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는 마포리 마을 만들기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마을 만들기’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사는 농어촌마을의 지속적인 해체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정점에 있는 오늘날에는 마을이 텅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해오던 전통적인 ‘마을공동체’의 모습은 대부분 더 이상 볼 수가 없는 현실이고, 없는 일손에 각자 먹고 살기 바쁜 주민들의 그림자들만 남아 있는 형편입니다.
물론 여전히 마을들마다 백중 때나 정월에 마을잔치를 하거나 친목모임을 꾸려나가거나 마을회관에 모여앉아 놀이와 담소를 이어가고는 있습니다만, 해체되고 있는 마을의 ‘재구성’을 위한 자발적인 시도 즉 ‘마을 만들기’는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이런 실정에서 그나마 부안지역사회에서 ‘자발적인 마을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는 마을이 있으니 변산면 마포리의 마포·산기 마을이 바로 그 사례입니다.
자신감을 얻은 하나의 ‘사건’
마포·산기 마을은 변산면 소재지에서 격포로 가다 곰소길이 나눠지는 마포삼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두 마을은 유유저수지에서 성천마을 앞바다로 빠지는 마포천을 사이에 두고 형성하고 있으나 커다란 하나의 촌락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두 마을은 ‘꿈을 이루는 마포리 만들기’라는 하나의 공동과제를 설정하여 전체 마을 주민들의 총의를 모아나가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들의 시도가 군행정에 의한 위로부터의 ‘지침’과 ‘시달’에 의해서가아니라, 마을 주민들 스스로의 자발적인 계획이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올초 두 마을의 이장 등 몇몇이 모여 뜻을 모아 발의하여 주민 전체 총회를 거쳐 ‘꿈을 이루는 마포리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공동위원장인 조정식 산기마을 이장은 “지금은 없이 살던 시절보다 덜 나누고 정이 없이 살고 있는데, 앞으로 꿈을 이루며 함께 뭉쳤으면 합니다”고 밝힙니다.
이들은 도대체 무슨 꿈을 이루고자 하는걸까요? 마을의 공동과제로 ‘꿈을 이루고자’ 하니 말입니다. 어쩌면 정을 나누며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미래로 가는 활력의 꿈이 아닐까, 짚어봅니다. 그 꿈은 그저 저 멀리 있는 바램인 것이 아니라, 마을의 현실적인 조건과 환경을 고려하여 지금-여기로부터 발상되는 오늘의 희망입니다. 그래서 ‘꿈을 이루는 마포리 만들기’ 사업은 마을의 주민소득 활성화도 중시하고 친환경적인 마을 공간의 조성도 중시합니다.
마을 주민들이 올 1,2월에 세운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보면, 당산나무 주변 공원화, 마포들판 친환경·무공해 쌀 집단화, 마포천을 생태천으로 조성하기, 주민소득을 위한 민박촌 조성, 마을 생활사 박물관 만들기 등이 들어 있습니다. 추진위원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 사업들은 바로 당장 실천될 수 있는 것들은 아닙니다. 마을 주민들도 우선 당장에 할 수 있는 일로 마포천 뚝방길에 야생화 꽃길이라도 만들어보자고 의지를 모았습니다. 마포천을, 예전처럼 붕어, 참게, 고둥 들이 살 수 있도록, 생태천으로 조성하는 사업의 일환입니다.
마침 올해 군에서 마포천 수해방지 수로사업을 진행하면서 마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하천임에도 마을과의 공간적 연계성과 무관하며 비생태적으로 제방을 쌓으려 하자 마포리 만들기 추진위원회는 사업시행자에게 설계 변경을 요구하였고, 그 성과로 당산나무 앞 제방은 자연석으로 꾸미고 고기들도 오르내릴 수 있는 통로를 조성하며 하천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었으며, 기존의 궁포습지도 살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자그마한 일이었지만 이 ‘사건’을 통하여 주민들은 군의 잘못된 사업방향에 대해 마을의 공공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자긍심과 함께 마을 만들기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행운과 걸림돌들
또 하나, 행운이랄까, 부안군이 올 처음으로 시도하는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사업’을 각 면마다 1개 마을씩 공모하자 이에 응모하여 선정되어 20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관의 보조금을 지원받다보면 예상치 않은 난관에 부딪치기도 하는지라 보조금 중심으로 사업을 시행하려다보니 애초 마포리 만들기의 사업방향과 충돌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추진위원회는 보조금으로 마포천 뚝방길에 야생화단지를 조성하려 했으나 군에서는 하천법을 들어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야생화를 관리하려고 잡초들을 제거하려다보면 제방이 유실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천법 제33조에는 하천구역 안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식물(잔디, 1년생식물, 건설교통부장관이 관계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정하는 기준에 적합한 다년생수목 및 화훼류)’을 ‘재식’(栽植)하려면 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으니 부안군이 허가해주면 될 일을 허가해주지 않은 것은 어떤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군 보조금 사업이라 ‘표’가 좀 나는 사업을 하라는 무언의 행사였을까요? 옥신각신 끝에 결국 체련시설과 산책로 등을 골자로 하는 ‘주민쉼터 조성사업’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군 보조금을 지원받는다는 행운은 주민 스트레스를 동반하면서 ‘자발적인 마을 만들기’의 취지를 훼손시켰습니다. 주민들을 능동적으로 변화시켜 마을 만들기를 자발적으로 추진하도록 고무시키기보다 수동적으로 고착시키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시도하는 군의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꿈을 이루는 마포리 만들기’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두 마을에 산재해 있는 김공장입니다. 현재 가동되고 있는 김공장은 세 군데인데, 김공장들이 마을에 자리잡은지 20년 정도 되었습니다. 김공장은 겨울에 주민들이 많이 취업하여 소득을 올려주는 농한기 일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터라 폐수로 인한 오염과 불쾌한 냄새를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주민들의 변화된 의식은 마을의 환경을 쾌적하게 하는 데에 더 우선적인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폐수로 인해 마포천이 오염되고 불쾌한 환경에 놓이는 상태를 더 이상은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공장 대표들에게 끊임없이 폐수처리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으나 대표들은 번번이 묵살해왔습니다.
