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암(月明庵)에 올라…

  월명암 제1경이 월명무애(月明霧靉)이며 득월대의 달돋움을 못 보면 한이라는 월명암은 변산면 중계리에 위치한 변산의 중앙지이다. 운산리를 지나 쌍선봉을 향하여 잡목 숲길을 헤치며 가파른 산등성이 를 오르고 또 오르면 발아랜 칠산바다가 넘실거리며 일망무제 짙은 안개에 휩싸인 기봉에 다소곳이 자리한 곳이 유명한 월명암이다. 월명암은 서기 692년(신라 신문왕12)에 부설거사가 창건한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이 넘는 역사와 유서가 깊은 사찰이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내려오다가 임진왜란 때 완전 소실되었다가 선조 25년 진묵대사에 의하여 중건되었으며, 한말에는 이곳을 근거지로 의병이 왜경과 싸우다가 1908년 다시 전소되고 …

김철수, 이름 없는 혁명가의 길

    부안 출신 가운데 김철수라는 이름이 있다. 1920년대를 대표하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며 좌우합작으로 통일정부 수립에 힘썼고 1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를 만큼 치열한 독립투쟁을 펼쳤다. 친북활동의 전력이 없음에도 1986년 죽을 때까지 공안당국의 1급 감시 대상이었다. 국가보훈처는 2005년 8월 3일 독립운동가 김철수와 님 웨일즈의 소설 ‘아리랑’ 주인공 김산을 비롯한 좌파 독립운동가 47명을 포함한 214명을 8.15 60주년에 서훈을 추서한다고 밝혔다. 김철수의 딸인 돈지의 용화 할머니께 전화 했더니, 선생이 원했던 조국통일이 이루어진 이후에 평가였다면 하는 아쉬움과 나라를 찾기 위해 몸을 내 놓은 독립운동가를 …

서림공원(西林公園)의 어제와 오늘

  부안고을의 주산(主山)이요 진산(鎭山)인 성황산은 산 전체가 공원이니 이름은 서림공원(西林公園.)이다. 그 빼어난 경관과 울창한 숲 사이로 뻗어난 등산로를 따라 거니노라면 마치 어머니의 가슴에 안긴 것 같은 포근함이 있어 우리들의 요람이요, 안식처이기에 충분하다. 산 너머 저쪽에서 밤새워 어둠을 살라 먹고 해맑은 고운 얼굴로 다시 솟는 해를 맞아 하루의 생활을 활기차게 시작하려는 착하고 부지런한 부안 시민들이 새벽 네 시면 벌써 공원 숲길의 적막을 깨며 등산로를 메우면서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남녀노소가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답게 인사 나누며 걷고 뛰고 야호! 호연지기 함성도 지르면 …

떠돌이 신을 모신 여단(厲壇)과 기우단(祈雨壇)

    여단(厲壇) 여단(厲壇)이라 함은 제사를 못 받아먹는 이름 없는 떠돌이 귀신인 여귀(厲鬼) 즉 돌림병으로 죽은 귀신이나 각종 사고 등으로 제명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비명횡사한 귀신들에게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 주는 제사의 제단(祭壇)을 말한다. 이들 여귀들에게 제사 지내 주는 제도는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없었는데 1401년 조선조 태종(太宗) 1년에 권근(權近 : 1352~1409)의 주청으로 명(明)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처음으로 서울의 북교(北郊)에 제단을 쌓고 제사지낸 것이 그 시초며 이후 각 군현(郡縣)에 명하여 여제(厲祭)를 지내도록 하여 생긴 제도다. 이에 따라 우리 고을의 주산인 성황산에도 여단을 쌓고 여제를 지냈을 …

나라 지킴이 신을 모신 사직단(社稷壇)

앞에서 성황산에는 옛날부터 부안 고을을 수호하는 성황신(城隍神)을 모셨던 사당이 설치되어 있어서 산 이름을 성황산이라 부른 것 같다고 말하였거니와 성황산에는 성황사(城隍祠) 외에도 몇 가지 자연신인 산천신(山川神)이나 이름 없고 주인 없는 떠돌이 귀신들을 제사 지내주는 여단(厲壇)과 가뭄이 심할 때에는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는 기우단(祈雨壇)을 설치하여 제사하는 행사가 이루어졌었다. 그 중에서도 사직단(社稷壇)에서 행해졌던 사직제(社稷祭)는 종묘제(宗廟祭), 문묘제(文廟祭)와 함께 국가에서 행하는 삼대 대제(大祭)의 하나였다. 사직단(社稷壇)은 사신(社神)인 토지의 신과 직신(稷神)인 오곡의 신을 제사하는 제단이다.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하는 사직제는 멀리 삼국시대부터 행하여져 왔었는데 임금이 제주(祭主)가 되어 제사지내는 …

