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한 점 없는 호수면을 교교하게 물들이던 보름달이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이면 낚시꾼이 수면에 박아놓은 찌를 축으로 다시 또다른 한 세상이 펼쳐진다. 사위는 적막에 싸인 채 이따금 잠 못든 붕어 한 마리가 수면 위로 튀어올라 파문을 그려놓고 갈 뿐이다. 동녘이 환하게 밝아오며 밤새 대좌한 채 말이 없던 산그림자가 서서히 물안개를 걷어내면 어느새 부지런한 물총새 한 마리 물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새벽 낚시터의 모습이다. 자연의 모습이다.
밤낚시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모습을 쉽게 떠올릴 것이다. 이런 자연 속에 몰입하기 위해 낚시를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겨울에 눈 덮인 흰 산을 찾는 산꾼들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레저 차원을 벗어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좀 이상스런 눈으로 본다. 속세를 떠난 사람, 또는 기인으로까지 여기기도 한다. 이들과 대화를 깊이 있게 진행해보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보통사람들과는 현저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사람과 자연은 어떤 관계이며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프로메테우스를 숭상하는 사람들
인류가 숲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살다가 자연과 대립각을 세우며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에 와서의 일이다. 이 시기에 와서 인류는 먹을 것을 찾아 떠도는 생활을 멈추고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6천~1만년 년 전의 일이다. 사람들은 문자를 발명하였으며 숲을 베어내고 경작지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문화가 태어났다. 문화라는 말은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한 ‘culture’를 번역한 말로 본래는 ‘경작(경작)’을 뜻하는 말이다.
인류는 점차 경작지를 확대해 가며 문명을 쌓아올렸지만 이는 자연을 약탈한 결과였다. 이 시기 고대인들의 자연관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잘 나타나 있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티탄족으로 그리스어로 그의 이름은 ‘미리 알다’ (먼저 생각하는 사람) 라는 뜻이다. 티탄족이 올림포스 신들과 전쟁을 치를 때 프로메테우스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승리할 줄 미리 알았기 때문에, 동생 에피메테우스(Epimetheus :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와 함께 티탄족 편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두 형제는 대부분의 티탄족 들에게 내려진 징벌을 모면할 수 있었다. 티탄족과의 전쟁이 끝나자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인간을 창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프로메테우스는 대지에서 흙을 조금 떼어내어 물로 반죽하여 인간을 신의 형상과 같이 만들었다.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인간과 그 밖의 동물들에게 그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능력을 주는 일을 위임받았다. 에피메테우스가 이 일을 맡았고, 프로메테우스는 이 일이 다 끝나면 그것을 감독하기로 했다. 에피메테우스는 각기 동물들에게 그들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 한 가지씩을 선물하였다. 그런데 인간의 차례가 오자 에피메테우스는 나누어 줄 선물을 다 써버리고 인간에게는 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당황한 그는 형인 프로메테우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했다. 하지만 인간에게 몰래 불을 선물한 죄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샀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놓았다. 매일 독수리가 와서 그의 간을 쪼아 먹었지만 그의 간은 다시 자라나 독수리에게 영원히 쪼이는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상이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내용이다. 제우스는 자연을 초월한 존재라기보다는 자연의 내부에 존재하는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로 인간에 가까운 신이다. 그리스 세계에서 우주의 질서를 나타내고 자연의 질서를 관장하는 존재이자 자연의 상징인 것이다. 이러한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 준 프로메테우스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볼 때에는 인류의 지혜로운 은인이자 어떠한 고난도 감내하는 영웅으로 화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과 자연을 대립시키고 있는 고대 그리스인의 자연관을 만나게 된다.
불을 선물로 받은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더 월등한 존재가 되었다. 이 불을 사용하여 인간은 무기를 만들어 다른 동물을 정복할 수 있었고 도구를 사용하여 토지를 경작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러 프란시스 베이컨이나 존 로크 등의 철학은 인간으로 하여금 ‘과학기술’이라는 ‘불’로 자연을 철저히 파헤쳐 그 비밀을 알아내도록 하였으며 마침내 자연과 숲을 인간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만 보는 산업사회를 낳게 하였다. 이 무렵 독일의 문호라는 괴테는 격정적인 어조로 제우스를 배격하고 프로메테우스를 찬양하기에 이르렀다.
제우스여, 그대의 하늘을
구름의 너울로 덮어라!
그리고 엉겅퀴의 목을 치는
어린이처럼
참나무나 산정들과 힘을 겨눠라!
그러나 나의 대지여,
그대가 짓지 않은, 나의 집이며,
불길 때문에 그대가
나를 질투하는 나의 화덕을
그대는 나에게 남겨둬야 한다. 나는 태양 아래에서
신들인 그대들조차 가엾은 자를 알지 못한다.
