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백지화 선언’ 세 번 받아낸 안면도

 

자료출처/www.goanmyon.co.kr

핵폐기장이 들어설 위도에 ‘장관인 내가 청와대 별장을 짓자고 할 정도로 안전하다’고 주장했던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은 2003년 12월 10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해 “정부가 위도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 추진과정에서 부안주민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문제점과 함께, 신청당시 유치 의사가 있었던 여러 지자체가 부지선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과 지역주민에게 혼란과 불편을 끼쳐드린 점을 먼저 사과드린다”면서 부안주민에게 공개사과했다. 당시 영광, 고창에서는 부안보다 일찍 반핵운동이 점화되어 있었음을 감안하면 참으로 교언영색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부안을 찍어놓고 영광, 고창은 들러리로 내세웠다는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지금도 군산, 영덕, 경주, 포항의 지자체장이 유치신청을 해놓고 주민들끼리 격렬한 갈등을 겪고 있는데 그동안 핵추진세력의 행태로 보아 세 곳은 들러리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포커에서 말하는 페이스 메이커인 것이다.

윤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다른 지역에서도 보완된 절차에 따라 가급적 금년 중 공고를 통해 유치 신청을 추가로 받기로 했다”고 밝히고” 신규 유치공모안이 공고된 이후 절차와 관련, “유치신청은 충분한 논의 및 의견수렴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충분한 기간을 부여하게 될 것”이라며 “6~9개월 정도를 검토중”이라고 밝혀 부안 주민투표를 내년 4월 총선이후로 하자는 종전의 정부방침을 그대로 되풀이 했다.

이 일을 두고 중안 언론은 하나같이 “부안 핵폐기장 원점 재검토”라는 제목으로 1면 머릿기사로 다루었다. 이에 부안의 지역 인터넷신문 <부안21>은 “언론은 한수원 대변지인가”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중앙언론을 비판하였다.

12월 10일 오전 11시 윤진식 산자부 장관은 과천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가급적 올해 안으로 신규유치 공모안을 내고, 6-9개월 동안 충분한 논의 및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주민투표를 하게 될 것”이라면서 “다른 지역이 신청해 부안과 복수신청할 경우 심사 기준에 부안에 대한 우선적 배려 요소를 도입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언론은 한결같이 ‘원점에서 재검토’ 한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달라진 게 뭔가. 종전의 정부 방침은 “주민투표를 하자”는 것이었다. 부안 주민들이 올 안에 하자니까 “내년 총선 후에 하자”며 알미늄 방패를 시멘트 바닥에 갈아 날을 세워 부안 주민들의 머리를 사정없이 찍은 바 있다. 윤진식 장관의 기자회견 내용의 골자는 “논의를 거쳐 6~9개월 후 주민투표를 하자”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신청하면 받아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안에 우선순위를 준다고 했다.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핵에너지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부안 주민들의 외침에 아랑곳없이 기존의 방식으로 핵쓰레기 처분 장소를 정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김종규는 그 날 서울 방배동에서 공작을 펼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한결같이 ‘원점에서 재검토’ 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초거대 공룡조직, 대한민국 최대의 발주기관, 대대로 정치권의 돈줄이었던 한국전력공사, 그러한 한전이 100% 출자한 자회사인 (주)한국수력원자력이 하는 일을 감시 비판해야 할 언론이 이들을 오히려 대변하고 있다.(중략)

먼저 주민투표를 하자고 제안했던 정부와 김종규 군수는 홍보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에 대한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이날 윤 산자부 장관의 발표내용이었던 것이다.

산자부 장관의 발표가 종전의 정부방침과 달라진 것이 없이 부안핵폐기장을 강행하려는 의지를 보인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16일 주민투표와 관련해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제시한 주민투표 3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민투표는 유치를 희망하는 지역들이 가급적 동시에 치를 수 있도록 한다.
둘째, 정부가 직접 협상대상자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므로 지역의 찬반 양론 당사자가 나서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정치적 이유로 총선 이전에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이를 고려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은 2003년 12월 10일 과천청사 산자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부지선정 과정에서 부안 군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결과적으로 국민과 지역주민에게 불편을 끼쳤다”며 사과했다.

