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택의 신들이 편안해야 집안이 잘 돼…”

 

김형주의 부안이야기-집지킴이 신을 섬기는 민간신앙<1>
가옥신과 조상신 이야기

▲자료사진/지붕 올리기, 부안에서는 ‘새오치기’라고 한다.ⓒ부안21

우리가 가족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집안에는 여러 가지 신들이 함께 살고 있다고 믿었다. 집안의 요처마다에 깃들어 있는 신들을 통틀어서 우리는 가택신(家宅神), 또는 가신(家神)이라고 말하는데 이와 같은 가택신을 받들어 모시는 민간신앙(民間信仰)은 우리 겨레의 특유한 민속문화의 한 형태로 우리 부안지방에도 어김없이 있어 왔으며 지금도 성주신(成主神)이나 삼신, 조왕신을 받드는 토속적인 신앙행위는 부녀자들에 의하여 상당히 뿌리 깊게 이어져 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울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가택신앙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가족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울안의 공간 요처마다에 깃들어 있는 신격들로 예를 들면 가옥을 총괄한다는 성주신을 비롯하여 자녀들을 점지하여 주는 안방의 삼신할미, 아궁이를 담당하고 있는 조왕신(竈王神), 뒤꼍 장독대의 천룡신, 광․곡간의 업신, 마당 가운데에서 집터를 지키고 있다는 터주신, 외양간의 축신(畜神), 우물의 요왕신, 칙간의 칙신(側神), 대문간의 문간대신들이 그것이요, 다른 하나는 가족들과 혈연적 관계에 있는 조상신(祖上神)을 모시는 형태다. 가깝게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혼령신을 비롯하여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등 이른바 사대(四代)의 신위를 집안에서 모시고 제사지내는 조상신들이다. 집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모시는 이들 가신들은 어디까지나 그 집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 국한되는 신들이다. 성주, 조왕, 삼신들이 행하는 길흉화복의 신력(神力)들이 거기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만 미치는 것과 같이 조상신 또한 이웃 집이나 마을사람들과는 전혀 무관하다. 따라서 그 집, 그 가족들에 한정된 신격(神格)이라는 점에서 가택신이요 가신이다. 김씨네 집의 가택신이 이씨네 집이나 박씨네 집 가족들에게 무관하여 신으로서의 경외로움이나 여타의 관계가 없음이 자연신(自然神), 산천신(山川神)과는 다름이요, 가택신의 특성인 셈이다.

조상신은 가옥이 조성되면 의례히 집안의 요처에 스스로 깃드는 잡신격(雜神格)의 일반 가택신들과는 그 위상이나 격이 다르다. 지난날 가족들을 실지로 충생케한 분들의 혼령으로 혈연적 관계요 천륜(天倫)적 관계여서 잡신들처럼 받들어 모시는 치성에 따라서 길흉화복으로 보상되고 응징 받는 관계의 신격이 아니다. 그리고 제례의 규정에 따라 집안에서 모시는 조상신은 그 모시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사대의 봉사(奉祀) 기간이 끝나 사제자인 주손(主孫)의 오대에 이르는 조상신은 매조(埋祖)로 밀려나 집안으로부터 문중(門中)의 시제(時祭)로 옮겨지게 되므로 교체되는 신격이기도 하다.

이제 가옥 지킴이의 신들과 집안에서 모시고 있는 조상신의 제의(祭儀) 형태와 신으로서의 기능면들은 어떠한가를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4대의 조상까지만을 받들어 모시는 조상신의 제의 형식은 유고적 제의형식이며, 사제자(司祭者)도 남자 중심인데 반하여 성주, 조왕, 삼신 등 집지킴의 가옥신격들을 모시는 제의형식은 주부(主婦)가 사제자가 되는 부녀자가 중심이 되는 무격적(巫覡的)인 제의형식이다.

그리고 조상신을 모시는 제일(祭日)은 그분이 돌아가신 날이(忌日) 제일이며 제장(祭場)은 사당(祀堂)이 아니면 큰방이거나 대청마루가 되고 신주(神主), 또는 지방(紙榜) 등의 위패를 신체(神體)로 하여 제사를 지낸다. 이에 비하여 가옥 지킴이 신들의 제장은 그들 신들이 깃들어 있다는 요처마다가 제장이 되며 제일은 명절날이 되므로 전국의 모든 집지킴이 가택신들의 제일은 동일하다. 이들 신들에게 축원하는 소망은 무당의 고사형식으로 주부가 행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젯상만 바는 것으로 끝나는데 주부외에 참여자는 거의 없다. 조상신을 모시는 제의형태를 보면 집지킴이 제사에 비하여 직접적이고 구체성과 사실성이 있어서 신과 사람이 만나고 교감하는 느낌이 강한데 비하여 집지킴이 신들을 모시는 제장의 분위기는 추상적이요, 관념적이며 다소 공허한 감을 느끼게 되어 신과의 교감성이 떨어진다 할 것이다.

그러면 이들 신들은 가택의 신으로서는 어떤 기능으로 거기 살고 있는 가족들을 돕고 지키며 때에 따라서는 신벌(神罰)로 응징한다고 믿는 것일까. 이미 돌아가신 조상신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가족처럼 가깝게 모시는 일은 그 상한계(上限界)를 4대까지의 조상신으로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는 조혼으로 자녀를 일찍 두고 장수하는 사람은 4대조 4대손이 만나게 되는 최대의 시간적 한계로 보아진다. 이 경우 생전에 가족으로 함께 살았으니 4대까지를 그 상한계로 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미 유(幽)와 명(明)이 다르기는 하지만 가족이라는 개념이 강하게 남아있어 음우(陰佑)가 있을 것으로 믿는 것이다. 조상신이 영력으로 돌볼 것이라는 믿음은 속담에도 보인다. “잘되면 내탓이요 못되면 조상탓 한다” 또는 “조상이 돌보았다” 등이 그것이다.

가택의 신들이 안정되고 편안하여야 집안이 재수가 있어서 우환이 없으며 농사와 사업이 잘될 뿐만 아니라 자손들도 무병하다 하여 새해의 정초에는 안택(安宅)굿을 한다. 부안지방에서는 주로 정월 초사흗날 하였으며, 무당이나 점쟁이의 지시를 받아 하였는데 굿은 주로 경바치라 하는 봉사가 하였다. 초저녁부터 시작하여 날이 샐 때까지 하는 안택굿은 삼신 등을 위로하며 새해의 제액초복(除厄招福)을 축원하는 고사굿이다. 이 고사굿 떡을 얻어먹으면 명이 길다고 하여 이웃에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김형주


김형주
는 1931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전북대학교를 나와 부안여중, 부안여고에서 교사, 교감, 교장을 역임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안향토문화연구회와 향토문화대학원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향토문화와 민속’,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부안의 땅이름 연구’, ‘부풍율회 50년사’, ‘김형주의 부안이야기’, ‘부안지방 구전민요-민초들의 옛노래’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전북지역 당산의 지역적 특성’, ‘부안읍 성안 솟대당산의 다중구조성과 제의놀이’, ‘이매창의 생애와 문학’, ‘부안지역 당산제의 현황과 제의놀이의 특성’ 외 다수가 있다. 그밖에 전북의 ‘전설지’, ‘문화재지’, 변산의 얼‘, ’부안군지‘, ’부안문화유산 자료집‘ 등을 집필했다.

(글쓴날 : 2006·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