성황산의 고을 지킴이 신들

    고을 지킴이 신을 모신 성황사(城隍祠)  부안고을의 주산(主山)이며 진산(鎭山)인 성황산(城隍山)은 일명 상소산(上蘇山)이라고도 한다.  해발 115m 높이의 이 아담한 동산형의 산은 변산 반도의 한 자락이 큰다리 두포천(斗浦川)과 삼간평야(三干平野)를 훌쩍 건너 호남평야를 향하고 동쪽으로 달려오다가 동진하구(東津河口)에 다다라 급하게 멈춰 서 부안고을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이 되었다. 울울창창한 노송과 아름드리 잡목으로 덮여있는 이 산의 주봉은 동남으로 약간 기운 듯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서북으로 느릿하게 뻗은 몸통은 삼메봉(三山峰)을 이루어 마치 긴 병풍처럼 부안 고을을 감싸면서 순후하고 아름다운 부안의 역사문화를 꽃피운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 같은 산이다. 옛날 …

뛰어난 외교가요 문장가인 김구

  김구(金坵1211-1278)는 고려 때 사람으로 우리 고장을 빛낸 인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인물이다. 본관은 부안이고 우복야 김의의 아들이다.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라 하였다.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와 지금의 변산면 지지포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지포선생이라 불렀다.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다 1278년(충렬왕 4)에 6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니 조정에서는 그의 학문과 공적을 기리어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무덤은 그가 살았던 뒷산인 지금의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에 공적을 기록한 신도비와 함께 보존되어 있다. 부안 김씨 후손들은 그의 무덤 옆에 경지제라는 재실을 지어서 무덤을 보호하고 있다. 12살의 나이로 …

선계안(仙溪岸)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진표율사와 선계안’ 보안면 우동리 뒤 굴바위 앞 현재 우동리 저수지의 안쪽을 선계안 또는 성계골이라 한다. 일찍이 「삼국유사 권지4권에 진표가 간자를 전하다」편을 보면 진표는 금산사 숭제법사에게 “얼마나 수행을 해야 계율을 얻을수 있나이까” 하고 물으니 숭제법사는 “정성이 지극하다면 1년이 넘지 않을 것이다.”고 하였다. “진표는 스승의 말을 명심하고 변산 선계안에 들어가 3×7일을 수행하였으나 깨달음이 없자 다시 옥녀봉을 지나 변산 부사의방에 도착하여 행장을 풀고 3업을 닦는데 자신의 육신을 학대하는 망신참법으로 마침내 점찰계율과 신표간자 189쪽패를 얻었다.“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전한다. 두 번째 …

동진면 당하리 장군봉 암각 ‘윷판’ 확인, “치우천왕은 왜 윷놀이를 제정했는가”

  한국선사미술연구소 이하우 소장의 논문 <한국 윷판형 바위그림 연구>에는 부안 당하리 장군봉의 바위에 새겨진 윷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부안21> 취재팀이 개천절인 10월 3일 오후 당하리 장군봉을 답사하고 암각된 윷판을 확인하였다. 장군봉은 해발 30여미터의 야트막한 야산이다. 경주 이씨 묘지에는 여러 가지 형상을 한 바위들이 있는데 구멍이 파여 있다.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장군이 오줌을 누어 파였다는 것이다. 포항시 북구 청하면 신흥리 뒷산의 오줌바위에도 윷판형 바위그림, 대·소형 바위구멍 150여 점, 별자리형 바위구멍 2점이 있는데 고대인들의 제천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묘지 뒤로 정상에 …

“친환경적으로 행복하게 살자” – 변산면 마포·산기 마을

    꿈을 이루는 마포리 마을 만들기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마을 만들기’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사는 농어촌마을의 지속적인 해체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정점에 있는 오늘날에는 마을이 텅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해오던 전통적인 ‘마을공동체’의 모습은 대부분 더 이상 볼 수가 없는 현실이고, 없는 일손에 각자 먹고 살기 바쁜 주민들의 그림자들만 남아 있는 형편입니다. 물론 여전히 마을들마다 백중 때나 정월에 마을잔치를 하거나 친목모임을 꾸려나가거나 마을회관에 모여앉아 놀이와 담소를 이어가고는 있습니다만, 해체되고 있는 마을의 ‘재구성’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