찬성측은 발빠르게 주민투표에 대비한 조직가동에 들어갔다. 고건 총리(‘도민투표’ 발언), 강현욱 도지사(‘주민투표에 최선’ 발언)등의 엄호 아래 부안에서는 ‘부안사랑나눔회’ ‘부안지역발전협의회’ ‘부안경제살리기협회’ ‘서울향우모임’ 등의 조직이 활발하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부안의 반핵 투쟁은 주민들끼리의 싸움으로 양상을 달리하며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어 추진세력의 주민들에 대한 회유, 매수공작 등이 잇따를 것으로 예측되었다. 실제로 여권사진을 찍으려는 부안 주민들이 사진관에 많게는 하루 20여명이나 되었고 매일 관광버스가 대전 원자력연구소로 출발하였다. 12년 전인 1991년 안면도에서의 상황이 부안에서 똑같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에 필자는 12년 전에 있었던 ‘안면도 반행투쟁’을 정리하여 <부안21>에 실었다.

안면도, 7일간의 전쟁

1989년 3월 동력자원부는 경북 영덕군 남정면과 영일군 송나면, 그리고 울진군 기성면 등 동해안 3개 지역을 핵폐기장 후보지로 지정하였다. 이에 1순위인 영덕을 중심으로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강력히 벌인 결과 국내 반핵운동 최초의 승리를 가져왔다.

그로부터 1년 8개월 후인 1990년 11월 <한겨레신문>은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들어설 서해과학연구단지에 핵폐기물 영구처분장이 들어선다고 보도하였다. 과학기술처는 95년 12월말까지 짓기로 한 중ㆍ저준위 핵폐기물 영구처분장의 건설장소를 안면도로 결정하고 충청남도와 협의를 거쳐 현지에서 1백만∼1백50만평의 부지 매입도 거의 끝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가 나가자 공해추방운동연합 등 전국의 20개 반핵ㆍ환경운동단체로 구성된 전국핵발전소추방운동본부(공동의장 최열ㆍ전홍준ㆍ최성묵)는 즉각 성명을 내고 정부에 안면도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건설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으며 “현지 주민들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은 무효”라며 “핵폐기물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핵발전소를 없애나가는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전, 충남권 주민들도 “처분장이 건립될 경우 24㎞의 해안선을 따라 수려한 경관을 갖춘 안면도는 당장 ‘죽음의 섬’으로 전락, 생태계 피괴는 물론 주민들의 생존에도 큰 지장을 받게 된다”며 이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심대평 충남도지사도 “충남도는 안면도 폐기물 처분장 설치계획과 관련, 과기처와 협의한 사실이 전혀 없으며 안면도지역은 서해안개발 사업의 하나로 국제관광 휴양단지로 조성중인 만큼 충남도는 처분장설치 계획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인구 3만여명의 안면도 주민들은 ‘안면도 핵폐기물 처분장설치 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이 계획의 철회를 위한 투쟁에 나섰다. 안면도 내의 16개 초중고등학교가 등교거부에 들어갔으며 매일 규탄집회를 열고 정부가 처리장설치를 강행한다면 “육지와 안면도를 잇는 연륙교를 폭파해 이곳의 발전이 더디더라도 공해 없는 섬에 살겠다”고 선언했다. 안면읍 이장단 28과 고남면 이장단 14명이 사표를 냈다. 주민 5천여이 모인 궐기대회가 열렸다.

그러나 정부는 빗발치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면도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건설계획을 당초대로 강행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정근모 과기처장관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핵폐기물 저장관리소 구실을 할 원자력 제2연구소를 95년까지 충남 태안군 안면도 일대에 관련연구소와 같이 1백50만평 규모로 완공하기로 했으며 세부계획은 건설부 등 관련부처와 협의중”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정부의 밀어붙이기는 섬 주민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연륙교가 봉쇄되고 예비군 무기고와 지서가 불에 탔다. 당시의 상황을 신문을 보자.

