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이 뛰어나고 무한한 가치들이 숨겨진 세계-부안의 갯벌

 

▲1970년대에 실패한 간척사업의 흔적_줄포만갯벌ⓒ고길섶

부안은 현재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해서 삼면이 바다로 접해 있고 과거에는 동부지역도 상당부분 바다였습니다. 동진강에서 고부천으로 이어지는 주산면·보안면·줄포면 동부 일대가 바다였다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줄포면의 난산리 사람들은 바로 앞 고부천 평야지대가 옛날에는 바다였다고 믿고 있고, 주산면의 동정리에는 배를 매어 놓았다 하여 배맷등이라는 등성이가 있습니다.

그만큼 너른 갯벌이 존재했었습니다만, 이제 부안의 갯벌은 특히 새만금 방조제 완공 이후 급격히 좁아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새만금을 제외하고, 고창이 70여k㎡임에 비해 부안은 20k㎡에도 못미칩니다.

갯벌은 농지 확보를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적어도 삼국시대 때부터 간척되어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의 간척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나타나며, 부안지역은 조선시대 때 격포진 자리에 비교적 대규모로 간척사업을 하였습니다. 만(灣)의 형태로 되어 있어 간척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육지로부터 흘러내려온 토사가 쌓여 자연스럽게 농토로 된 갯벌도 있을 겁니다. 바다와 전혀 무관해보이는 내지의 땅들이 과거에 바다였던 곳들도 있습니다. 보안면 남포리의 원남포마을도 조선 중엽까지 조수가 왕래하여 선박이 드나들었다 합니다.

▲썰물로 서서히 속살을 드러내는 진서면 작당마을 앞 갯벌ⓒ고길섶
▲부안군 생활폐기물 매립장 앞에서 너무재를 채취하고 있는 한 주민ⓒ고길섶

 

갯벌 간척과 갯벌의 위기

상서 면소재지와 부안읍내 사이에는 목포라는 버스 정류소가 있습니다. 한자로는 木浦로 표기합니다만 토박이말로 ‘나뭇개’로 불리는 마을입니다. 이 일대는 1900년대 초까지 중선배가 드나들었던 바닷가였으며, 간척의 역사는 꽤 오래됩니다. 1770년대에 간척이 시작됐고, 1910년과 1934년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삼간리와 청서리 일대의 간척이 이루어져 두포천이 농토로 변했습니다. 두포천은 갯골이었습니다. 계화면의 포구였던 창북리와 염전지대였던 궁안리, 그리고 행안 들판에서 주산면의 배메산 등지의 일대가 만을 이루는 바다였습니다. 1998년 12월에는 나뭇개 마을 안길 포장공장 현장에서 발견된, 지름 4-50cm에 높이 1.5m 정도 되는 배맷돌을 두포천 수문 옆에 세워놓았습니다.

▲상서면 나뭇개마을 안길에서 발견되어 두포천 수문 옆에 세워놓은 배맷돌ⓒ부안21

갯벌은 작정한다고 다 간척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종23년에 작성된 <세종실록>은 “지금 인구는 날로 늘고 토전(土田)은 유한하여 백성들이 경작을 하지 못하여 산업을 잃게 된다. 빈해의 주군에는 해택(海澤, 갯벌)에 둑을 쌓아 수전을 만들 수 있는 곳이 대단히 많으나 민력이 미치지 못하여 그 이익을 얻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약용은 1817년에 쓴 <경세유표>에서 “바람 탄 조수의 형세가 멀리 큰 바다에서 바로 둑 면을 쏘아붙이면 장성도 무너질 참인데, 진흙덩이야 논해서 무엇하겠는가”라며 둑 축조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줄포면의 부안군 생활폐기물 매립장 바로 앞 바다도 1970년대에 간척사업용 둑을 쌓았었으나 갯골이 자꾸 무너지는 바람에 실패했습니다. 바다의 순리를 꺾어내지 못한 사례라 하겠습니다. 조선시대의 간척은 17-8세기에 빈번했던 해일과도 어떤 관련성이 있다고 제기되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연이은 부안의 대규모 간척사업은 바다의 순리마저 꺾어버리고 있습니다. 1963년에 시작된 계화도 간척사업은 방조제 길이가 12.81km로 3,968ha에 해당하는 갯벌을 잃게 했고, 최근의 새만금사업으로 이어져 부안의 갯벌은 줄포만(곰소만) 갯벌이 거의 유일하게 남게 되는 위기에 처해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줄포만이나 칠산바다도 어쩌면 사라질지 모릅니다. 1996년의 농어촌진흥공사의 ‘서남해안 간척자원도’ 자료를 보면, 새만금사업에 이어 고군산군도─위도─영광안마도─신안으로 방조제가 연결되는 어마어마한 간척사업 예정지구를 계획해놓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조수의 흐름이 험난하기로 유명했던 칠산바다를 아예 매립으로 없애버리려 합니다.

