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서면 백련리의 월포(月浦) 마을에는 는들바위에 얽힌 설화가 하나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이 바위는 월포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한 2km쯤 되는 갯벌 위에 솟아 있습니다. 바위가 상당히 큰 편인데도 축척이 1:5,000인 제법 상세한 지형도에는 표현조차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을 해변가로 가서 군산 쪽 방향으로 바라다보면 눈들바위를 볼 수 있습니다. 여느 바닷가의 바위들과 다를 바 없으나 바위에 특별히 이름이 붙여진 사연은 무엇일까요?
월포마을은 잿등, 세가호뜸, 원뜸 등과 같이 몇 개의 뜸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내가 찾아간 곳은 10여 가호가 있는 원뜸입니다. 변산가는 30번 도로의 백련리에서 하차하여 논으로 둘러싸인 마을길 따라 바닷가 쪽으로 10분 정도 걸어들어가면 월포의 원뜸입니다. 그러나 원뜸은 새로난 하서-부안간 4차선 도로의 굴다리를 지나야 눈 앞에 펼쳐집니다. 4차선 도로가 월포 마을을 갈라놓았습니다. 도로가에 방음벽을 설치해놓긴 했어도 소음이 퍼져나오기는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시야의 경관을 더 답답하게 막아버렸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원뜸으로 들어가더라도 바다가 바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마을과 바다 사이에는 길다란 소나무밭이 방풍림으로 자리잡고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바다와 소나무밭도 이미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방파제 옹벽이 쳐 있기 때문입니다. 는들바위는 옹벽에 서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나로서는 는들바위가 처음이었지만 까무스르하게 살갗을 드러낸 갯벌 위에는 다른 바위들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멀리 아련하나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흐릿한 겨울비가 가랑가랑 젖지않게 내리는 날씨는 는들바위 이야기를 더욱 궁금하게 합니다.
허리찜하던 놀이터
마을회관에서 만났던 일흔 넘은 할머니들은 바다물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는들바위가 물에 잠긴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는 는들바위가 야트마해서 그 말들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들이 ‘회장님’이라 부르는 노인회장은 이 마을에 이주해온지 30년이 되었다는데, 바위가 물에 잠기지 않는다면 그 표면에 뭐라도 나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며 ‘과학적 근거’로 믿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말은 달랐습니다. 는들바위는 마을 사람들의 놀이터였습니다. 바위에서 놀다가 밀물이 되면 다시 물이 빠질 때까지 놀다가 되돌아오곤 했답니다. 특히 칠석 때라든가 허리 등 몸이 아플 때 바위에 드러누워 찜을 하면 잘 나았다 합니다. 소식을 듣고 일부러 찾아오는 외지인들도 있었습니다.
는들바위 바로 앞으로는 자그마한 갯골이 있어 마을 사람들은 장신포 쪽으로 우회하여 다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월포와 장신포 사이에는 변산 쪽의 금광동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작지는 않게 하구로 발달하였으며, 이를 똘개목이라 불리고 있고, 이 똘개목의 물줄기가 는들바위 앞쪽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갯벌로 빠지는 바다의 하구치고는 흔하지 않게 똘개목 일대가 상당히 너른 규모로 잔자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이한 지형입니다. 그러나 이 일대마저도 더이상 갯벌의 기능은 하지 않는듯 나문재, 갯질경이, 비쑥 따위들이 황량하게 우거져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는들바위는 마을 사람들의 생활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시작되면서 는들바위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무명바위로 변해오기에 이르렀습니다. 뻘이 상당히 높아진 탓이기도 하겠고 그 옛날 포(浦)로 기능했던 바다와 갯벌은 더이상 월포 사람들의 갯살림 터전이기를 상실당해왔기 때문입니다. 인근의 해창이나 장신포 사람들에 비하면 갯살림에 덜 의존했던 모양이나 어쨌거나 이전에는 새우가 많이 잡혔고 바지락이나 생합 양식을 했던 갯벌이었습니다. 마을에는 ‘월포수산’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겨진 김공장 폐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는들바위 주변에는 작은 어선들이 주인 잃은 채 뻘 위에 뻗쳐 있습니다.
월포마을 사람들은 바다물에 결코 잠기지 않는다는 것만 알 뿐 그 이상의 는들바위 전설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월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장신포 마을이 있습니다. 옛날 장신포 마을에 50이 넘은 한 부부가 혈육 없음을 한탄하다 한 스님의 말에 따라 변산의 깊은 절에 들어가 백일기도를 드렸습니다. 결국 부처님의 영험으로 옥동자를 낳았으나 이 아이는 어찌된 일인지 동네가 떠들썩하게 울어대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방안의 천장을 날아다니는 것이었고, 부부가 기이하게 살펴보니 아이의 겨드랑이에 작은 날개가 나 있었습니다.
부부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장수감으로 태어난 게 분명한데, 이 사실을 나라에서 알면 역적으로 몰아 일족이 멸하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입니다. 부부는 근심 끝에 아이를 죽여 없앴습니다. 그랬더니 하얀 백마 한 마리가 어디선가 뛰어와 그 집을 사흘밤낮 슬피 울며 돌더니 월포 바다 앞 바위 속으로 들어갔답니다. 이 백마가 항상 이 바위를 떠받치고 있으며 바닷물이 많으나 적으나 일정하게 솟아 있어 는들바위라 부른답니다. 장포마을에서 남쪽으로 올려다보이는 변산의 제일봉 의상봉이 잠겨야 비로소 는들바위도 물에 잠긴답니다. 변산면 대항리 앞에는 빡스바위가 있는데, 는들바위 속으로 들어간 백마가 삼일동안 나오지 않을 때면 큰 백마가 빡스바위에 나타나 울면서 뛰어다녀 그 발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말 발자국은 는들바위에도 있답니다.
‘돈포’? 백마가 나타날까?
갯벌과도 격리되었고 마을의 전설과도 격리된 오늘날의 모습이 월포 사람들의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여느 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역사는 잊혀진 채 오늘만 있는 듯합니다. 그 대신에 그이들은 회관에 매일같이 모여들며 잡담을 나누거나 텔레비전에 의존합니다. 는들바위 허리찜은 회관의 방에 설치된 찜질기계가 맡아합니다. 노인회장은 새만금 사업은 국가미래로 볼 때 잘하는 것이다고 평가하나 다른 할머니들은 새만금 때문에 망했다 합니다. 갯살림 할일이 없고 그렇다고 부칠 논 뙈기를 가진 사람도 몇 안되니 아무것도 할일이 없답니다.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가 바로 월포마을 한가운데 논배미에 들어섭니다. 원뜸은 그대로 보존되나 회관이 있는 원뜸의 다섯가호는 사라집니다. 뒤로는 새만금사업이 앞으로는 에너지파크가 마을을 침탈해오고 있고, 인접 마을 사람들은 월포가 아니라 ‘돈포’라고 한다는데, 과연 월포 마을 사람들에게 꿈의 백마가 될런지요. 이미 바다와 갯벌과 는들바위마저 잃어버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글·사진 _고길섶 문화비평가
*이 글은 부안독립신문에 게재된 글이며 수정증량했습니다.
(글쓴날 : 2008·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