충남 태안군 안면도 핵 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 1만여명은 8일 4일째 격렬시위를 벌였으며 시위대중 일부는 안면지서와 예비군 무기고에 불을 질러 전소시키고 경찰과 안면읍 사무소를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밤 늦게까지 계속, 치안업무와 행정업무를 마비시켰다. 지서와 예비군무기고에 있던 총기와 화약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 미리 군부대로 옮겨져 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오후 5시50분쯤 전투경찰 10개 중대 1천1백여명을 안면읍에 투입, 진압에 나섰으나 시위대는 곳곳에서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과격 시위를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과 경찰관 수십명이 부상했다. 시위대들은 이날 밤 9시쯤 정근모 과기처 장관이 TV를 통해 주민들이 원하지 않을 경우 서해과학연구단지 계획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흩어지기 시작, 11시쯤 대부분 귀가했다. 이에 앞서 시위대는 육지와 연결되는 안면교에 휘발유 드럼통과 화염병을 쌓아 교통을 차단했고 안면읍 승언리 1구 안면의용소방대에 난입,차고의 대형철제셔터 2개를 부수고 차고에 있던 소방차 1대와 인근 읍사무소에 세워져있던 쓰레기차 1대를 탈취했다. 또 정보수집활동을 벌이던 사복경찰관 2명을 집단폭행해 중태에 빠뜨렸으며 현장을 살피던 군청직원 5명을 한때 감금키도 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핵폐기물 처리장설치 반대투쟁위원회 위원장 최석칠씨(38) 등 주민대표 5명을 연행했다.

주민들은 주로 운동권 노래인 ‘반전 반핵가’ ‘광주 출정가’ ‘투사의 노래’ 등을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였으며,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의 옷에 페인트 등으로 ‘안면공화국’이라고 쓰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정부가 지금까지 안면도의 개발을 미루고 지원도 하지 않더니 핵폐기장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이제 필요없다”며 “평화롭고 살기좋은 안면도를 위해서는 독립해야 한다”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시위에는 국민학교 어린이에서부터 노인들까지 참가하고 있다.

마침내 정부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조성키로 했던 서해과학연구단지계획을 주민들이 원하지 않을 경우 추진하지 않기로 발표를 했다. 정근모 과기처 장관은 서해과학단지 건설과 관련한 발표문에서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설치계획은 처음부터 없었으며 서해과학단지 건설에 대해서도 주민들의 오해가 많으므로 이런 오해가 풀리지 않는 한 안면도에 어떠한 신규시설도 설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불과 이틀 전의 강행 표명에서 완전히 물러선 것이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9일 오후 핵폐기물처리장 설치계획을 둘러싼 안면도 주민들의 반대시위와 관련,그 책임을 물어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을 경질하기에 이르렀다.

안면도 사태 일지

▲11월3일=’안면도 핵폐기물처분장 설치계획’ 보도
▲4일=안면 라이온스회원 등 22개 단체 대표 2백여명 집회,대책위 결성
▲5일=△대책위 결의로 반대특위 결성(위원장 전충) △안면읍 이장단 28명 사표제출
▲6일=△과기처장관 「중간저장소시설 강력추진」 발표 △고남면 이장단 14명 사표제출
▲7일=△주민대표 7명,과기처장관 및 충남지사 방문 △투위위원장 최석칠씨로 교체
▲8일=△주민 1만여명 버스터미널에 집결,연륙교까지 7㎞시위,경찰과 대치 △연륙교통체 외부차량교통 두절 △읍사무소 점거 △공무원린치 △승용차방화 지서파괴 △충남지사 계획취소용의 담화문 헬기살포 △과기처장관 계획백지화 발표
▲9일=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을 경질

평화를 되찾은 듯한 안면도

‘안면도 7일간의 전쟁’은 11월 8일 과기처장관의 계획백지화 발표로 평온을 되찾은 듯 했다. 10일 안면도의 표정을 전하는 한 일간지의 보도를 보자.

“9일 밤까지도 정부의 핵폐기물 처리장 계획 백지화 발표를 믿지 못하는 일부 주민들이 읍내를 배회하던 안면도는 새벽 눈이 내린 10일 날씨가 활짝 개면서 평온을 되찾았다. 난생 처음인 시위와 최루탄 세례, 교통두절과 생필품난을 겪고 난뒤 9일 밤 거친 바다바람과 급강하한 기온 때문에 잠까지 설친 주민들은 핵겨울을 지내고 난 것처럼 안도하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은 거리 곳곳에 부적처럼 걸려있던 현수막과 대자보를 떼어내고 밤새 추위에 시달린 전경들에게 더운 물을 권했다. 눈 때문에 등교길이 걱정이 된 아버지들은 트럭과 경운기에 자녀들을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고 그동안의 결석을 걱정하는 평범한 가장으로 돌아왔다. 어른들을 흉내내 마스크를 하고 고사리 손에 죽봉을 들었던 어린 학생들은 첫눈 내린 학교길이 즐겁기만 한듯 깔깔거렸다.”

