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루(門樓)에서 피어난 명인(名人)들의 시문(詩文)-1

부안읍성에는 동․서․남 세 곳에 외부로 드나드는 성문의 다락(城門樓)이 있었으며 동문의 다락은 청원루(淸遠樓)라 했고, 서문의 다락은 개풍루(凱風樓)며 남문 다락은 취원루(聚遠樓)또는 후선루(候仙樓)라 하였다. 이들 성문은 성안 사람들이 외부로 나다니는 문이요, 외부인이 성안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로 안과 밖의 경계점이라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계(淨界)와 부정계(不淨界)를 구획 짓는 문으로 깨끗하고 착한 것만 받아들이는 성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성안에서의 삶은 안온(安溫)하며, 평화스러워야 하고 풍요와 자손의 번창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성문거리에는 성안 사람들의 지킴이신인 오리 솟대당산과 성문 지킴이인 장승신장(長丞神將) 한 쌍씩을 돌로 조성하여 세워 놓고 있다. …

부안읍성(扶安邑城)의 규모와 특징

부안의 진성(鎭城)이라고도 하는 부안읍성이 15세기 초에 어떤 이유로 주변의 다른 여러 고을의 읍성들 보다도 그 규모가 4․5배 이상 더 크고 전라도 감영이 있는 전주읍성(全州邑城)보다도 3배가 넘는 큰 성곽으로 축조 되었을까에 대하여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하여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부안지방에는 백제(百濟)때부터 고려(高麗)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많은 성곽들이 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현재 확인 실측된 성지(城址)의 수만도 15개소나 된다.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부안진성(扶安鎭城)인 부안읍내의 읍성을 비롯하여 흔히 고성(古城)이라 하는 행안면 역리산 토성지(驛里山土城址)와 옛 보안현의 치소성 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보안면 영전리 …

변산에 심은 오건의 작은 꿈 하나

  농촌이 해체되는 이즈음에 서울에서 내려와서 부안에서 농사지으며 농촌을 살려보고자 온몸을 던지고, 이곳에 뼈를 묻은 사람이 있다. 오건(吳建: 1948~1991)은 1948년 10월 2일에 소설가 오영수와 교사인 어머니 김정선 사이에서 2남 2녀 중 세 째로 태어났다. 그의 형은 80년대 민중 판화가로 활동하다가 요절한 오윤이다. 오건은 부산에서 출생하여 서울에서 자랐다. 1974년에 부안에 내려와 변산면 도청리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가 1991년 1월 21일 죽기까지 변산의 척박한 땅을 일구어 농사지었다. 상록수를 꿈꾸다 오건이 살던 집 뒤편 양지바른 묘 앞의 소박한 상석은 따뜻한 글씨로 그를 기린다. 여기 …

해창다리, 흑백사진 한 장

변산사람들은 오늘도 흑백사진으로 남아 그 때의 감동을 전한다. 해창다리 건너 격포로 간다. 사람들은 해창다리라 부르나 관에서는 변산교(邊山橋)라 이름 한다. 이 다리는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뒤 몇 차례 변화를 겪은 밋밋한 콘크리트 다리이다. 이 다리를 찍은 흑백 사진 한 장을 봤다. 1980년에 변산문화협회에서 편찬한 『부안 향토문화지』에는 ‘변산교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흑백 사진이 한 장 나온다. 소화(昭和) 12년(1937) 8월 28일에 거행된 해창다리 개통식 광경이다. 다리 끝에는 신사복 입은 사람들이 서 있고 그 뒤에는 흰 옷 입은 사람들이 길과 주변 산 위를 빼곡히 덮고 …

울금바위와 주류성(周留城)

    ‘고대명장 백제의 꿈 지금까지 전해오고’ 전라북도 기념물 제20호인 우금산성은 상서면 감교리 개암사 위쪽에 자리한 우금암(울금바위)을 중심으로 한 석성을 말한다. 이 산성의 규모는 울금바위를 기점으로 동측선이 563m, 서측선이 675m, 총1,238m에 이르며, 동변은 1.010m, 북변은 830m, 서변은 838m로 전체의 평면은 북변이 좁고 남변이 넓은 성벽으로 주위의 총길이 3.960m에 이르는 포곡식 성곽이다. 개암사에 보관되어 있는 개암사지(開巖寺址)에 따르면 마한의 효왕(孝王) 28년(BC282)에 변한(卞韓)의 문왕(文王)이 진한과 마한(辰韓馬韓)의 난을 피하기 위하여 우(禹)장군과 진(陳)장군을 보내어 여기에 도성을 쌓고 좌우의 계곡에 왕궁과 전각을 짓게 하여 동쪽은 묘암(妙巖) …