(‘프로메테우스’ 부분 – 괴테)
보전이냐 보존이냐 – 핀쇼와 뮤어
산업혁명을 거치며 발전한 과학기술은 수많은 발명품을 낳으며 숲을 대규모로 파괴하였다. 벌목업자와 광산업자, 석유채굴업자는 떼돈을 벌며 자본을 축적하였으나 숱한 동식물이 멸종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산업사회가 무분별하게 개발을 진행하던 19세기말 미국에서 숲에 대한 반성이 싹트기 시작했으며 보호에 대한 이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두 부류가 미국의 초대 산림국 장관이었던 핀쇼(1865~1946)의 환경보전론(preservation)과 시에라 클럽의 창설자 뮤어(1836~1914)의 환경보존론(conservation)이다. 핀쇼 등 보전론자는 인간이 자연환경으로부터 장기간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 기업에 의한 무한한 수탈로부터 자연환경을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즉 보전론자에 있어서 자연환경은 인간의 이익에 봉사하는 수단으로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반면에 뮤어 등 보존론자는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어떠한 인간 활동도 용납하지 않았다. 보존론자에 있어서 원생자연은 종교적 명상의 원천, 현대 생활의 피난처 그리고 미적 체험의 장소이며 또 그 자신이 내재적 가치를 갖기 때문에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당초 미국의 건국사에 있어서 산림과 원생자연은 극복되어야 할 위협이고 정복되어야 하는 적으로 표현했다. 다시 말해서 원생자연을 정복하면서 비로소 미국은 오늘과 같은 문명과 문화를 쌓아올릴 수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핀쇼의 보전론 역시 진보주의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의 물 부족 해결을 위한 헷츠헷치 계곡의 댐 건설을 두고 핀쇼와 뮤어의 입장이 확연히 다름을 보여주었다. 뮤어는 댐 건설을 반대했지만 핀쇼는 공리주의적 입장을 취하며 찬성한 것이다. 핀쇼와 뮤어는 특히 원생자연에 대한 관계에서 전적으로 대립되는 위치에 있었으며 핀쇼는 인간이 이용할 수 없는 이론이나 ‘성역’으로서의 원생자연의 보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인간중심주의의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원생자연의 개발이 미국 전토에서 현저하게 확대되는 가운데서 더 이상의 원생자연을 파괴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원생자연 그 자체를 성역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뮤어의 자연보존론이 널리 파급되었다.
환경파괴에 의존하는 국가와 자본
이러한 환경보호운동의 선구적인 역할로 오늘 미국에는 미국 최대의 환경단체인 시에라 클럽(Sierra Club)을 비롯해 오두본소사이어티(Audubon Society), 전국조류연합(NAS), 전국야생보호연합(NWF), 환경보호기금(EDF), 야생협회(WS), 자연보존회(NC) 등 전문적인 단체들이 각처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회원수는 모두 합해서 800만 명쯤 된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 인구의 4%에 불과한 미국의 연간 CO2 배출량은 56억t에 이른다. 13억 인구대국인 중국의 2배, 전세계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지구 온난화를 주도하고 있다. 또한 미국이 지구촌 도처에서 일으키고 있는 전쟁은 최악의 환경파괴를 일으키고 있다. 이는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대량으로 생산을 하고 대량으로 소비하는 자본주의의 체제적 한계 때문이다. 대량생산을 위해 자연은 대규모로 파괴되고 대량소비는 대량의 폐기물을 낳고 있다.
2차대전을 겪고 1960년대에 들어서 머레이 북친이라는 사람이 전 세계를 들여다 보고 “앞으로 인류사의 과제는 환경이다.”라고 말했다. 머레이 북친이 “환경이 중요하다” 고 일갈한 이후 10년이 못 가서 자본가들은 자신들에 대한 반대가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시작한 게 1972년 스톡홀름 환경회의이다. 20년 후인 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에서는 ‘서스테이너블 디벨로프먼트(Sustainable Development:지속가능한 개발)’이 주요한 테마로 등장하였는데 이것은 자본주의의 자기합리화일 뿐 오늘도 아마존강의 원생자연은 맥도널드 햄버거를 위해 파괴되고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에게는 ‘자연보호’라는 개념조차 부재한 상태에서 단기간의 경제 성장 기간에 비례하는 단기간 동안의 대규모 자연파괴가 이루어졌다. 국가 조직과 결탁한 건설자본은 서해안의 리아스식 해안을 자로 댄듯한 직선으로 만들어버렸다. 강 하구마다 둑을 쌓아 다양한 생물 종이 살아가는 하구역 갯벌을 없애버렸다. 마지막 남은 만경강과 동진강을 통째로 틀어막는 사업이 새만금간척사업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끝없이 공사판을 벌여야 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토건국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토건국가를 지탱하는 구조는 끊임없이 불필요한 토건사업, 심지어는 만들수록 해악만 끼치는 개발사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새만금과 천성산이 그렇고 산허리를 자르고 들판을 가로질러 도로를 내고, 산자락 허물어 골프장을 만들고, 20년만 넘으면 아파트 단지 허물어 새로 짓는 재개발사업이 그렇다. 이를 주도하는 건설자본을 사법부조차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새만금에서도 그랬고 천성산에서도 그랬다.
이러한 자본의 환경 파괴는 자연에 의지해 사는 사회적 약자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다. 새만금사업이 이의 전형이다. 지난 4월의 새만금방조제 끝말막이 공사는 그 안에 1,600여 척의 어선을 가둔 채 이루어졌다. 또한 갯벌 파괴로 인해 전북의 수산물 생산량은 예전의 1/3로 줄어들었다. 어민들을 도시 빈민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자연을 하나로 보는 생태주의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결과는 결국 자연과 인간을 대립하게 만들었고 오늘에 와서 우주선 지구호의 파멸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생태주의에서는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본다. 놀랄 정도로 사람과 자연을 구별하지 않는다. 우리가 딛고 사는 땅을 ‘어머니’라고 표현한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도 한울님으로 보았으며 그들이 죽을 때 사람도 살 수 없음을 가르쳤다.
대량 소비를 위해 숲을 파괴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미래세대를 전혀 생각지 않는 세대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나 자신도 자연의 일부라고 자각하는 생태주의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일찍부터 그런 생활을 해왔었다. 조선 중기 성종 임금의 형이었던 월산대군의 다음 시조에서 이를 읽을 수 있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허정균
(이 글은 ‘일요낚시’ 6월호에 실렸습니다.)
2006·06·16 0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