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도리 당집 무신도의 주인공은 임경업이 아니다

 

 

▲치도리 당집의 무신도ⓒ부안21

얼마 전에 위도 지역에도 임경업 당이 존재한다는 언론보도를 접한 적 있다. 일부 학자들이 위도면 치도리 당집을 답사해, 당집 안에 걸려 있는 무신도를 살펴보고, 치도리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제기한 주장을 언론이 보도한 것이다.

지금까지 조선조의 실존 인물인 임경업 장군과 관련된 신앙의 분포권은 연평도를 중심으로 한 인천광역시와 경기도권, 그 아래으로는 충청도 일대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지역에선 임경업 관련 사당이 있기도 하고, 임경업 장군을 마을의 수호신 또는 바다의 신으로 모시는가 하면, 해마다 임경업을 위한 굿이 행해지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마을의 어부들이 바다로 고기 잡이를 나갈때면, 시절에 따라 임경업 사당을 찾아가서 제사를 올리기도 한다.

 

조기잡이 풍어신 임경업 장군

서해안의 여러 지역에 분포된 임경업 관련 설화 중에는 임경업이 조기잡이를 처음으로 시작했다고 하는 내용도 있고 그가 중국으로 가는 뱃길에 배가 고파서 가시(엄)나무를 바다에 빠뜨려 조기를 잡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이러한 설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분명 임경업은 서해안의 조기잡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설화 덕분에 임경업은 서해안 지역을 대표하는 풍어신(豊漁神)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위도 지역엔 서해안을 대표할 만한 풍어제인 마을 굿이 있다. 물론이다. 위도 띠뱃굿이다. 지금이야 띠뱃굿이 대리 마을에서만 전승되고 있지만, 진리와 치도리, 그리고 식도리 등 위도의 각 마을에서는 띠뱃굿과 그 제의형식이 거의 똑 같거나 그 형태가 비슷한 마을굿들이 근래까지 전승돼 왔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위도의 여러 마을에서 각각 모셔 온 당집의 신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대리 마을엔 원당마누라신이 모셔져 있고 진리 마을에서는 산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 왔다.

이렇게 위도지역 다른 마을의 당집에 모셔진 신들의 성격이 민속학자 등에 의해서 어느 정도 조사 ·분석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치도리 마을에서 모셔 온 당신의 성격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임경업 신앙의 분포권은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

마을 주민들 가운데에서도 치도리 당집에 오랜 세월 동안 어떤 신을 모셔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다만 현재 당집에 모셔져 있는, 그 내력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무신도를 두고, 그 무신도의 주인공이 누구일지 막연하게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치도리 당집ⓒ부안21

치도리 당집에 모셔진 무신도의 주인공이 과연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우선 그 무신도가 어떻게 그려져서 그 당집에 모시게 됐는지, 그 내력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사에 따르면, 이 무신도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송기운씨라는 분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분은 대리마을의 원당 무신도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친조카인 서대석씨의 증언에 따르면 고 송기운씨는 치도리 마을 출신으로, 전남 영광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묵화를 배웠다고 한다. 그 뒤 군대에서는 차트병으로 복무했다고 한다.

고 송기운씨가 어떤 인물인지는 차후 다른 기회를 통해 자세하게 소개하기로 하고, 송기운씨가 그린 치도리 당집의 무신도에 대해서 좀 더 기술해 볼까 한다.

치도리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치도리 당집에 걸려 있는 무신도는 고 송기운씨가 약 30년전에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본래 치도리 당집에 있었던 무신도가 이런저런 사연으로 사라지자, 그분이 치도리 당집에서 봤던 기존 무신도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분이 그려 지금까지 전해 오는 무신도가 예전의 무신도와 어떤 차이점이 있고, 어떤 유사점이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현재 치도리에 거의 없는 실정이다.

치도리 당집에 있는 무신도의 주인공이 임경업이라고 정확한 근거를 들어서 증언하는 치도리 주민도 없지만, 그 주인공이 임경업이 아니라고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주장하는 주민도 치도리엔 없다.

▲치도리 당집에서 본 치도ⓒ부안2

그렇지만 이 무신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주인공은 임경업이 아니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

먼저 이 무신도의 옷 중앙의 胸背에 그려진 학을 보자.흉배에 학이 그려진 것은 주로 문관 출신들의 옷에 그려져 있는데, 임경업은 문관이 아닌 무관이다.

또한 서해안 일대의 여러 지역에 보이는 임경업 무신도는 주로 말을 타고 있는 장군상의 모습인데, 치도리 당집에 모셔진 무신도는 좌정해 있고, 양쪽에 시녀가 그려져 있다.

다음은 임경업 신앙의 분포권이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임경업 신앙은 충청도 일대까지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 아래 지역인 고군산 일대와 위도 지역에서는 확인된 바 없다.

특히 위도 지역을 오랫동안 조사한 연구자들은 한결 같이 위도 지역에서는 임경업 관련 신앙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치도리 당집의 무신도가 임경업장군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라는 세 번째 근거는 위도지역의 주민들 가운데에서 임경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임경업을 치도리 마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셨다는 이야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치도리 당집 무신도의 주인공은 임경업이 아니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치도리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당집의 무신도 주인공에 대한 취재 조사를 해 보았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당집에 모셔진 무신도가 임경업 장군을 형상화한 것인지 알지도 못했고, 몇분의 주민은 당집의 무신도 주인공이 혹시 임경업일지도 모른다고 증언은 하지만 화가인 고 송기운씨가 진짜로 임경업을 상상해서 그린 것인지 아니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기존의 무신도가 임경업을 묘사하고 있었는지 알지도 못하는 등 납득할만한 어떤 주장도 피력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정황과 증언들을 검토해서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현재 치도리 당집에 걸려 있는 무신도의 주인공은 임경업이 아닌 듯 하다.

아울러 그 무신도가 임경업장군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당집의 무신도가 혹시 임경업일지 모른다고 주장하는 일부 치도리 주민 조차 위도 지역의 당집에 임경업이라는 인물을 신으로 모셔왔다는 역사와 전통을 기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임경업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질문하자, 임경업을 다룬 소설이나 영웅전 등을 통해서 임경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증언했다.

위도면 치도리 당집에 모셔져 있는 무신도의 주인공이 과연 누구인지,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치도리 현지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실과 현지 주민들의 증언들을 종합해 볼때 치도리 당집에 모셔져 있는 무신도의 주인공이 임경업장군을 형상화 한 것은 분명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주장해 본다.


/서주원
200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