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오후, 변산면 풍물패 ‘천둥소리’의 오병윤 단장 등 일행 4명은 변산면 일대의 ‘불우이웃’ 주민들을 직접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오 단장의 말마따나 “살기가 가장 옹삭한 분들”을 찾아 직접 ‘실사’를 하여 불우이웃 명단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체크하여 설 전에 지원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불우이웃을 선정하는 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먼저 변산면 전체에 걸쳐 마을의 이장이나 부녀회장을 통해 추천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추천이 주관적일 수도 있으니 마을회관에 찾아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검증을 받습니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동네 사람들이 마을 회관에 다 모여서 노니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한꺼번에 들을 수 있습니다. 이날도 마포리의 유유마을에서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잔치를 벌이고 있어 천둥소리 일행은 마을 사람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의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불우이웃에게 전해질 ‘선물’은 대개 쌀 1포, 농협 상품권 6만원어치, 현찰 20만원 등 30만원 정도의 액수에 해당합니다. 가정에 따라 다른 지원이 필요하다면 허용된 액수에서 해결을 해줍니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의미있는 활동입니다. 올해에는 총 스물다섯집 가량이 지원을 받을 성싶습니다. 전체 예산규모는 800만원 정도이고, 그 출처는 작년 12월 5일 마포리에 있는 구 마포초등학교에서 행사한 불우이웃돕기 하루주막에서 올린 순수익입니다. 재작년부터 시작하여 올해로 두번째인 천둥소리의 불우이웃돕기 봉사활동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첫번째보다 수익이 더 좋아졌습니다. 작년의 하루주막은 1200만원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40여명 되는 단원들이 지역에서 티켓을 팔아 올린 수익입니다.
하루주막으로 자금 마련
천둥소리는 향토시인 박형진 씨를 상쇠로 하는 풍물패로서 9년째 변산면 지역의 문화상징으로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천둥소리는 매년 1월 중순경 풍물강습을 통해 신규회원을 확보합니다. 올해에는 1월 14일부터 25일에 걸쳐 하루종일 풍물 강습을 하였고, 6명의 새 강습생이 참여하였습니다. 새 회원들은 이들의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어줍니다.
1월의 풍물강습 기간은 이들이 가장 집중하여 어우러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막걸리 잔치가 벌어지는 강습은 장구와 몸 사이사이에 흥을 돋구며 잃어버리는 우리 전통의 농경문화를 되살리는 한편 심신을 쾌하게 하고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도록 하는 흥의 미학에 도취되도록 합니다. 면 지역에 이러한 풍물패가 하나쯤 있는 것도 참으로 행복한 일일성 싶습니다.
아니, 박형진 시인의 말마따나 풍물소리 들리지 않는 곳이 어디 고향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오래전, 객지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되돌아오던 날 밤의 풍물소리를 박 시인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쓴 책 <변산바다 쭈꾸미통신>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합니다.
“인제 저 숯구덩이 미친년 잔등만 돌아서면 동네의 불빛이 보이는 것이다. 아버지 산소가 바로 그 곳에 있고 좀 더 가면 증조할머니 산소도 있는 곳이다. 그 미친년 잔등이란 산모롱이를 돌아섰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리고 말았다.
덩기덕 덩기덕 덩기덩 덩기덩……. 불빛보다도 먼저 바람을 타고 귓전을 파고드는 아련한 풍물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섣달그믐, 객지에 나갔다가 칠흑 같은 어둠을 밟고 산모퉁이를 돌아 어디메쯤 왔을 때 풍물 소리 들리지 않는 곳이 어찌 고향일 수 있을까. 뜨거운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렀다.
내가 굿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고 굿을 배워서는 섣달그믐이면 어김없이 굿을 친 것도 그 때부터였다. (…)
전기가 들어오기 전이어서 집집마다 등이 내걸리는 섣달그믐의 그 어두운 골목을 매귀굿이라 하여 동네사람들이 굿을 치고 들어오면, 어머니는 하루 종일 장만한 음식 안주와 걸러 놓은 술을 내서 굿패들을 대접하시곤 하셨다. 집집마다 밤새 그렇게 굿을 치면서 굿패가 고살을 휘돌아 나가면 누구네 집 낯선 손님이 오는지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나고 한숨이나 붙이셨는지 꼭두새벽녘 어머니는 다시 부엌에 나가셔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메를 지어 차례 준비를 하셨다.”
유년기 시절 풍물소리를 들으며 성장한 그이들은 이제 그 일들이 자신들의 몫임을 잘 알고 있나봅니다. 천둥소리는 대보름날 행사에 이 마을 저 마을을 지원하여 굿판을 벌이곤 합니다. 때로는 집들이 이사굿을 하기도 합니다. 지역공동체의 운명이 위기에 처해졌던 핵폐기장 반대 싸움 때에는 부안 사람들과 함께 대동 한마당의 흥을 돋구는 데 앞장서기도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변산반도 해안까지 밀고 온 타르를 제거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주민 실사 활동을 중시
지금은 농어촌의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정부지원이 잘되어 있는 편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한계는 뚜렷합니다. 양지에 가려진 마을 한쪽켠의 그늘진 집에 가보면 빈곤한 모습이 그대로 다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부지원으로 채워지지 않는 틈바구니 세계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천둥소리 사람들은 바로 이 틈바구니 세계에서 참으로 옹삭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그 이웃이란 대다수가 독거노인입니다. 작년에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경우는 송포마을에서 있었습니다. 그때도 천둥소리 일행이 현장 실사를 나갔을 때 독거노인은 바깥의 장독대 옆에 설치된, 얼어버린 수도를 녹이고 있었습니다. 수도가 집안으로 들어와 있지 않고 바깥에만 있어 날이 추워 얼어버릴 때는 무척이나 애를 먹습니다. 천둥소리에서는 이 집의 수도를 집안으로 연결시켜주고 싱크대도 설치해주어 집안에서 부엌일을 하도록 지원해주었습니다.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전년에 도왔던 이웃들에 몇 가정을 더 추가하여 지원활동을 합니다. 전년에 도왔던 가정이더라도 실사는 다시 합니다.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부분도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처음 추천된 자미동의 김◯◯ 할머니는 수도 사용의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이웃집에서 빼와 수돗물을 사용하고 있는지라 독립적인 수도계량기 설치를 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천둥소리 실사단은 비용이 많이 들어서인지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해야 했습니다.
천둥소리의 불우이웃돕기 활동은 궁핍하고 옹삭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존재와 그이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살아가는지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다고 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수혜’라기보다 빈곤한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일테니까요. 한 단원은 농담삼아 “삼성의 비자금으로 구입한 그림 한 점만 있다면 얼마나 유용할까”라고 내뱉기도 했습니다만, 부안군에서 쓰잘데기 없는 예산낭비성 사업을 없애고 옹삭하게 살아가는 주민들을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하면 좀 어떨까요? 빈곤한 사람들의 존재만큼이나 빈곤한 주거환경의 존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지요.
/글·사진 _고길섶 문화비평가
*이 글은 부안독립신문에 게재한 글입니다.
(기사작성 2008·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