이틀간 치안과 행정이 마비됐던 안면도는 10일 정상을 되찾아 진압경찰이 모두 철수했으며 경찰은 연행된 주민 45명중 지서방화 혐의자와 폭력가담자 8명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나머지는 모두 훈방했다.

한편 안면도 일대 28개 이장과 주민 2만6천여명으로부터 대표권을 위임받은 대책위는 10일 “이번 일은 애초부터 주민을 속인 정부 당국의 잘못된 발상에서 연유됐기 때문에 반드시 백지화에 대한 문서화가 있어야 한다”며 안면도 핵폐기물처리장 건설계획을 포함한 서해안 연구단지조성 계획백지화를 문서화 해줄 것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김진현 신임 과기처 장관에게 우편으로 발송했다.

김진현 과기처장관은 “어떻게 국민적 합의를 이루느냐가 관건이며 이번 사태는 과정상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하고 “모든 일을 공개적 합의에 의해 이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11월 16일 심대평 충남도지사는 “핵폐기물 연구를 위해 태안군 안면도 서해과학연구단지내에 설치하려던 처리장은 백지화됐다”고 공식발표했다.

고남면에 파고든 두더지 작전

그러나 이로써 안면도 주민들이 예전의 평화를 되찾은 것이 아니었다. 핵추진 측의 두더지 같은 작전은 집요하게 계속됐다. 이들은 핵폐기장 부지가 있던 고남면으로 파고들었다. 반대 투쟁에 나섰던 사람들이 하나 둘 찬성 측으로 넘어갔다. 당시 고남면 투쟁위원회를 이끌던 최아무개씨를 주민들로부터 갈라놓으려는 공작이 집요했다. “최씨도 이미 찬성 서명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 고남면 투쟁위원회와 안면읍투쟁위원회를 갈라놓으려는 이러한 ‘반간계’였다고 최씨는 술회하고 있다.

그동안 성금을 모아준 이장단에 압력이 가해져 자금 조달이 어려워 플래카드 하나 달 돈도 없을 때도 있었다. 이어 회유, 매수 공작의 손길이 뻗쳐왔다. 원자력연구소의 박사라는 사람이 최씨를 찾아와 “당신만 못본 채 해라, 끼어들지 않으면 충분히 보상하겠다.”라며 접근해온 것이다.

어느날 투쟁위원회에서 한 서류를 입수했다. 그 서류에는 원자력연구소가 비밀리에 주민들을 포섭해 핵폐기장을 유치하려는 공작의 전모가 담겨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앞장서 유치선동자의 집으로 몰려가 항의하며 철회할 것을 요구하자 경찰은 이들 10여명을 연행하여 집시법 및 폭력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구속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주동자를 불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불지 않았다. 담당 검사도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한다. 그만큼 투쟁위는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었다. 투쟁위가 유언비어라고 규정하면 그렇게 믿었고 아니라면 또 그렇게 믿고 따랐다고 한다.

계속되는 “백지화” 믿을 수 없는 정부

정부는 91년 6월 7일 안면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기로 한 방침을 또 다시 철회한다고 하였다. 그 이전에 백지화 한다고 한 말은 거짓이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7일 정부 제1 종합청사 부총리실에서 2백27차 원자력위원회를 열고 제2 원자력연구소를 안면도에 건설하기로한 방침을 철회하고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 부지확보 방안을 논의했다.위원회는 우선 금년말까지 각계각층의 전문가 참여, 원자력법 등 기술기준에 적합한 다수의 방사성 폐기물처분장 대상지역을 선정키로 하고 일단 선정된 대상지역에 각종 지역혜택사업 등의 ‘지역지원방안’을 사전에 제시해 자발적으로 유치하겠다는 지역이 나오도록 유도키로 했다. 자발적인 유치지역이 없을 경우에는 국민의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친 후 정부가 ‘후보부지’를 최종선정해 추진할 방침이다.(<한국일보>1991년 6월 8일자)