한미FTA 쌀은 이미 협상대상도 아니다“쌀만은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

가트(GATT)나 WTO 같은 다자간 협정에서는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협상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특정국가와 1:1로 협정을 맺는 FTA이다. 2006년 새해 벽두에 국민들은 “미국과 FTA를 추진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도 미국 의회의 일정에 맞추어 내년 3월까지 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놀라움을 넘어 분노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크린쿼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약값의 재조정,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 등 굵직한 협상 카드를 협상도 하기 전에 4대 선결조건이라며 미국에 공짜로 ‘헌납’했기 때문이었다. 4대 선결조건에 관해서 지난 6월 …

환경파괴에 의존하는 국가와 자본,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바람 한 점 없는 호수면을 교교하게 물들이던 보름달이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이면 낚시꾼이 수면에 박아놓은 찌를 축으로 다시 또다른 한 세상이 펼쳐진다. 사위는 적막에 싸인 채 이따금 잠 못든 붕어 한 마리가 수면 위로 튀어올라 파문을 그려놓고 갈 뿐이다. 동녘이 환하게 밝아오며 밤새 대좌한 채 말이 없던 산그림자가 서서히 물안개를 걷어내면 어느새 부지런한 물총새 한 마리 물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새벽 낚시터의 모습이다. 자연의 모습이다. 밤낚시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모습을 쉽게 떠올릴 것이다. 이런 자연 속에 몰입하기 위해 낚시를 가는 것일지도 …

2년 동안 ‘백지화 선언’ 세 번 받아낸 안면도

  핵폐기장이 들어설 위도에 ‘장관인 내가 청와대 별장을 짓자고 할 정도로 안전하다’고 주장했던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은 2003년 12월 10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해 “정부가 위도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 추진과정에서 부안주민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문제점과 함께, 신청당시 유치 의사가 있었던 여러 지자체가 부지선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과 지역주민에게 혼란과 불편을 끼쳐드린 점을 먼저 사과드린다”면서 부안주민에게 공개사과했다. 당시 영광, 고창에서는 부안보다 일찍 반핵운동이 점화되어 있었음을 감안하면 참으로 교언영색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부안을 찍어놓고 영광, 고창은 들러리로 내세웠다는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

와우형국의 마을 산세는 황금벌판의 꿈으로 사라지고

  계화면 조포마을 계화면 창북리에서 계화리 쪽으로 조금 가다 우회전하여 줄곧 달리다보면 비교적 큰 마을이 나옵니다. 주변 일대가 워낙 넓은 간척지 논이다보니 마치 육지 속의 섬 같습니다. 이 마을은 필시 오래 전에는 섬이었을겁니다. 줄무늬잎마름병이 휩쓸고 간 아픈 농지에도 가을은 왔는지라 누렇게 영근 황금벌판의 농부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락 수확을 이미 마친 농가는 보리 심는 ‘전쟁’으로 한창입니다. 비 오기 전에 보리를 심어야 하므로 논바닥에 깔린 짚더미를 빨리 치워달라 서로들 아우성입니다. 동북으로는 동진강이 바다와 만나고 있고 서로는 계화도가 보이며 남으로는 부안읍내로 향하는 …

‘왕등도공화국’으로 독립허고 싶당게

    위도면 왕등도 마을 우리가 왕등도를 찾은 날은 안개가 많은 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여객선으로 위도의 파장금항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곧바로 미리 예약한 어선으로 갈아탔습니다. 왕등도에 들어가는 배가 일주일에 두 대 밖에 없고 섬 주변도 둘러보며 낚시도 할 겸 해서 어선을 빌렸습니다. 제법 빠르게 달렸는데도 파장금항에서 출발한지 40분 정도 지나서야 왕등도가 보이기 시작했고, 여전히 안개는 뿌연하게 섬들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중종 18년 계미년(1523)에 충청도 관찰사 윤희인이 장계(狀啓: 임금에게 글로써 보고함)하기를 “6월 27일 서천포 만호(舒川浦萬戶) 권한(權暵) 등이 왜선과 직도(稷島)에서 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