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흙과 햇볕에다 피땀으로 농사질 제… 계화벌 지킴이 솟대와 장승제

마을지킴이 신을 섬기는 민간신앙(10)

▲계화들판 지킴이.ⓒ부안21

새천년 들어 처음 농사철을 맞은 지난 3월 15일 계화면(界火面)의 농민회원들이 드넓은 계화벌 허허로운 새봉산 계화정(界火亭)의 광장에 모여 우리의 옛 마을문화의 방식에 따라 마을 지킴이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제의(祭儀)를 행하고 계화농민회 부녀풍물패의 흥겨운 가락 속에 한마당의 놀이판이 열었다.

전래의 민간신앙인 마을 지킴이 오리솟대 여섯 기와 그를 돕는 도움이 장승 두 쌍을 조성하여 광장의 남과 북에 세워 계화골을 지키는 상징적 수호신(守護神)으로 삼고 그 아래 젯상 차려 향피우고 술잔 올려 온갖 재앙과 근심 병마 다 물러가게 하여 주고 우순풍조(雨順風調)로 계화벌이 넘쳐나도록 풍년들게 하여 주시라는 농민들의 소박한 풍년기원의 제사요, 화합단결의 마당이었다. 절절하고도 소박한 그들의 소망이 축문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러하다.

「유세차 경진년 삼월 보름 음력 초열흘 넓은 들녘 계화골에 계화농민 모두 모여 천지신명께 기원하옵니다. 때는 좋은 춘삼월에 농사채비 접어두고 지극정성 드리 오니 굽어 살펴 주옵소서. 물과 흙과 햇볕에다 피땀으로 농사질 제 오는 가을 추 수철에 풍년들게 하옵소서. 조상 대대 이어받은 축복 받은 부안땅에 수십년 된 소나무로 지극정성 한데모아 장승으로 태어났으니 멸구귀신, 도열귀신, 문고귀신, 굴파리귀신, 가뭄귀신, 홍수귀신, 태풍귀신, 한해귀신, 썩어빠진 농정(農政)귀신, 대책 없는 수입(輸入)귀신, 잡귀, 역신 막아내고 근심 걱정 몰아내어 살기 좋은 계화들녘 지킴이 되게 하옵소서. 부디 부디 비옵나니 우리 백성 원하는 것 풍년 농사, 자식 농사 더덩 덩실 평등세상 식량 자급 환경보전 소득 보장 통일 농업 우리 농민 가는 길에 농민회가 앞장 설 때 얼쑤 좋다 농민 해방 지화자자 좋은 세상 활짝 열어 주옵소서 상향」

당산신격인 솟대 앞에서의 제사를 마친 후 남과 여로 나뉘어 용줄을 당기는 줄다리기 놀이판을 벌였다. 용줄은 농업의 신인 용신(龍神)을 상징한다. 60여 m의 기다란 용줄을 남녀로 편을 갈라 잡아당기는 이 줄다리기 놀이는 옛부터 농경문화권에만 있어온 풍농기원의 제의적 성격의 놀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이 대자연이며 우순풍조다. 우순풍조는 농사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조건인데 이를 조정하는 이가 용신이라 믿어 왔다. 남녀가 어우러져야 풍요로움이 생기며 그중에서도 여자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하여 삼판양승으로 여자편이 이기는 승부가 예정된 놀이이지만 이 줄다리기 놀이는 성의 개방, 접촉, 생식 풍요로 유감(類感)되는 대표적 농경의 놀이문화다.. 놀이가 끝나면 용줄은 마을 수호신인 당산 솟대에게 받혀진다.

이 지방에서 마을 지킴이 솟대를 받들어 온 민간신앙은 아주 먼 옛날부터 있어 왔다. 2,000여 년 전 원삼국시대에 이미 마한(馬韓)에서 솟대를 세우고 천신(天神)을 받들었다는 기록이《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의 동이전(東夷傳) 마한 조에 보인다. 농사일이 시작되는 오월과 일이 끝나는 10월이면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별읍(別邑)에 기다란 장대나무로 소도(蘇塗: 솟대)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달아 그 아래에서 신을 섬겼다고 하였다.(…主祭天神 名之天君 又諸國名有別邑 名之爲蘇塗 立大木懸鈴鼓 事鬼神…)

오늘의 충청도나 전라도는 이때에 마한 땅이었다. 이와 같이 솟대나 당산나무를 마을 지킴이의 수호신으로 받들며 제사를 지내고 있는 마을들은 지금도 도처에서 볼 수 있으며, 부안지방에만도 20여 곳의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내오고 있다. 지금은 끊겼지만 1980 년 무렵.까지만 하여도 창북리의 당산제는 그 규모가 대단하였다. 마을의 동서남북과 중앙에 지킴이신을 모시는 오방당산이었으며 지금도 마을의 중앙에는 오리솟대형의 석간(石竿) 당산이 남아 있다.

계화(界火)라는 지명은 원래는 개부리(皆火)였다. 김부식(金富軾)이 쓴《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백제(百濟)시대 부안은 개화현(皆火縣)이었다. 신라(新羅)가 삼국통일을 한 후 개화(皆火)를 부령(불영, 扶寧)으로 고쳤고, 혹 계발(게불, 戒發)이라고도 하였다 하였으니 부령이나 계발이 모두 개화(皆火)의 불(火)이 그 어근(語根)을 이루고 있음으로 보아 오늘의 계화(界火)라는 땅이름은 부안(扶安)이라는 이름의 뿌리며 원조라 할 수 있다.

오늘의 계화면은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거머쥔 박정희 독재정권이 1963년에 식량증산정책의 일환으로 계화도간척공사를 일으켜 하서면의 돈지에서 계화도(界火島)를 거쳐 동진면 새포(鳥浦)까지의 제방 12.8㎞를 쌓아 금쪽같은 갯벌을 막아 3,968㏊의 농지로 조성하여 벽해(碧海)가 상전(桑田)이 된 갯벌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면이다.

계화벌 지킴이로 솟대신간(神竿)과 장승 신장을 세우고 풍요와 안과태평을 축원하는 굿판을 벌인 계화정(界火亭)의 광장도 1960여 년 전까지는 너무재풀 사이로 농발게 짱뚱어들이 어지럽게 기어 다니는 갯벌이었으며, 수백년 동안 벌뜽, 벌막(筏幕)에서는 질 좋은 소금을 구어냈던 곳이니 이를 입증하는 지명이 대벌리(大筏里: 鹽所)요 소금창고가 있었던 염창산(鹽倉山)이며 창고 북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의 창북리(倉北里: 倉頭)였다. 계화벌은 실로 부안 역사․문화의 한덩어리 화석(化石)이라 할 것이다.


/김형주


김형주
는 1931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전북대학교를 나와 부안여중, 부안여고에서 교사, 교감, 교장을 역임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안향토문화연구회와 향토문화대학원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향토문화와 민속’,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부안의 땅이름 연구’, ‘부풍율회 50년사’, ‘김형주의 부안이야기’, ‘부안지방 구전민요-민초들의 옛노래’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전북지역 당산의 지역적 특성’, ‘부안읍 성안 솟대당산의 다중구조성과 제의놀이’, ‘이매창의 생애와 문학’, ‘부안지역 당산제의 현황과 제의놀이의 특성’ 외 다수가 있다. 그밖에 전북의 ‘전설지’, ‘문화재지’, 변산의 얼‘, ’부안군지‘, ’부안문화유산 자료집‘ 등을 집필했다.

(글쓴날 : 200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