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범 연작 시]지운 김철수6 – “풍설흑야風雪黑夜에 김동지였지!”

    “김철수는 자신이 사회주의 사상을 갖게된 것은 천성적으로 가난한 사람과 약자를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고, 특히 걸인이나 아려운 자들을 보면 도와주는 집안 고모의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하였다. 이러한 성향은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반쪽의 독립과 불쌍한 자들의 계급해방을 위한 행동으로 나타났다.”(정재철의 ‘민족의 하나됨을 위한 고독한 삶’ 중에서)   지운 김철수 · 6 그는 천상 동지였습니다. 흩날리는 눈발 헤치며 비밀리에 서울가다 이리역에서 환승換乘하는 사이 옛 동지 임혁근을 찾았습니다. 늙은 아버지 돌보고 단칸 방에서 취위에 떨며 굶주린다는 소식 듣고 담요 한 장 가지고 …

행정의 전문가 향리(鄕吏) 이야기 [2]

  부안고을의 향리 이야기 고을의 행정을 수행하는 중심 관청은 수령의 집무처인 동헌과 아전들의 우두머리격인 이방의 집무소인 질청(作廳:椽廳)이었다. 부안고을의 관아인 동헌은 부안군청의 뒤 지금의 중앙교회 자리였고 그 내삼문 아래 옛 경찰서 자리에 질청이 있었다. 질청의 옆 동편으로 군청 자리에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闕牌)와 위패(位牌)를 모신 객사(客舍)가 있었으며 서편으로 옛 교육청 자리 뒤에 형방청이 자리하고 객사 앞에 호방청이 있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군청을 중심으로 한 그 일대가 부안고을의 행정 중심지였다. 아전이란 별난 족속이 아니다. 오늘날의 도청이나 군청의 공무원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다른 점이 …

행정의 전문가 향리(鄕吏) 이야기 [1]

  향리의 뿌리는 지방의 호족(豪族)이었다 향리란 지방의 행정기구인 관아에 딸린 하급 관리인 구슬아치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 아전들은 고을의 수령인 감영(監營)이나 부목군현(府牧郡縣). 진영(鎭營). 역원(驛院)의 수령의 명을 받아 행정을 수행하는 최 일선의 행정 전문가요 오늘날의 지방공무원들이었다. 아전을 크게 나누면 임금이 정사를 펴는 중앙의 각 관서에 딸린 경아전(京衙前)과 지방관청에 딸린 외아전(外衙前)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아전이라 하면 외아전인 향리(鄕吏)를 이르는 말로 쓰고 있다. 이들의 집무소가 고을 수령의 정청(政廳)인 관아 즉 동헌(東軒)을 중심으로 지근지처인 그 앞에 있다고 하여 아전이라 호칭 한다. 그 외에도 서리(胥吏). …

부안의 관아(官衙)와 공해(公廨)

  수령의 집무소 관아 앞에서 조선시대 부안의 행정치소인 읍성(邑城)에 대하여 그 형태와 규모, 위치 그리고 세 곳의 성문의 문루와 그에 관한 명사(名士)들의 시문(詩文) 등을 간략하게 살펴보았거니와 이와 같은 행정치소의 공간 안에는 고을의 수령이 정사를 보는 동헌(東軒)을 중심으로 여러 부속 공해(公廨) 들은 어디에 어떻게 배치되어 고을행정이 펴져 왔는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서 관아(官衙)와 공해(公廨)라 함은 관공서와 그에 따른 건물을 총칭하는 말이며, 고을의 수령을 비롯한 육방(六房) 관속들인 아전들이 집무하는 건물이란 뜻으로 관사(館舍)라 하기도 하고 이속(吏屬)들이 모여 고을의 일을 처리하는 곳이란 뜻으로 순수한 …

전봉준과 다른 길에 선, 부안 대접주 김낙철

  김낙철(金洛喆 1858-1917)은 부안김씨이고 자는 여중(汝仲), 동학 도호는 용암(龍菴)이다. 부안읍 봉덕리 쟁갈마을에서 출생했다. 쟁갈마을은 안쟁가리, 용성리, 새멀, 송학동 등 네 개 뜸이 있는데 김낙철은 새멀에서 산 것으로 보인다. 김낙철은 체격이 크고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700석 정도를 거두는 부자로 글을 읽는 선비였다. 동학에 입교하다 김낙철은 1890년에 동생 낙봉과 함께 동학에 입교하였다. 동학의 지도자들과 접촉하면서 조선 사회가 당면한 어려움의 실상을 알 수 있었고 동학을 통해 극복 할 수 있다고 확신한 듯 하다. 교도가 증가함에 따라 교주 최시형이 순회 포교에 나서 1892년 7월에 …

