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방산봉수대(占方山烽燧臺)

-위치: 변산면 대항리( E 127。34′, N 35。30′20″) -재료: 석축 -시대: 삼국시대 부안에서 격포방향으로 30호 국도를 따라 20km지점, 변산해수욕장 2km 못미쳐에 대항리 마을이 있다. 마을 중앙에는 400살은 넘음직한 당산나무가 서 있고, 도로 오른쪽 전북체신청 변산휴양소 간판이 있는 골목으로 바닷가에 이르면 지방기념물 제50호 「대항리 패총」이 있다. 점방산봉수대는 이 마을에서 북쪽으로 도로변에 있는 해발 100m도 안되는 나즈막한 산봉에 있다. 백제성모텔 못 미쳐 도로에서 밭길을 따라 15분 정도 산봉에 오르면 연대(煙臺)를 쌓은 듯한 석축과 무너져내린 무수한 돌무더기가 있는데, 여러 흔적이나 정황으로 보아 이 곳이 …

내소사의 봄

내소사에 봄이 완연하다. 벚꽃은 지금 만개, 이번 주가 지나면 질 것 같다. 조선 초, 김시습이 이곳에 와 시 한 수를 남겼다. 蘇來寺소래사 金時習   김시습 梵宮倚山外    범궁은 산모퉁이에 의지해 있고 夕陽樓閣開    석양에 누각이 열려 있다오 僧尋泉脈去    스님은 샘 줄기를 찾아가는데 鶴避茗烟廻    학은 차 끓이는 연기를 휘돌라 가네 寺古松千尺    절은 오래되어 천 길이나 자랐고 山深月一堆    산은 깊어 달이 한 무더기라 無人堪問話    말 물어 볼만한 이 없어서 庭園獨徘徊    뜰에 홀로 서성거릴 뿐 글쓴이 :   부안21   …

격포 월고리봉수대

  봉수의 역사 봉수란 높은 산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횃불(봉·烽) 낮에는 연기(수·燧)로 변방의 위급상황을 릴레이식으로 중앙에 올리는 통신수단을 말한다. 오늘날의 전기통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통신문화유산이다. 오늘의 통신제도가 확립되기 이전에는 봉수제, 우역제, 파발제가 통신제도로 이용되다가 봉수제는 오늘날의 전기통신으로, 우역제나 파발제는 우편제도로 변천되었다. 봉수는 기원전 300년경에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더대왕 시대에 사용되었음이 문헌에 보이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백제(온조왕), 가락국(수로왕) 때부터 봉수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제도화된 것은 고려 의종 때로 보인다. 고려시대에 정비된 봉수제도는 조선시대로 이어져 잦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며, 왕조 …

풍년기원의 용신제

  김형주(향토사학자.전 부안여고 교장) 지난 4월 8일(1999년) 변산 位金山城 아래 개암동, 개암호의 만수로 넘치는 수문 앞에서는 길이 6.5m, 폭 2.1m 크기의 거대한 龍塘旗에 청룡이 용트림으로 오르는 모습을 그린 용신을 모시고 풍년을 기원하는 龍神祭가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용은 물을 관장하는 水神이어서 물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上西面 농민회원들이 한해의 농사일을 시작하는 始農의 의식을 겸한 물내림의 행사로 개암호 깊은 물에 棲依하고 있을 농업의 신인 용신에게 雨順風調와 除厄進慶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농민들의 협동 단합을 다짐하는 한마당 굿놀이 판의 축제를 연 것으로 …

이완용휼민선정비

  자를 경덕(敬德), 호를 일당(一堂)이라 한 을사오적 가운데 한 명인 이완용은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에서 우봉(牛峰) 이씨 호석(鎬奭)과 신씨(辛氏) 사이에서 태어나서 열 살 때부터 판중추부사 호준(鎬俊)의 양자가 되었고, 1870년에 양주 조씨 병익(秉翼)의 딸과 결혼했으며, 1882년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했다. 이후 규장각 대교 검교, 홍문관 수찬, 동학교수, 우영군사마, 해방영군사마 등을 거쳐 육영공원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웠고, 사헌부 장령, 홍문관 응교 등을 거쳐 1887년에 주차미국참찬관(駐箚美國參贊官)이 되어 미국에 갔다가 이듬해 5월에 귀국하여 이조참의를 지냈다. 이 해 12월에 다시 참찬관으로 미국에 갔다가 1890년 10월에 귀국하여 우부승지, …