이러한 정부의 방침에 따라 원자력연구소는 안면도의 처분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했지만, ‘안면도가 원자력연구소가 있는 대덕연구단지와 가깝고 핵폐기물의 해상 수송이 유리할 뿐 아니라 핵폐기물을 해저동굴 속에 영구처분할 수 있도록 대륙붕이 잘 발달돼 있다’며 안면도 주민에 대한 회유·설득작전을 집요하게 펼쳤다.

이와 더불어 전국 곳곳을 다니며 ‘방사성폐기물에 관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하고 안전성을 홍보하였다. 강릉에서 개최하려 했던 토론회가 고성에서 온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고 대전에서 열린 공개토론회 역시 안면도 주민의 반발로 분위기가 격앙되는 등 진실을 은폐한 채 눈가림으로 일관하려는 이러한 홍보전은 오히려 국민의 저항만 불러왔다.

또 다시 봉기한 안면도 주민들

거듭된 백지화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계속되는 공작에 마침내 안면도 주민들은 또다시 들고 일어섰다. 안면읍과 고남면 주민 3천여명은 10월 7일 고남우체국앞 광장에 모여 ‘핵폐기장설치 반대 주민궐기대회’를 갖고 안면도 핵폐기물처리장 설치계획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주민들은 “정부가 표면상으로는 안면도에 대한 핵폐기물 처리장 설치계획을 백지화 했다고 발표했으나 세미나 및 공개토론회 등을 통해 주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와중에서 고남면 주민 일부가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하였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큰 진통을 겪었던 안면도를 비롯, 동해안 및 남해안 지역 등 모두 5곳의 주민 및 개인들이 신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환경센터 관계자는 ‘안면도 이외의 지역에서 신청한 경우는 지주가 대부분이어서 아직 지역주민들과의 협조관계로 그 구체적 지명은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하였다. 이러한 밀실행정은 지금의 부안사태에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이를 보도한 <한겨레신문> 10월 26일자 기사를 보자.

안면도 지역주민 78명의 핵폐기물처분장 유치 신청으로 안면도 전체는 물론 이 일대 해안지역 주민과의 마찰이 표면화되고 있는 가운데 과연 이런 정부의 처분장 모집 방식이 큰 충돌없이 핵폐기물처분장 건설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처분장을 유치한 지역주민에게 각종 숙원사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의 제정을 계속 미루고 있어, 처분장이 확정된 뒤에도 계속 지역주민과 마찰을 빚을 소지가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과기처와 원자력연구소가 연말까지 확정키로 한 핵폐기물 처분장 터를 10월초부터 11월5일까지 모집하면서 25일 현재까지 유치를 신청했거나 절차를 밟고 있는 지역은 안면도 고남면을 비롯 동·서해안 지역에 모두 5곳이다. 그러나 이런 모집방식이 가장 큰 문제점은 현재 안면도에서도 표면화되고 있듯이 유치를 신청해 1백50만평의 처분장이 들어설 땅의 지주와 주민들은 정부에 땅을 팔고 이주보상비까지 받아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 있지만 핵폐기물처분장의 잠재적 위험권에 드는 생활터전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주변지역 다수 주민들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돼 지역주민들간의 불신감만 증폭시키고 있는 점이다. 과기처는 이런 모집방식의 부작용을 미리 알고 있었으나 워낙 핵폐기물에 대한 주민의 저항이 거세, 추진 명분을 얻기 위해 충남대·전북대·관동대·계명대·서울대 등 5개 대학에 후보지 선정 용역을 맡겨 그동안 주민들의 유치 신청을 유도해 왔다. 특히 이런 물밑 교섭의 집중적 대상지역이었던 안면도에서는 지난 7일 주민들이 규탄대회를 열어 용역을 맡은 충남대 교수들의 화형식을 치렀을 만큼 감정이 악화됐고 최근 고남면 주민 78명이 유치신청을 내자 배반감과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커지고 있다. 안면도 주민들도 “충남대 교수들이 안면도의 처분장 건설이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진 것처럼 소문을 퍼뜨리고 주민들에게 신청동의서에 빨리 서명해 땅을 팔고 떠나는 것이 좋다고 설득하는 바람에 순박한 일부 주민들이 넘어간 것”이라며 분개하고 있다. 안면도 2만여 주민들은 군민전체가 처분장 유치 반대서명에 들어가는 한편 근처의 태안·서산·홍성·대천군 주민들도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어 핵폐기장 유치에 반대하는 고남면 주민대표 7명이 10월 28일 과기처를 방문해 처분장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 서명 명부와 함께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낸 주민 가운데 41명이 이를 철회한다고 서명한 서류도 함께 전달했다.

