네. 이 홀태를 이웃집에서 빌려왔는디 내가 달라고 히야 쓰것고만. 자주 쓰야쓰겄어.”

오래된 삶의 가치

#4.
이 할머니가 홀태질을 하게 된 까닭은 다름 아니라 쓰러져 싹틔우고 있는 나락을 건지기 위해서입니다. 이 나락들을 버린다고 해서 밥먹고 사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할머니에게는 소중한 곡식입니다. 오늘의 기계문명화된 사회에서 농사도 시간이 돈입니다. 콤바인 따위들로 기계화된 영농을 하는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락 몇 되 건져보겠다고 며칠을 투여해야 하는 노력을 기계화된 시간의 개념으로는 전혀 납득할 수 없을겁니다. 어쩌면 아들 세대들이 보기에 ‘늙은이의 추태스런 짓거리’일지도 모릅니다. 또는 ‘뭐 건져먹을 게 있다고 저렇게 쓰잘데기 없이 일하나’ 하는 생각일겁니다.
할머니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시간투자 대 산출효과’라는 극대화된 경제적 계산으로 잣대질하지 아니하며 오로지 한 알이라도 소중한 곡식으로 받아들이고, 느리고 적은 양일지언정 그 곡식을 내버리지 않고 거둬들이는 것도 곧 그이들이 살아온 생활양식의 시간 개념입니다. 보리 이삭을 하나하나 줍느라 한나절이고 두나절이고 몸 바쳐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홀태질하는 할머니’는 우리네 농촌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감흥스러운 풍경입니다만, 그것은 할머니의 추억거리로서가 아니라 곡식을 소중히 여기는 살림살이의 생활양식을 몸소 말해주는 진솔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그이에 있어 한평생의 삶 자체가 되어왔던 가난을 이겨내는 지혜였습니다. ‘송곳으로 찌를 땅뙈기 하나 없을 정도로’ 집도 없이 가난했다는 할머니, 그이는 지금은 너른 집과 땅을 가지고 있어 부족할 게 없으나 오래된 농경적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아들 내외에 대해서는 불만이 좀 있는 듯합니다.
기계화된 삶의 척도는 세대의 흐름과 함께 생활양식들의 충돌을 일으켜왔습니다만, 할머니들이 지녀온 ‘오래된 삶의 가치’는 마을의 폐가처럼 역사적으로 소멸되는 흔적에 불과해지고 있습니다.


/글·사진 _고길섶 문화비평가

* 이 글은 부안독립신문에 게재한 글을 수정·증량한 글입니다.
2007·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