주민들은 분개하여 지난 5월 군청 관계직원 2명과 3개 김공장 대표들을 불러 재차 서약을 하도록 했습니다. 2007년도에는 유동천 합류지역까지 폐수처리 파이프를 설치하도록 하고 2008년도에는 성천갑문 밖으로 완공되도록 한다는 데 김공장 대표들이 서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은 “하천공사와 연계해서 검정파이프를 쉽게 처리할 수 있었는데 처리를 안해 마을을 무시했다”며 이구동성으로 거친 감정을 드러냅니다. 고발 등 주민들의 직접행동이 있을 조짐입니다.
품앗이 전통 강하게 남아 있어
마포·산기 마을은 각각 50가호·60가호 정도됩니다. 이들 중 유기농을 하는 집이 3집입니다. 이 집들은 꽤나 오래된 유기농생활의 역사를 가지는데, 아마 이와 관련하여 마포들판을 친환경단지로 조성하자는 발상이 나왔을겁니다. 친환경 유기농으로 농경생활을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민들은 그동안 유기농 이웃을 통해 목도해왔다는 겁니다. ‘친환경적으로 행복하게 살기’가 마을 만들기의 목표라면 이벤트로 반짝하여 보여주자는 것이 아니라 “생활세계에서 자연스러운 삶으로 이어지도록 하자는 것”임을, 추진위원회의 총무를 맡아 실무를 담당하는 김수원 씨는 힘주어 말합니다.
마포·산기 마을이 이색적인 것은 교회, 교당, 공소를 다 갖추고 있어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기독교, 원불교, 천주교 중 하나의 종교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보니 민속적 풍경의 행사에 장애가 되기도 하나, 한 주민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 천주교를 믿는 산기마을의 경우 특이한 점은 농경생활의 품앗이를 하는 농촌공동체가 여전히 생활 속에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종교생활이 주민들의 생활세계를 지나치게 지배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은가 한 주민은 해석해봅니다. 지난 봄, 어느 집에서 초상났을 때 장례식장으로 가지 아니하고 전통방식에 따라 집에서 치러낼 수 있었던 것도 마을 공동체의 힘이었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제법 크게 행사되었던 마포마을 쪽의 당산제가 1990년대 들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커다란 당산나무가 사유지에 묶여 창고로 가로막혀 있었던 점이나 마포마을의 주민들이 상당수 교회활동을 한다는 점도 아마 그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러나 당산나무는 서서히 주민들의 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마포·산기 마을은 오래된 역사를 가집니다만, 어느 마을이나 마찬가지로, 이 마을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마 없어보입니다. 기록하여 문서로 남긴다는 의식이 부재해서일까요. 족보문화나 가계의 고문서 혹은 조선왕조실록 들을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기록문화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는데, 마을의 역사기록은 왜 부재했을까요. 민초들은 그저 그때그때 살아왔을 따름입니다.
마을 만들기에 있어서 마을의 역사나 오늘의 문화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문자문화의 소통을 꾀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더군다나 ‘꿈을 이루는 마포리 만들기’의 사업계획 중 하나가 마을박물관 만들기라면 말입니다. 마을신문도 만들고말입니다. 마을신문은 마을 사람들의 소식과 의견을 알리고 정보를 공유하며 마을 커뮤니티(의사소통구조)를 형성하는 훌륭한 정(情) 네트워크가 될 겁니다. 마을 만들기의 가장 큰 기초자산은 주민들간의 정 네트워크와 그 커뮤니티의 활성화일성 싶습니다.
‘꿈을 이루는 마포리 만들기’를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마포·산기 마을의 주민들에게 행복이 가득하길 빌어봅니다. 내년에는 어떤 사업이 추진될지 자못 궁금합니다.
/글·사진 _고길섶 문화비평가
*이 글은 부안독립신문에 게재된 글이며 수정증량했습니다.
2008·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