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안도 앞바다에서 깨어난 고려청자의 신비

2002년 봄, 한 어부에 의해 비안도 앞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옛 그릇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문화재청은 ‘서해 비안도 해저 발굴 조사단’을 조직하고, 해군(55전대, 해난구조대 등)의 지원 아래 2002년 5월 15일부터 6월3일까지 수중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비안도 1킬로 앞에 위치한 유물 발견 해역은 ‘새만금간척사업’을 위한 물막이공사 때문에 빠른 물살이 형성되었고, 이로 인해 바다 속의 지형이 변하면서 유물들이 노출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수심은 12~17미터 정도이며, 조금 때라도 1미터 앞 밖에 볼 수 없다. 바다 밑은 고운 갯벌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뻘에 청자들이 박혀 있었다.

지금까지 이 바다에서 인양된 유물은 2,386점에 이르며, 모두 청자들이다. 종류는 대접, 완, 접시, 잔, 뚜껑 등인데, 대접과 접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릇에 음.양각으로 세겨진 무늬는 ‘연꽃잎’ ‘앵무새’ ‘모란꽃’ ‘줄무늬’ 등 다양하다. 특히 연꽃잎무늬가 있는 ‘통형잔(筒刑盞)’과 ‘통형큰잔’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청자들은 인근의 전북 부안군 진서리 가마터(사적 제69호)와 유천리 가마터(사적 제70호)에서 생산된 청자와 같은 계통의 것으로서, 대략 12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마도 위의 가마터에서 생산되어 당시 수도였던 개경 등지로 옮기던 중 어떤 이유로 인해 이 바다 속에 매몰된 것이 아닌가 한다.(문화재청)

비안도 해저유물 조사 경과

2002.4.6 : 어부에 의해 청자 243점이 인양됨.
2002.4.13 : 문화재청 전문가 현지 조사
2002.4.17 : 긴급 탐사 착수(국립해양유물전시관:4.23 완료)
2002.4.25 : 사적 가지정(지정기간 2002.4.25~2002. 10.24)
2002.5.15 : 비안도 1차 수중발굴조사(6.3 완료)
2002. 9 : 비안도 2차 수중발굴조사 예정

군산 앞바다 고려청자의 의미

발견된 의미는
1976년 신안 앞바다에서 14세기 전반의 고려청자 7점, 1983년 완도 앞바다에서 11세기 후반 청자, 1987년 보령 죽도에서 14세기 전반 강진산 청자, 1995 년 무안 도리포에서 14세기 후반 청자가 발견된 것이 우리나라 해저유물 발굴의 역사다. 이번 군산 비안도에서 발견된 청자는 그동안 공백상태이던 12세기 후반부의 것으로 현재 발견된 454점만 가지고 봐도 가장 좋은 것으로 보여진다. 도자사적인 관점에서 일괄유물이 발견된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발견된 유물중에 ‘청자양각연판문통형잔’의 가치가 높다고 했는데
일본에서는 이런 형태의 고려다환을 소중하게 생각해서 국보로 지정한 것도 있는데, 일본에는 현재 14세기의 상감청자가 남아 있다. 12세기 후반에 제작된 이 찻잔은 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부안 유천도요지와의 관계는
원광대 박물관에서 97년과 98년 발굴할 당시 이번에 발견된 유물에 있는 양각, 앵무무늬, 통형잔이 그대로 나타난 것으로 봐서 유천도요지에서 제작된 것이 확실하다. 유천도요지는 전남 강진과 더불어 왕실 관청에서 쓰이는 청자를 만들었고 줄포항을 통해 개경으로 실어 날랐다. 그전에는 무늬가 없었지만 이때 틀과 조각도에 의해 양각으로 ‘앵무’ ‘모란꽃’을 그리는 새로운 기법이 나타났고 이는 나중에 상감으로 발전한다.

앞으로 전망은
단 이틀간의 조사로 2백점이 넘는 유물이 발견됐다. 한달만 조사하면 많은 양이 나올 것이다.

서해에서 앞으로도 유물이 발굴된 가능성이 있는가
이곳은 물살이 빨라져서 우연히 발견됐지만 서해는 유물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서해와 남해 일대는 약 3백군데에서 유물이 발견됐다고 신고돼 있지만 현재 발굴된 곳은 5곳뿐이다. 수백년동안 바다를 통해 도자기를 실어 날랐다는 점을 생각하면 앞으로 얼마나 나올지 모른다.

발견된 청자의 색깔이 비색(翡色)과는 틀린데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100개중에 하나에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아직 발견된 것 중에는 없지만 앞으로 매병, 주전자, 술병 등이 발견되면 국보급이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윤용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