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화도界火島는 계화도간척공사로 지금은 육지가 되었지만 1968年 이전에는 서해바다의 외로운 섬이었다. 주봉인 매봉은 해발 265cm 높이인데 옛날의 통신수단인 봉수대 자리가 남아 있으며 조선조말의 큰 학자였던 田愚先生이 말년을 이곳에 숨어 살며 3천여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더 유명하다.
아주 먼 옛날에 계화도가 육지에 붙어 있을 때의 이야기다. 계화산의 한쪽 모퉁이에 돌부처 하나가 서 있었는데 하루는 어떤 과객이 지나가다가 그 돌부처를 보고
「이 돌부처 콧구멍에서 피가 나면 이곳이 모두 쏘(沼)가 될 것이다.」
하고 가버렸다.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별 미친놈 다 보겠네’하면서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는데, 이 마을의 무식하고 고지식한 영감 하나가 그 말을 헛되이 듣지 않고 마음에 새겨 식구들을 모두 모아 놓고
「너희들 지나가는 과객의 말 들었지야 돌부처 코구멍에서 피가 나면 우리 마을이 쏘가 된다니 우리 이곳을 떠나자」하고 말하니 식구들이 모두 웃으며
「아버지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 미친놈 말을 믿습니까?」
하며 전혀 귀 담아 듣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감은 매일 같이 그 돌부처 콧구멍을 가서 보는 것이 일과였다. 밥만 먹으면 돌부처 코에서 피가 나는지 가서 확인하여 보고 오곤하니 마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몇 해가 자나서 마침 추석때라 동네에서 소를 잡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 영감을 골려줄 양으로 소피를 돌부처 콧구멍에 몰래 발라 놓았다. 영감은 그런 줄도 모르고 아날도 또 그 돌부처를 찾아가 보니까 아 이게 웬 일인가? 돌부처 콧구멍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닌가! 앗 뜨거라 하고 급히 집으로 달려와서 식구들을 모아 놓고
「애들아! 돌부처 코에서 피가 난다 어서 빨리 여기를 떠나자」
하고 재촉하니 식구들이 들은 척도 안하며
「아버지나 가시오. 우리는 여기서 살라요」
하고 아무도 따라 나서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곱 살 먹은 손자가
「나는 할아버지 따라 갈래요」
하고 따라 나서서 하는 수 없이 조손祖孫간에 손을 잡고 마구 뛰어서 지금의 계화면 마을 근처까지 왔을 때 비바람이 크게 몰아치며 천둥소리가 진동하고 큰 바닷물이 밀어닥치드니 삽시간에 계화산을 삼켜버리고 山이 반만 남아 섬이 되어버렸다.
이리하여 계화산이 계화도가 되고 손자를 데리고 간신히 탈출한 그 영감은 멀리 海南으로 가서 크게 번성하여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제보자:홍용호(洪龍虎, 남, 70세, 부안군 변산면 지서리/1990년 당시))
/출처:전설지(1990.08.20. 전라북도 발행)
/부안21(2009·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