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새만금 매향제(2000.01.30),ⓒ부안21

새만금갯벌 지킴이와 매향신앙(埋香信仰)<1>
침향(沈香)으로 미륵세상을 열고지고

1999년 12월 31일 17시 30분은 변산반도 끝자락 격포(格浦) 채석강(彩石江)에서 지난 천년동안 이 땅을 비추어 왔던 해가 함지(咸池)로 넘어가는 마지막 시간이다. 이 시간에 채석강의 바닷가에는 전국의 각지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겨레의 마음을 모아 지난 천년의 온갖 사악한 재액(災厄)들을 한조각의 띠배에 실어 빛바랜 묵은해와 함께 멀고 먼 어둠의 세계로 보내고 크고 밝게 솟아오를 새천년의 해를 맞을「해넘이 축제」를 성대하게 치루었다.

어둡고 괴로웠던 어제는 이제 영원히 갔다. 동녘 하늘을 붉게 태우며 힘차게 솟아 오르는 정동진의 햇살은 과연 우리들을 따뜻하게 비추어줄 것인가. 자못 가슴이 부풀기도 하는데 새천년을 맞은 2000년 1월 30일 부안댐의 입구 해창(海倉) 갯벌에서는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죽어가고 있는 서해안 연안의 갯벌 살리기를 소망하는 시민들의 문화행사가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마치 신앙적인 의식처럼 장엄하고도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 전라북도 환경연합, 녹색연합, 한국YMCA전국연합, 환경정의시민연대, 환경운동연합, 그린훼밀리운동연합, 환경과공해연구회 등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자연사랑의 모임체요 갯벌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관하는 행사였다. 이는 깨어있는 많은 시민들이 가난한 머리를 굴려 국토를 망가뜨리고 있는 멍청한 사람들을 깨우치려 함이요, 바로잡고자 함이며 꾸지람이기도 하고 하늘이 주신 땅이 망가저가고 있는 현장에서 웨쳐대는 메아리 없는 서글픈 절규이기도 하다.

이날 행사의 프로그램은 전래의 순수한 우리 문화에 바탕을 두어 그 속에서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감을 시사하는 내용으로 짜여졌음을 볼 수 있었는데 살아있는 갯벌과 죽어 가는 갯벌의 실상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진전이 그러했고 대자연에 호연의 기를(浩然之氣) 펴는 연날리기며, 풍물패의 길굿놀이 뒤를 이어가는 죽은 갯벌을 조곡(弔哭)하는 상여행렬, 큰북패들의 갯벌공연, 등이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강하게 끌어안은 행사였다. 특히 죽어 가는 갯벌의 시신을 상징적으로 운구하며 이 시신들을 꽃상여에 태우고 늦은 중중모리 가락의 만가(輓歌)에 발맞추며 가는 두권 쓰고 베옷 입은 상두꾼들의 행렬은 사람들의 심금만을 울려 주었으랴.

내가 이 행사에 초청을 받아 감기몸살의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달려가 본 것은 프로그램에 매향비(埋香碑)세우는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갯벌에 향(香)을 묻고 내세기복(來世祈福)을 염원하는 이 불교적인 민간신앙(民間信仰)은 고려시대에 주로 행하여저 오다가 16세기 이후에 끊긴 민초들의 신앙적인 의식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민간신앙을 공부하여 오면서 이에 대한 관심은 있었으나 직접 그 현장을 접하여 볼 기회를 갖지 못하였으며 이를 복원하여 행하였다는 말도 아직까지 들은 바가 없었다.

▲새만금 매향목 신위.ⓒ부안21

갯벌에 향나무나 참나무를 묻어두어 천년이 지나면 침향(沈香)이라는 최고 최상의향이 된다고 하며 이 침향의 신비로운 향내음이 매체가 되어 발원자의 소망이 미륵자존(彌勒慈尊)에게 연결되어 내세의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매향신앙(埋香信仰)이다. 불교에 바탕하여 생겨난 민간신앙이긴 하지만 절간의 승려들에 의하여 행하는 불교의식은 아니었으며 힘없고 가난하여 시달리고 박해받는 일반 민중에 의하여 이승의 고달픈 고해(苦海)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박한 염원에 의하여 생겨난 민초들의 애절한 신앙이다.

침향은 불교에서 최고의 향으로 여기는 진귀한 것이며 물에 띄우면 가라앉는다 하여 침향(沈香)이라 한다. 그 향기가 어찌나 좋고 신비로운지 이 향을 피우거나 공양하면 부처님도 이 향을 따라 움직이므로 쉽게 만날 수 있으므로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한약재로 쓰이는 침향이나 고급 가구목으로 쓰이는 침향목과는 다른 것으로 향으로 쓰이는 침향은 향나무 참나무 등이 갯벌에 묻혀 천년이 지나야만 비로소 침향으로 생성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매향신앙 행위에 의하여 옛 우리 선인들이 참나무나 향나무를 강이나 갯벌에 묻고 미륵세계에 왕생하기를 소망하며 국태민안(國泰民安)도 함께 빌었던 매향비(埋香碑)들이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다섯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고려시대인 1309년(충선왕. 1)에 세운 동해안의 고성(高城). 삼일포매향비(三日浦埋香碑)와.. 1335년(충숙왕 복위․4)에 세운 평안북도 정주매향비(定州埋香碑). 1387년(우왕․13)에 세운 경남의 남해안 사천(泗川) 곤양매향비(昆陽埋香碑). 그리고 조선조에 들어 1405년(태종․5)에 세운 전남 무안(務安) 암태도매향비(巖泰島埋香碑)와 1425년(세종․9)에 세운 충남 해미매향비(海美埋香碑)들이 그것이다.

미륵보살은 내세를 관장할 부처님이다. 그는 인도의 파라내국(婆羅奈國)의 파라문(婆羅門)집안에서 태어나 석존의 도화(導化)를 받고 미래의 부처가 될 수기(受記)를 받은 후 욕계육천(慾界六天)의 넷째 하늘 도솔천(兜率天)의 내원(內院)에 살면서 모든 중생을 권도(勸導)한다는 보살이다. 석존이 입멸(入滅)한 후 56억 7천만년 뒤에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서 승림국(承林國)안의 용화수(龍華樹)밑에서 성도(成道)한 다음 모든 중생을 구제할 것으로 믿는 불교적인 신앙이 미륵신앙이다.. 그러므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많은 민중들은 하루 빨리 미륵세계에 들기를 염원하여 온 것이다 매향신앙은 밑바닥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해방신앙이었다.(다음으로 이어짐)

 


/김형주


김형주
는 1931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전북대학교를 나와 부안여중, 부안여고에서 교사, 교감, 교장을 역임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안향토문화연구회와 향토문화대학원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향토문화와 민속’,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부안의 땅이름 연구’, ‘부풍율회 50년사’, ‘김형주의 부안이야기’, ‘부안지방 구전민요-민초들의 옛노래’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전북지역 당산의 지역적 특성’, ‘부안읍 성안 솟대당산의 다중구조성과 제의놀이’, ‘이매창의 생애와 문학’, ‘부안지역 당산제의 현황과 제의놀이의 특성’ 외 다수가 있다. 그밖에 전북의 ‘전설지’, ‘문화재지’, 변산의 얼‘, ’부안군지‘, ’부안문화유산 자료집‘ 등을 집필했다.

(글쓴날 : 200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