또한 이들은 29일에는 원자력환경관리센터 등 관련기관을 방문해 유치반대의 뜻을 전달하는 한편 과학기술처가 지난 8월 안면도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계획을 철회한다고 주민들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해온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원자력위원회(위원장 최각규부총리)는 지난 6월7일 오전 제1정부종합청사 부총리실에서 최 부총리, 김진현 과기처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제226차 원자력회의에서 의결된 원자력 제2연구소 건설은 안면도사태로 인하여 계획대로의 추진이 불가능함에 따라 의결 내용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주민대표들은 원자력환경관리센터, 충남대, 충남도청을 차례로 방문해 “이미 정부가 안면도의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 계획을 철회한 바 있으니, 이에 대한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일부 주민을 현혹시켜 다시 처분장 건설을 추진해 전체 주민을 동요시키지 말아달라”고 촉구했다.

이처럼 안면도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자 김진현 과기처 장관은 “안면도를 지원 신청지역 중점검토 대상지역에서 제외시키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그러나 “대다수 주민이 합의해 오면 다시 검토하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거액의 보상으로 유치찬성 서명 받아내

이러한 고남면 주민 일부의 유치신청에 거액의 현금 보상과 시가 20배에 달하는 토지 매입 등이 미끼로 작용했음이 밝혀졌다. 다음 <한겨레신문> 91년 11월 2일자 기사를 보자.

“정부당국이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로 유치 신청한 충남 태안군 고남면 일대 안면도 주민에게 이주비 명목으로 1가구당 2억원씩을 제공하겠다는 등 엄청난 보상책을 미리 제시한 것으로 드러나 정부가 거액을 미끼로 주민들을 현혹시킬 뿐 아니라 주민간의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특히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 선정에 있어 주민들의 자발성을 원칙으로해 공작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김진현 과기처장관의 공식천명에 어긋나는 것으로 정부정책에 대한 주민의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1일 고남면 핵폐기물처분장 설치 반대 투쟁위원회(위원장 김경호·39)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0월 중순 김영석(36·농업·고남면 고남리 5구)씨 등 핵폐기물 처분장 유치 신청자들에게 한 가구당 이주비로 2억원을 제공하고 토지는 평당 30만원, 임대지는 15만원, 대지는 8백만원씩을 보상하겠다는 내용의 보상책을 충남대 교수들을 통해 제시하고 유치신청에 서명해줄 것으로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김씨 등 유치신청 서명자 7명이 지난 31일 밤 투쟁위에 투쟁기금으로 60만원을 기탁하면서 양심선언을 해 “엄청난 보상책 제시에 현혹돼 유치신청에 서명했으나 떳떳치 못한 행동으로 생각돼 이를 뉘우친다”고 밝힘에 따라 드러났다. 김씨 등은 또 “유치신청서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토지 등 물건보상때 제외되는 등 불이익 처분을 받게 된다고 해 앞뒤 가리지 않고 도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김씨 등은 지난 10월28일 유치신청 11일만에 이를 철회했다. 정부가 제시한 보상액수는 고남면 일대 땅값이 평균 1만5천원 안팎이고 임대지는 7천원 수준인 것을 감안할 때 현 시가의 20배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라는 것이 부동산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내고장이 후보지 아닐까…” 전국이 긴장

이처럼 안면도가 주 공격대상인 가운데 41곳에서 유치신청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음은 <조선일보> 11월 6일자 기사이다.

