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는 분청사기로 이어지고

우동리 분청사기 가마터

우동리의 조선 초기 분청사기 요지군은 현재 감불과 신리 마을 주위에 있어 『세종실록』 「지리지」 전라도 부안군 토산조의 ‘자기소일재현남감불리품중(磁器所一在縣南甘佛里品中)’ 내용에 있는 자기소 중품 감불(磁器所 中品 甘佛)이라는 주장이 있다. 전기(前記)한 유천리요지 자판을 소장하게 된 것과 같은 경위로 우동리에서 수습된 것으로 알려진 분청사기 파편이 이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그 생산품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우동리 요지에서는 대호. 편병(大壺. 扁甁) 등 다양한 기종의 분청사기가 만들어졌다. 문양은 상감이나 인화기법이 주로 사용되어 초기 분청사기의 특징이 두드러지며, 문양 종류는 어문. 모란문. 연화문. 우점문(魚紋.牧丹紋.蓮花紋.雨點紋) 등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어문이나 연화문은 흑 · 백 선상감(線象嵌)으로, 대호 등의 모란문은 백면상감(白面象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태토가 잡물이 없이 치밀하며 유색이 좋고 문양이 정성스럽게 시문되었으면서도 소재나 시문기법이 한정되어 있어 우동리요만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부안감교리분청가마터

• 소재지 :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 시 대 : 조선시대 초기

개암사입구 개암저수지 제방건너 남쪽 산기슭에 있다. 조선초기의 분청자를 만들던 가마터로서 동시대의 다른 가마터와 거의 비슷한 수법(회청색분장(灰靑色粉粧), 선각문(線刻紋), 인문박지(印文剝地)의 자기편들이 대부분이나 백토분장(白土粉粧)을 한 것도 있어 백자로의 과도적양상을 보여준다. <참고문헌·부안군지>

 

[국립전주박물관 '전북의 역사문물3부안'에 실린 글을 따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