갯벌에 묻힌 줄포항

  줄포는 조기어장으로 유명한 칠산어장의 입항으로 목포나, 군산보다도 먼저(1875년) 항만이 구축되었다. 1900년대 초에는 제물포(인천), 군산, 목포와 함께 서해 4대항으로 꼽히었고, 대상(大商) 객주만도 5,6명이 머물렀을 정도로 번창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는 어업조합이 들어서고, 상권은 일본상인들이 주도했다. 이때 일본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헌병분소가 파견되어 있었다. 지금의 삼양사 모태인 도정공장도 이 무렵에 들어 섰는데 인부만도 수 백명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항구가 번성하자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경찰서, 우편국, 식산은행(출장소), 곡물검사소, 소방서, 남선전기, 어업조합, 줄포운수, 신탄조합, 줄포공립보통학교 등 15개 기관과 일본인 업소 30여 곳, 중국인 포목상과 음식점만도 …

변산에 퍼지는 蘭향기

  넉넉한 자태를 뽑내고 있는 변란 蘭을 선인들은 사군자 중의 하나로 꼽았다. 3월이면 벌써 꽃대궁이 올라오기 시작하여 4월이면 연한 황록색의 꽃을 피운다. 맑고 청아한 향기와 함께…   3변 이야기 예로부터 변산에는 유명한 것 세 가지가 있다. 변재(邊材), 변청(邊淸), 변란(邊蘭)이 바로 그것으로 삼변(三邊)이라고 한다. [변재] 고려·조선시대에 변산은 나라의 귀중한 재목창이었다. 변산에서 나는 재목(소나무)을 변재(邊材)라 하는데, 궁재(宮材)나 선재(船材)로 쓰기 위해 나라에서 특별히 관리했다. 고려시대에는 문장가 이규보 같은 이가 변산의 벌목책임자로 부임해 와 재목을 관리했고, 몽고가 일본을 치기 위해 배를 만들게 한 곳도 …

개암사 영산회괘불탱

    개암사 괘불은 장 13.25m, 폭9m로 어찌나 큰지 이보다 더 큰 괘불을 어떤 문헌에서도 본 적이 없다. 괘불은 영산재(靈山齋), 예수재(豫修齋), 수륙재(水陸齋) 등의 야외법회를 치를 때 봉안하는 신앙의 대상물로 장수와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영산재에는 영산회상도를, 죽은 후에 행할 불사를 생전에 미리 지내는 예수재나 물속과 땅위에 떠도는 고혼을 달래고 이들을 인도하는 수륙재에는 지장회상도를 건다. 그 외에도 나라에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나 기우재 등의 법회를 열 때에도 괘불을 건다.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있는 괘불은 거의가 조선후기(1622∼1892년) 작품으로 대부분 영산회상도인데 개암사의 괘불도 영산회상도이다. 이는 조선시대에 법화경신앙이 …

부안에도 백제시대 고분군이 있다

  도대체 이 무덤들은 어느 시대 무덤일까? 전북대학교 고고인류학 윤덕향 교수에게 알아봤다. 유점 유적 지표조사 결과 •유적의 위치 :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유점마을 •유적의 종류 :  백제 돌방무덤 백제 돌방무덤 가) 현황; 유정마을의 뒤에 자리하고 있는 주산(배매산)의 구릉을 따라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백제 토기편이 확인되었다고 하며 2기가 지표상 노출되어 있다. 그중 1기는 돌방 내부가 드러난 상태로 비교적 정연한 석재로 축조된 벽석이 2단 확인되며 천정석은 지표상에 드러난 상태이다. 주변지역에는 돌방무덤의 천정석 또는 벽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흩어져 있다. 나) 연대; 구조가 분명하지 …

신전에서 물고기를 잡다

  신전에서 물고기를 잡다(神箭打魚 ) 孰編山木包江渚 누가 산나무 엮어 강물 둘렀는가 潮退群鱗罄一漁 조수 빠지자 많은 물고기 한꺼번에 잡히네 却笑陶朱勞水畜 비웃노라 도주공의 물고기 기르는 수고를 坐敎滄海自驅魚 앉아 있으면 창해가 자연히 고기 몰아오네 위의 칠언절구는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던 사암 박순이 동상 허진동의 ‘우반십경’에 부쳐 지은 시로, 그 당시 곰소만의 어살 풍경이 선하게 그려지는 작품이다. <역주> – 신전(神箭):목이 좋은 어살을 일컫는 말 – 도주공(陶朱公):춘추시대 월왕 구천의 신하 범려. 그는 벼슬을 그만 두고 도(陶) 땅에 가서 주공이라 변성명하고 큰 부자가 되었으므로 도주공이라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