“과기처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를 자원한 지역은 마감일인 5일 현재 안면도를 포함하여 41개 지역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우편접수는 포함되지 않았다. 지역별로는 경북과 전남이 10개 지역이고 강원(5개 지역) 경남(5) 충남(5) 경기­충북­전북이 각각 2개 지역이다.”

이 같은 밀실행정에 전국이 바짝 긴장한 가운데 “혹시 내 고장이 핵폐기장 신청지 아닐까…”하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공해추방운동연합·안면도 핵폐기물처분장 설치반대투쟁위원회 등 전국 23개 지역주민 및 환경단체들이 서울 중구 명동 향린교회에서 ‘전국 핵발전소·핵폐기장 반대 대책위원회’ 결성대회를 갖고 당국의 핵에너지 정책 전면수정과 핵발전소·핵폐기장 건설계획 폐기를 위한 조직적인 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여나가기로 결의했다. 안면도 핵폐기장 건설 반대 주민시위 한 돌을 맞아 열린 이날 대회에서 대책위는 정부에 대해 2030년까지 핵발전소 50기를 추가건설키로 한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11월 8일에는 전북 고창군 상하면 주민 2천5백여명은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 채 용정리 한전소유 임야에서 핵폐기물처분장 건설반대결의 대회를 갖고 4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으며, 전남도내 27개 시·군의회 의장단 27명이 전남지역 바닷가에 원자력발전소나 핵폐기물처분장을 설치하려는 계획을 전면 중단해줄 것을 촉구하고 핵발전소와 핵폐기물처분장 설치반대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러한 전국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김진현 과기처장관은 11월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5일 접수 마감한 관리부지 신청지역은 44곳이며 이중 소유자 확인, 기술적 타당성 검토 등을 통해 7개 지역을 선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이중에는 주민간 불화가 계속되고 있는 안면도와 도서, 폐광은 제외됐다”고 밝혔다. 또한 1차 선정된 7개 지역은 강원 1개, 충남 1개, 경북 2개, 경남 1개, 전남 2개 등이며, 과기처는 “7개 지역에 대해 지난주부터 현지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탈락된 37개 지역에는 탈락사실을 통보했다”고 했다.

전국적 저항으로 후보지 발표회 무산

1991년 11월 30일 오전10시 서울프레스센터에서는 서울대 ‘인구 및 발전문제 연구소’ 주최로 ‘방사성페기물 처분장 부지선정 및 지역지원에 관한 연구 발표회’가 열리고 여기에서 핵폐기장 후보지로 선정된 곳이 발표될 예정이었다. 이날 행사는 원자력연구소로부터 핵폐기물 처분장 터 선정용역을 의뢰받아 연구를 수행해 온 서울대 인구 및 발전문제 연구소(총괄 책임자 사회학과 김경동교수)가 지난 4월부터 작업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발표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사회를 맡은 김경동교수가 인사말을 시작하자마자 방청석에 자리한 50여명의 안면도 주민·울진 원전 주변지역 주민·공해추방운동연합회원 등이 “핵폐기장 건설 결사반대” “어용교수 물러가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발표회 진행을 저지했다. 이들 주민은 ‘전국핵발전소·핵폐기장 반대 대책위원회’ 이름으로 낸 성명서에서 “핵폐기장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주장은 가장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의 의견인데도 이번 연구결과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편파적인 찬핵의 논리만을 내세우고 있는 오늘의 발표회는 취소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날 발표회는 무산됐다.

또 다시 후보지로… 안면도 주민 3차 봉기

이후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 후보지는 강원도 고성·양양, 경북·울진·영일, 전남 장흥, 충남 태안군 안면도 등 6곳으로 압축돼 연말까지 한 곳이 최종적으로 확정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다. 특히 과기처 관계자는 “안면도 고남면 주민 1백28명이 2차로 지난 12월초에 또다시 자원신청을 했다. 매우 고무적인 분위기가 안면도 주민들 사이에서 조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발표가 있자 충남 태안군 고남면 등 안면도 주민들은 이날 “정부에 또 다시 속았다”며 즉각 반박성명을 발표하는 등 강한 반발을 보였다. 나머지 지역에서도 강도 높은 시위가 잇따랐음은 물론이다.

