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금바위와 주류성(周留城)

 

 

▲우금산성(주류성으로 비정되고 있다.)ⓒ부안21

‘고대명장 백제의 꿈 지금까지 전해오고’

전라북도 기념물 제20호인 우금산성은 상서면 감교리 개암사 위쪽에 자리한 우금암(울금바위)을 중심으로 한 석성을 말한다.

이 산성의 규모는 울금바위를 기점으로 동측선이 563m, 서측선이 675m, 총1,238m에 이르며, 동변은 1.010m, 북변은 830m, 서변은 838m로 전체의 평면은 북변이 좁고 남변이 넓은 성벽으로 주위의 총길이 3.960m에 이르는 포곡식 성곽이다. 개암사에 보관되어 있는 개암사지(開巖寺址)에 따르면 마한의 효왕(孝王) 28년(BC282)에 변한(卞韓)의 문왕(文王)이 진한과 마한(辰韓馬韓)의 난을 피하기 위하여 우(禹)장군과 진(陳)장군을 보내어 여기에 도성을 쌓고 좌우의 계곡에 왕궁과 전각을 짓게 하여 동쪽은 묘암(妙巖) 서쪽은 개암(開巖)이라 부르게 하였으니 지금의 개암사는 그때의 개암동에 자리 잡았던 변한의 왕궁의 터라 전해지고 있다.

▲복신굴/울금바위에는 3곳의 굴실이 있다. 이곳 부안사람들은 세 굴을 각각 ‘원효굴’, ‘베틀굴’, ’복신굴‘이라 부르고 있는데, 원효굴은 676년에는 원효대사가 나라 잃고 실의에 빠져있는 이곳 주민들을 위무하고자 원효굴에 와 머물렀다고 하며, ’베틀굴‘은 백제부흥운동 당시 병정들의 옷을 지어주기 위해 베를 짰던 곳이라 한다. 또 ‘복신굴’은 복신이 칭병 우거했던 굴이라 한다.ⓒ부안21

이 산성을 서기 660년 백제 의자왕이 나당 연합군에 항복하자 복신 장군과 도침 등이 일본에 있던 왕자 풍을 왕으로 추대하고 의병을 일으켜 피나는 항전으로 무려 4년간이나 백제부흥운동을 줄기차게 벌였던 주류성으로 비정하는 학자(전영래)들도 있다. 아무튼 망한 백제는 역사를 기록하지 못했을 터…, 이 산성을 찾기 위하여 개암사 입구에 들어서다보면 왼편 산기슭에 김유신 장군의 사당인 보령원(保寧院)이 있는데, 백제의 마지막 부흥운동의 본거지였던 이곳에 백제를 멸망시킨 장본인 김유신 장군의 사당이 자리하고 있음은 승자(勝者)만이 역사를 기록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느낀다.

어쨌든 이 성을 백제의 유민인 복신(福信)이 쌓았는지 지적한 바와 같이 변한의 우장군, 진장군이 쌓은 성을 이용하여 나당(羅唐) 연합군에 대항 할 때 주류성이라 부르게 되었는지는 확실한 정설은 없지만, 인근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성곽이며 성곽의 입구에는 원장대가 있고 남쪽 높은 곳에 남장대, 북쪽 봉우리에 북장대, 서쪽에 서장대가 위치했다고 하며 성의 내부에는 왕궁터와 묘암사터를 비롯하여 많은 건물터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백제를 돕기 위하여 왔던 400여 척의 일본 원정군이 백강(동진강 하구로 비정하는 학자들이 있다.)에서 당의 유인궤(劉仁軌)에게 패하자 백제부흥군 역시 663년 9월에 주류성이 함락되면서 백제는 완전히 패망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항전거점이 이제는 한낱 잡초 우거진 폐허로 남아 있으니 이곳을 찾은 나그네… 백제 최후의 피눈물 나는 저항의 모습과 백제유민들의 통한을 상상하면서 덧없는 역사의 영고성쇠의 감회에 젖어 본다.

우금산성(遇金山城)

▲보령원ⓒ부안21

묘암(妙岩)골 돌아드니
우뚝 솟은 우금암(遇金岩)

기봉(奇峯)에 올라앉아
이리 저리 살펴보니

덩치는 육중한 태(態)
만년이나 되었는가

울뚝불뚝 뚜박한 태(態)
영겁(永劫)이나 되었는가

암하삼굴(巖下三窟) 숱한 사연
풍왕 복신 도침 충절(忠節)

고대명장(古代名將) 백제(百濟)의 꿈
지금까지 전해오고

역사의 영고성쇠(榮枯盛衰)
잊혀진 듯 간직한 체

천년(千年)을 침묵(沈黙)하며
그대로 서 있구나

저 숲에서 우는 새는
귀촉도(歸蜀道) 울음인가

주류성(周留城) 부는 바람
백제군사(百濟軍士) 곡성(哭聲)인가

산영(山影)이 드리운 곳
능가법계(愣伽法戒) 개암고적(開岩古蹟)

은은한 풍경 소리
도솔천이 저기구나

암하삼굴(巖下三窟) – 울금바위 아래 굴 셋이 있다
영고성쇠(榮枯盛衰) – 성함과 쇠함
귀촉도(歸蜀道) – 서촉새. 두견새
능가법계(愣伽法戒) -부처가 능가산에서 대혜보살을
위하여 설한 가르킴을 모은 경전

/邊山小松 金 吉重

2005·07·21 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