유형원, 부안에서 꿈을 준비하다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살던 우동리 마을은 부안 김씨들의 집성촌이다. 김홍원이 유관이 국가에서 받은 땅을 유형원의 조부인 유성민으로 부터 매입한 이후 이곳은 부안 김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반계라는 호를 통해본 유형원 반계라는 호는 그가 살던 마을을 흐르는 시내에서 호를 따 왔다고 하나 부안 김씨 고문서에는 분명히 마을 앞을 지나는 개울 이름은 장천(長川)이라고 하였다. 반계는 오늘날 중국 섬서성 보계시 동남에 있는 강물로 남산이란 곳에서 물줄기가 시작되어 북쪽으로 흘러 위수라는 강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강태공이라 부르는 태공망 여상이 주나라 문왕을 만나기 전에 낚싯대를 드리우던 …

신선대(神仙台) 옛터

  청학동으로 간 신선대 사람들 6.25전쟁 후, 변산의 신선대에는 일심교 신도들이 모여들어 18가구 80여명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었다. 일심교는 ‘유불선 동서학 합일 갱정유도’를 내세우며 세계의 모든 종교가 유교로 뭉쳐질 것을 믿는 강대성이 세운 신종교이다. 이들은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생활관습을 그대로 좆아 사서삼경을 읽고, 상투, 댕기머리에 흰옷을 고집하며 신학문, 현대문명과는 담을 쌓고 살다가 1970년대 중반 무렵 지리산으로 이주해 갔다. 지금의 그 유명한 “지리산 청학동”이 바로 그 곳이다. 1996년 경까지만 해도 추석 때 신선대로 성묘 오는 그들(은재필 씨 가족)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묘를 …

“윷은 ‘고라실 윷’이랑게” 변산에서 만난 신명난 윷판

  지난달 30일 변산면 마포리에서 신명나는 윷놀이판을 만났다. 고향을 지키며 유기농을 짓는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병원에서 치르지 않고 집에서 문상객들을 맞고 있었다. 마당 한켠에서 윷판이 벌어졌다. 김제평야의 중심 부안 백산면에서 온 선수 2명과 변산면 출신 선수 두명이 1만원씩을 걸고 입장하였다. 윷은 남도 특유의 깍쟁이윷. 상차림에 오르는 간장그릇에 때죽나무로 만든 작은 윷가락을 담아 풀잎을 뜯어 말판을 그린 커다란 멍석에 뿌리는 것이다. 빙 둘러선 구경꾼만 30여명 윷가락이 멍석에 깔릴 때마다 희비가 엇갈린다. 말을 쓸 때마다 모두 한 마디씩 숨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지며 …

갯벌 매립과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

  서해 갯벌 파괴한 새만금방조제, 한국판 모아이 석상 남미의 칠레에서 서쪽으로 3,700km 떨어진 남태평양 한가운데 제주도의 10분의 1 정도 되는 크기의 이스터섬이란 섬이 있다. 1722년 유럽인들이 이 섬을 처음 발견했을 때 섬 사람들은 누추한 갈대 오두막이나 동굴에서 기거하며 전쟁으로 날을 지새고 있었다. 워낙 식량이 부족하여 인육을 먹기도 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이 섬 주민들의 야만스러움에도 불구하고 한 때 번성했던 사회가 있었던 흔적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해안을 돌아가며 2백 개가 넘는 거대한 석상들이 서 있었던 것이다. 모아이라고 불리는 이 …

상달고사가 진정한 추수감사제

  추석은 길쌈장려 위한 축제 농사를 짓는 세계 어느 민족이나 수확이 끝나면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의식과 함께 축제가 이어졌다. 우리 민족에게는 상달고사가 있다. 최남선은《조선상식문답》에서 “상달은 10월을 말하며, 이 시기는 일 년내 농사가 마무리되고 신곡신과(新穀新果)를 수확하여 하늘과 조상께 감사의 예를 올리는 기간이다. 따라서 10월은 풍성한 수확과 더불어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게 되는 달로서 열두 달 가운데 으뜸가는 달로 생각하여 상달이라 하였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상달에는 예로부터 종교적 행사가 전승되어 왔다. 고대에는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등 추수감사의 의미를 내포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