실지로 그렇게 실행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나마 남게 되는 줄포만 갯벌도 생활폐기물 매립장으로 인한 오염이 발생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행히도 2006년 12월 해양수산부는 줄포에서 곰소에 이르는 3.5㎢의 줄포만 갯벌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해 갯벌 보존의 길을 터놓았습니다.

▲변산면 주민들이 하섬 앞 해안가에서 타르덩어리를 제거하고 있다ⓒ고길섶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하서면 해창갯벌의 갯살림ⓒ고길섶

경제적 가치나 생태적 가치 혹은 교육적 가치나 경관적 가치로 보아도 갯벌의 중요성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논리는 그것들을 짓뭉개버리며 새만금사업으로 이어졌고 부안의 갯벌은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습니다. 새만금사업은 물막이는 완성되어 있으되 내부 개발은 시작도 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갯벌 복구가 가능합니다.

2005년 1월 17일 있었던 서울행정법원의 새만금사업에 대한 조정권고문은 이렇게 진술하였습니다. “아직까지 그 가치가 증명되지 않은 무수한 생명체들이 새만금갯벌에서 서식하고 있다.” 이어서 “사업의 목적 달성이 불가능함에도 지금까지 거액의 예산을 들여 추진되어 온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방조제를 완공하여 갯벌을 포함한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크나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일갈하였습니다.

부안을 지켜내는 하나의 희망

상당부분 갯벌과 한 몸이 되어왔던 부안 사람들의 삶, 그러나 지금은 갯벌과 멀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대맛, 농발게 따위들이 풍성했던, 그나마 남은 줄포만의 갯벌도 더이상 갯살림의 터전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갯벌 없이도 살아갈 수는 있을겁니다만, 그렇다고 더이상 갯벌을 훼손시키거나 상실케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될 겁니다. 가로 1cm, 세로 1cm 안의 갯벌에는 무려 1억개가 넘는 미생물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갯벌은 생산성이 높은 생태계입니다. 갯벌의 생산성이 외해양에 비해 10-20배나 높고 농경지나 산림지역보다도 더 높은 것은 무수한 생명체들이 서식하기 때문입니다.

▲계화갯벌을 살려야 한다는 한 주민의 목소리를 취재하는 모습ⓒ고길섶
▲새만금사업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 계화갯벌에 갈대뿌리 이식작업에 동원된 수협 조합원들ⓒ고길섶

부안의 갯벌은 칠산바다와 변산반도 뭍의 살림을 숨쉬게 하고 순환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대지이자 생명의 장소입니다. 수산물의 채취가 어렵다 하더라도 갯벌이 갖는 염생식물과 토질의 정화능력은 매우 뛰어납니다. 바다와 갯벌은 일정한 한계 안에서 인간이 흘려보내는 오염물질들을 다 받아 안으면서 정화시킵니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갯것들의 세계는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굳이 문화관광, 체험관광, 생태관광으로 각광받지 않더라도 그 뻘의 경관은 삶의 여유를 만끽하도록 해줍니다.

새만금사업으로 사막이 되어가고 있는 계화 갯벌을 보고,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또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를 보며 무책임한 자본권력의 횡포에 암울해지고 있습니다만, 그나마 태안바다에서 흘러온 타르덩어리를 건져내느라 애를 쓰는 변산의 주민들을 보며 바다와 갯벌에 대한 애정을 느껴봅니다. 남은 갯벌이라도 지켜내는 것이 부안을 지켜내는 하나의 희망입니다.


/글·사진 _고길섶 문화비평가

*이 글은 부안독립신문에 게재된 글이며 수정증량했습니다.
(글쓴날 : 2008·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