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면사무소가 있는 종산(鐘山)으로부터 서북쪽으로 1km쯤 가면 뉘역메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뒤의 산 모양이 마치 도롱이로 둘러 놓은 노적가리 같다 하여 뉘역메, 혹은 도롱이 산(蓑山)이라 했는데 지금은 쉽게 사산(士山)으로 쓰고 있다.
이 사산에는 백제시대의 고성으로 추정되는 테머리형의 토성터가 남아 있는데 이 성과 개암사 뒷산에 있는 주류성에서 백제부흥군과 나당연합군과의 싸움을 한 성터로 추정되고 있다. 사산 옆에 정소산(定蘇山)이라는 얕으막한 야산이 있는데 그때 당시 소정방과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서 만나 승전을 즐기며 놀았다고 전하기도 한다.
옛날에 이 뉘역메 마을 앞에 강이 가로질러 흘렀으며 마을에는 욕심 많은 부자가 살았다고 한다. 어찌나 부자였던지 많은 곡식을 노적으로 높이 쌓고 도롱이를 둘러친 것이 마치 산과 같았다 하며, 마을 앞 강 건너에는 거적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 거적골 마을에도 큰 부자가 살고 있어 이 부자 또한 많은 곡식의 노적가리를 거적으로 둘러쳤으므로 마을 이름을 거적골이라 했다는 것이다.
뉘역메 부자와 거적골 부자는 강을 사이에 하고 서로 다투어 노적가리 높이기에 모든 욕심을 다 부려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을 조금도 도와주지 않으므로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서 노적가리가 벼락을 맞아 불타버려 망해 버렸다는 것이다. 지금도 거적골에는 그 부자가 살았다는 장자터가 남아 있다.
뉘역메의 사산에는 임진왜란 때 이 지방 의병들이 군량미를 저장하였다고 하며 이 마을에서 조선조 말에 송방식(宋邦植)이란 분이 진사에 합격하고부터 산을 士山으로 바꾸어 쓰기 시작하였다고도 한다./소재지:부안군 주산면 사산리/제보자:김형옥(金炯玉,남,66세,부안군 주산면 덕림리) 뉘역메(사산)와 거적골
주산면사무소가 있는 종산(鐘山)으로부터 서북쪽으로 1km쯤 가면 뉘역메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뒤의 산 모양이 마치 도롱이로 둘러 놓은 노적가리 같다 하여 뉘역메, 혹은 도롱이 산(蓑山)이라 했는데 지금은 쉽게 사산(士山)으로 쓰고 있다.
이 사산에는 백제시대의 고성으로 추정되는 테머리형의 토성터가 남아 있는데 이 성과 개암사 뒷산에 있는 주류성에서 백제부흥군과 나당연합군과의 싸움을 한 성터로 추정되고 있다. 사산 옆에 정소산(定蘇山)이라는 얕으막한 야산이 있는데 그때 당시 소정방과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서 만나 승전을 즐기며 놀았다고 전하기도 한다.
옛날에 이 뉘역메 마을 앞에 강이 가로질러 흘렀으며 마을에는 욕심 많은 부자가 살았다고 한다. 어찌나 부자였던지 많은 곡식을 노적으로 높이 쌓고 도롱이를 둘러친 것이 마치 산과 같았다 하며, 마을 앞 강 건너에는 거적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 거적골 마을에도 큰 부자가 살고 있어 이 부자 또한 많은 곡식의 노적가리를 거적으로 둘러쳤으므로 마을 이름을 거적골이라 했다는 것이다.
뉘역메 부자와 거적골 부자는 강을 사이에 하고 서로 다투어 노적가리 높이기에 모든 욕심을 다 부려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을 조금도 도와주지 않으므로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서 노적가리가 벼락을 맞아 불타버려 망해 버렸다는 것이다. 지금도 거적골에는 그 부자가 살았다는 장자터가 남아 있다.
뉘역메의 사산에는 임진왜란 때 이 지방 의병들이 군량미를 저장하였다고 하며 이 마을에서 조선조 말에 송방식(宋邦植)이란 분이 진사에 합격하고부터 산을 士山으로 바꾸어 쓰기 시작하였다고도 한다./소재지:부안군 주산면 사산리/제보자:김형옥(金炯玉,남,66세,부안군 주산면 덕림리/1990년 당시)/출처:전설지(1990.08.20. 전라북도 발행)
/부안21(2009·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