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외교가요 문장가인 김구

 

▲경지제, 변산면 운산리에 있다.

김구(金坵1211-1278)는 고려 때 사람으로 우리 고장을 빛낸 인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인물이다. 본관은 부안이고 우복야 김의의 아들이다.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라 하였다.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와 지금의 변산면 지지포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지포선생이라 불렀다.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다

1278년(충렬왕 4)에 6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니 조정에서는 그의 학문과 공적을 기리어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무덤은 그가 살았던 뒷산인 지금의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에 공적을 기록한 신도비와 함께 보존되어 있다. 부안 김씨 후손들은 그의 무덤 옆에 경지제라는 재실을 지어서 무덤을 보호하고 있다.

12살의 나이로 진사시와 조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0년이 지난 1233년(고종 19)인 22살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원부 사록에서부터 제주판관, 한림학사에 이르렀다.

그의 생애 동안에 국제적으로는 몽고(원)가 일어나 중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침략하였다. 고려는 몽고의 거듭된 침략에 굴복하여 굴욕적인 화친을 맺고 내정간섭에 시달렸다. 김구는 사신으로 뽑혀 원에 서장관으로 가게 되었다. 돌아와서는 이부상서, 중서시랑, 첨의부 찬성사 겸 보문과 태학사 등에 이르는 정사 참여로 정치가로서, 학자로서, 외교관으로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국가와 사회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날로 심각하게 변하는 국제정세 아래서 외교 담당 관리의 유능한 인재 발굴을 건의하였으며 통문관 설치를 건의하여 통역자의 양성을 국가가 나서도록 했다. 서장관으로 원에 갔을 때는 그 나라의 견문을 수록한 북정록(北征錄)을 펴내 국내에 처음으로 적국의 실정을 소개하였다.

▲김구 유허비각, 부안읍 선은리에 있다.
▲취성제, 부안김씨 선산인 석동산에 있다. 김구는 부안에 세거하고 있는 부안김씨 입향조이다.

학문 즐겨 경사 시문에 능통

그의 천성은 학문을 즐겨 어려서부터 경사에 능통하였고, 시문에도 능하여 그 필치의 정교함은 후세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또한 말은 적으나 행동은 단정하고 법도가 있어 모든 일에 성심으로 대하였으며, 검소하여 세상 사람의 모범이 되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 이규보는 김구의 글을 보고 말하기를 “앞으로 나를 이어 나라의 문형을 잡을 사람은 최자와 김구 뿐이다”고 말하였다.

원에 가면서 지었다는 ‘분수령(分水嶺)도중(途中)’은 그가 가던 길이 얼마나 멀고 험했는가를 나타낸다.

   두견새 소리 속에, 푸른 산 뿐인데
   하루 종일 산 속만을 뚫고 가네.
   한 시내를 건넜으니 몇 구비인지를 알겠는데
   한 흐름을 보내고 나면 또 한 흐름이라네.


고려사 동문선에 시문 게재돼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와 동문선에 시문 여러 수가 실려 있다. 원의 학자 왕학은 김구가 원에 보낸 외교문서(표문)를 살펴보고 그의 뛰어난 문장에 감탄하여 생전에 그를 만나보지 못함을 한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원나라 국왕은 그의 표문을 받아 볼 때마다 사리에 맞는 주장과 그의 글 솜씨에 감탄하여 막대한 공물 등의 요구를 철회하거나 탕감하여 주었으며, 몽골군에게는 약탈 행위를 자제하도록 하였다.

몽골과 화친한 뒤로 원의 관리가 중앙이나 지방관서에 상주하여 국정에 간섭하는 다루가치가 있었다. 일부 아첨배들이 다루가치의 위세를 믿고 무례하는 자들이 있었다. 김구는 홀로 이들을 탄핵하여 곧은 신념으로 조정을 바로 세우는데 진력하였다.

김구는 시문만 잘한 것이 아니라 거문고도 잘 탔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이 죽은지 420여년이 지난 18세기초까지 그가 애용했던 거문고가 전하여 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선은동에 살면서도 변산팔경의 신비로운 비경인 지포선경에 집을 짓고 거문고를 타고 독서를 즐겼다. 1712년의 화재로 그를 모시는 재실이 불에 타자 재실을 다시 짓고 이름을 취성제라 고쳤다.

몽골의 침공으로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그는 문필로써 나라를 위해 온갖 힘을 다하였다. 부안 출신으로 역사적인 인물은 그가 최초요 최고의 인물이며 역대 부안의 군지 등에도 그의 행적은 언제나 인물조 첫머리에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정재철
200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