해를 또다시 넘긴 1992년 1월 7일 안면읍·고남면 일대 주민 7천여명은 7일 정오 안면읍 승언리 시외버스터미널 광장에서 핵폐기물처분장 건설을 반대하는 대규모 주민집회를 열고 ‘안면도 핵폐기물처분장 설치 음모 분쇄 총궐기대회’를 가졌다.

이후 3월 총선에서 울진, 태안, 고성, 양양, 영일, 장흥 등의 핵페기장 후보지에서 핵폐기장 ‘저지’ 공약을 내세운 후보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핵폐기장이 국민심판을 받은 것이다.

이로써 안면도에서는 핵이 완전히 추방되었을까. 아니다. 5개월 후인 5월 19일의 한 언론보도를 보면 “핵폐기물처분장 설치사업을 관장하고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설 원자력환경관리센터(소장 신재인)가 유력한 처분장 후보지인 안면도 지역에서 유치찬성자 확대를 꾀하기 위해 마을별 조직책을 지정하고 이들에게 ‘담당세대 수’를 할당하는 등 은밀히 유치작업을 추진해온 사실이 18일 밝혀졌다.”고 전하고 있다.

6월 8일에는 충남도의회(의장 이대희)에서 본회의를 열어 한국원자력 연구소쪽의 안면도 핵폐기물 처분장 설치재추진작업과 관련해 정부쪽에 안면도를 후보지에서 제외하기로 한 제227차 원자력위원회 의결사항을 반드시 이행하라는 내용의 건의문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이를 과학기술처에 보내기도 하였다.

이로부터 6개월 후인 1993년 1월 19일 고남면에 사는 김아무개씨는 서울 마포 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원자력연구소가 일부 주민을 매수하는 등의 방법으로 처분장 유치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는 양심선언을 하고 나섰다.

충남 태안군 고남면에 사는 김아무개(30)씨는 18일 서울 마포 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해 2월15일께 원자력연구소쪽이 소개한 ㅎ산업 사장 박아무개씨로부터 핵폐기물 처분장 유치 추진에 협조해달라는 명목으로 5백만원을 받았으며, 그뒤 5월22일 연구소 정아무개 박사의 부탁으로 충남도청 기자실에서 “현지 주민 3백여 세대가 폐기장 유치를 바라고 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지금까지 원자력연구소쪽으로부터 10차례에 걸쳐 7백80만원을 받았으며, 주민 강아무개씨가 2백50만원을 받는 등 주민 여러 명이 거액의 금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씨에 따르면 지난 91년 10월께 자신과 강아무개씨 등 2명이 고남면 구매·젓개부락 주민 37명을 대표해 원자력연구소에 핵폐기장 유치신청서를 접수시킨 뒤 지난해 3월 연구소의 김아무개 기획조정부장 등 4명이 태안에 내려와 핵폐기장 유치신청에 필요한 6백세대분의 서명과 도장을 받기 위한 추진위 구성을 제의해 거절했으나, 연구소쪽은 이와 별도로 이미 2월말께 이장인 강아무개씨 등 8명을 대전시내 여관에서 만나 점조직 방식으로 ‘유치 추진위’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당시 유치추진위원들이 연구소쪽으로부터 월 90만원 이상의 직장 보장과 자금지원 등을 약속받았고, 위원장격인 강아무개씨는 주택과 평생직장 및 자녀교육비 등을 보장받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유치추진위원들이 그뒤 주민들의 도장을 이용해 임의로 신청서를 작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3백여 세대가 핵폐기장 유치에 찬성한 것처럼 내세우고 있으나 이는 주민들의 의사와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 1993년 1월 19일자)

경제파탄 위기 몰린 부안에 파고들 ‘유치찬성 공작’

국내 전기 공급을 완전 독점하고 있는 핵추진세력의 공격은 이처럼 집요하다. 이미 우리나라 전 해안을 쑤셔보았던 이들이 모처럼 잡은 부안에서의 기회를 놓치려하지 않고 총력을 기울여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이들 거대 공룡조직을 대통령마저 뒤에서 적극 밀고 있다. 안면도에서 보았듯이 이들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경제적으로 파탄 직전에 와있는 부안주민들 사이로 파고들어 ‘유치찬성 공작’을 벌일 것이다.

/허정균

2005·09·27 2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