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은 ‘고라실 윷’이랑게” 변산에서 만난 신명난 윷판

 

▲남도 특유의 깍쟁이윷ⓒ부안21

지난달 30일 변산면 마포리에서 신명나는 윷놀이판을 만났다.
고향을 지키며 유기농을 짓는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병원에서 치르지 않고 집에서 문상객들을 맞고 있었다.
마당 한켠에서 윷판이 벌어졌다.
김제평야의 중심 부안 백산면에서 온 선수 2명과
변산면 출신 선수 두명이 1만원씩을 걸고 입장하였다.
윷은 남도 특유의 깍쟁이윷.
상차림에 오르는 간장그릇에 때죽나무로 만든 작은 윷가락을 담아
풀잎을 뜯어 말판을 그린 커다란 멍석에 뿌리는 것이다.

빙 둘러선 구경꾼만 30여명
윷가락이 멍석에 깔릴 때마다 희비가 엇갈린다.
말을 쓸 때마다 모두 한 마디씩
숨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지며 구경꾼들은 긴장 속으로 몰입하다가도
폭소를 터트리는 해학이 깃든 재담이 윷판을 수놓는다.

▲마당 한켠에서 윷판이 벌어졌다.ⓒ부안21

 

윷판에 나온 용어를 나열해보자.

둑석, 막석, 지덕쓴다, 개컬간, 뻥컬, 뱅인다, 한사리, 암놈숫놈, ….

막석에 두개를 업은 말이 종점을 얼마 안남겨 놓고 백산면 선수들이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놈을 잡으려면 두 모에 도를 해야 한다.
오랜 만에 윷깍쟁이를 만져보는 변산면의 이씨
이미 윷가락 네 짝의 특성을 파악한 듯
깍쟁이에 담긴 윷가락을 잔잔히 흔들어 정렬을 한 다음
윷가락 네짝에 혼을 불어넣어 힘차게 멍석 위에 뿌린다.

“모다”

“두 모”

도만 나오면 백산면의 두동생이짜리 말은 잡히는데 과연 도가 나올까.
모두들 긴장
과연 도가 나왔다. “와” 하는 함성
전세는 역전 일순간에 막둑으로 바뀌었다.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함성. 화톳불은 저만치서 툭툭 소리를 내며 탄다.

“윷은 ‘고라실 윷’이랑게”
누군가 한 마디 한다.
골짜기가 많은 동네의 윷이 강하다는 뜻이다.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 백산면은 윷을 놀 만한 나무그늘이 없어
윷놀이를 별로 안한다.
반면에 변산면은 논이 별로 없고 집집마다 감나무등의 그늘이 있어
팔월신선들은 동네 고샅 감나무그늘 아래에서 늘상 윷판을 벌였던 것이다.

<용어 해설>

둑석 : 말판에 한팀은 두번째 말을 올려놓은 상태이고 다른 한팀은 세번째 말을 올려놓은 상태임. 말판에 오른 말이 네번째 것이면 막이다. 말이 몇 번째 것이 올라있느냐에 따라 말을 쓰는 작전은 확연히 달라진다.

지덕쓰다 : 바로 뒷꽁무니까지 추격을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도가 나오면 차라리 도망가지 않고 새 말을 올리는 것이 잡힐 확률이 적다. 이러한 경우에 도망가지 않는 것을 지덕쓴다라고 표현한다.

개컬간 : 오십보백보란 뜻으로도 쓰이며 실제 윷판에서는 개나 걸만 나오면 되는 아주 유리한 상황을 앞둔 경우를 말한다.

뻥컬 : 별 효용이 없는 걸이 나온 경우

뱅인다 : 모자리나 한가운데 중앙에 박는 것을 이르는 전라도 방언

한 사리 : 모와 윷을 번갈아 낸 경우

암놈숫놈 : 윷을 암놈 모를 숫놈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특수한 상황을 이르는 수없이 많은 용어들이 있다.
더욱이 윷을 놀면서 구경꾼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말은 어느 집안의 대소사나 마을의 사건, 인물들을 빗댄 이야기들이어서 윷 한판 구경하면 마을공동체의 내면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다.


/허정균
2007·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