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암(月明庵)에 올라…

 

▲월명무애ⓒ부안21
▲월명암

월명암 제1경이 월명무애(月明霧靉)이며 득월대의 달돋움을 못 보면 한이라는 월명암은 변산면 중계리에 위치한 변산의 중앙지이다. 운산리를 지나 쌍선봉을 향하여 잡목 숲길을 헤치며 가파른 산등성이 를 오르고 또 오르면 발아랜 칠산바다가 넘실거리며 일망무제 짙은 안개에 휩싸인 기봉에 다소곳이 자리한 곳이 유명한 월명암이다. 월명암은 서기 692년(신라 신문왕12)에 부설거사가 창건한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이 넘는 역사와 유서가 깊은 사찰이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내려오다가 임진왜란 때 완전 소실되었다가 선조 25년 진묵대사에 의하여 중건되었으며, 한말에는 이곳을 근거지로 의병이 왜경과 싸우다가 1908년 다시 전소되고 만다.

그 후 백학명 선사가 온갖 고생 끝에 그 일부를 1914년 다시 재건하였으나 다시 6.25전란 때 완전 소실되고 말았다. 어렵게도 현재의 건물은 1954년 원경스님에 의해 재건한 것으로 옛 규모는 아닐지라도 원래 주변의 자연환경이 청신하고 단아하여 사찰의 정취가 길손의 가슴에 탈속의 무심(無心)과 황홀한 한 폭의 산수진경으로 와 닫는다. 한마디로 월명의 경은 무진한 안개 위로 솟아오르는 일출과 찬연한 태양이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며 못내 아쉬운 몸짓으로 진홍으로 물든 바다 물 속으로 잠기는 장엄한 광경은 나그네 가슴에 형언 할 수 없는 우수를 느끼게 하며, 어느덧 망봉(望峯) 운애(雲曖)속에 돋아 오른 휘영청 밝은 달은 가히 환상적 비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음은 월명암에 얽힌 수많은 전설 속에서 (부설전:지방문화제 140호)에 전해지는 전설을 전후를 생략하고 그 대략을 적어 본다.

▲부설전(전라북도 유형문화제 제140호)ⓒ부안21

“월명은 오빠 등운과 함께 발심하여 수도하고 있을 때 월명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린 부목이 월명에게 정을 품고 접근하였다. 월명은 그 부목의 간절한 요구를 물리쳐야 할 것인가 어떤가를 오빠 등운에게 의논하였다.등운은 부목이 그렇게 소원하는 것이라면 한번쯤 허락해도 좋다고 했다. 월명은 부목에게 자기 몸을 주어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등운은 그 일에 대하여 누이 월명에게 소감을 물었다. 월명은 “허공에 대고 장대를 휘두르는 것 같다”고 하였다. 얼마 뒤 부목은 다시 월명에게 관계를 요구해 왔다. 월명은 다시 오빠 등운에게 의견을 물었다. 등운은 한 번 더 들어주어도 무방할 것이라 하였다. 두 번째의 소감을 물으니, 월명은 “진흙탕에서 장대를 휘젓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 뒤 부목은 다시 세 번째로 월명에게 관계를 요구했다. 이번에도 월명은 오빠 승낙을 받고 부목에게 자기 몸을 허락하였다. 세 번째로 오빠가 소감을 물으니, 월명은 “굳은 땅에 장대가 부딪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등운은 월명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운은 월명에게 “깨치지 않으면 죽는다”고 결단을 요구했다. 오빠는 동생에게 “깨치는 길은 오직 부목을 죽이는 것뿐이다”고 했다. 애욕과 견성의 두 갈래 길에서 월명은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했다. 부목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숯불이 새빨갛게 피어오를 무렵, 월명은 부목에게 숯불을 골라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월명의 부탁을 받은 부목은 무심코 허리를 굽혀 아궁이 안에 반신을 들여 밀고 숯불을 고르기 시작했다. 바로 이 때, 월명이 그의 몸을 힘껏 아궁이 안으로 밀어 넣고 부목이 아궁이에서 나오려고 하자, 등운이 발로 차서 못 나오게 밀어 넣었다. 부목은 그만 죽고 말았다. 등운은 월명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살인자다. 살인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법이니 우리가 지옥으로 가지 않으려면 깨치는 것뿐이다. 지옥이냐, 깨치느냐의 두 길 밖에 없다.” 두 사람은 그 날부터 용맹 정진하여 드디어 이레 만에 깨달았다.

한편 불의의 화를 입어 저승으로 간 부목의 영혼은 염라대왕에게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여 등운과 월명을 처벌해 줄 것을 요구했다. 염라대왕은 차사를 보내어 월명과 등운을 잡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입선 중이어서 못 잡아갔다. 등운은 부목을 죽인 전후의 사연을 자세히 써서 염라대왕에게 보내며 나를 잡으려면 모래로 밧줄을 꼬아서 해를 묶어오는 재주가 없다면 나를 잡지 못할 것이다라고 이르니 염라대왕은 그의 구도심에 감동하여 그를 용서하고 잡아가지 않았다.

그 후 두 남매는 성불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월명암(月明巖) 선경(仙境)

가파른 숲길 올라
산등선 재를 넘어
터 잡아 지은 옛 절
천상(天上)에 높이 솟아

도솔천(兜率天) 월명 암자
소원 성취 합장 한 후
운장대(雲場臺) 올라서서
전경(全景)을 바라 본다

동남은 만학천봉(萬壑千峯)
안개 속에 잠겨 있고
북향은 쌍선 양봉(兩峯)
봉황(鳳凰) 한 쌍 앉아 운다

해안 천리 칠산바다
고군열도 점점(点点)하고
우거진 청산 골에
두견화(杜鵑花) 작작(灼灼)할 때

지나는 구름마저
낙조대에 걸려 있고
무궁한 서해 일몰(日沒)
진홍 노을 장엄(裝嚴)한 후

은은한 풍경소리
돋아 오른 명월(明月)마저
밀밀(密密)한 월명진경(眞景)
못 보면 한이 되리…

• 만학천봉(萬壑千峯)-첩첩이 겹쳐진 골짜기와 수많은 봉우리
•두견화(杜鵑花)-진달래꽃


/김길중
2005·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