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에 묻힌 줄포항

 

줄포는 조기어장으로 유명한 칠산어장의 입항으로
목포나, 군산보다도 먼저(1875년) 항만이 구축되었다.

1900년대 초에는 제물포(인천), 군산, 목포와 함께 서해 4대항으로 꼽히었고,
대상(大商) 객주만도 5,6명이 머물렀을 정도로 번창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는 어업조합이 들어서고,
상권은 일본상인들이 주도했다.
이때 일본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헌병분소가 파견되어 있었다.
지금의 삼양사 모태인 도정공장도 이 무렵에 들어 섰는데
인부만도 수 백명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항구가 번성하자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경찰서, 우편국, 식산은행(출장소), 곡물검사소, 소방서, 남선전기,
어업조합, 줄포운수, 신탄조합, 줄포공립보통학교 등 15개 기관과
일본인 업소 30여 곳, 중국인 포목상과 음식점만도 10여 곳,
기타 유흥업소 등이 들어서 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는 토사로 인해 바다의 수심이 낮아지자
선박의 입·출항이 곤란하여지고, 1958년에는 어업조합과 부두노조가
곰소항으로 옮겨지자 줄포항은 폐항과 함께 활기를 잃고 말았다.


/허철희  
(글쓴날 : 2003년 03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