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산 고려청자 모음

 

청자상감포도동자문동채주자 및 승반
(靑磁象嵌葡陶童子文銅彩注子및承盤)

• 유물번호 : 중앙, 덕수 19-0
• 시대 : 고려(高麗)
• 재질 : 도자기(陶磁器), 청자 (靑磁)
• 크기·높이 : 34.5 cm 몸통지름 14.4 cm
• 문양·장식 : 식물문(植物文) 당초문(唐草文) 복합문(復合文) 포도동자문(葡萄童子文)
• 용도·기능 : 식(食)음식기(飮食器)음식(飮食)주전자(酒煎子)식(食)음식기(飮食器)음식(飮食)반(盤)
• 출토지 : 경기도(京畿道), 개성부근 (開城附近)

<참고자료>
명품도감, 국립중앙박물관 편, 삼화출판사, 1985, 도121

비교적 호리호리한 조롱박 모양 주자(注子)로서, 밖으로 벌어진 높은 굽이 달린 승반(承盤)을 갖추고 있다. 주자의 전면에 포도 덩굴과 덩굴에 매달려 노는 동자들을 백상감했는데 동자의 윤곽을 흑상감으로 둘렀으며 포도 송이에도 흑상감 중심점과 테두리를 넣었고 일부 포도송이에 동채(銅彩. 酸化銅)를 칠했다. 귀때부리와 덩굴 두 가닥을 꼬아 붙인 모양의 손잡이에는 백퇴점(白堆點)을 찍어 장식했다. 승반의 바깥 면에도 역시 포도 덩굴이 가득 백상감되어 있으나 동채는 칠하지 않았고 안쪽 면에는 커다란 연잎 한 장을 음각하였다. 유약은 연한 녹색을 머금은 반투명유이며 부분적으로 산화되어 옅은 갈색을 띠는 곳이 있다.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청자 가마에서 구워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靑磁象嵌雲鶴文梅甁)

• 유물번호 : 중앙, 덕수 421-0
• 시대 : 고려(高麗)
• 재질 : 도자기(陶磁器), 청자(靑磁)
• 크기 : 전체높이 39.1 cm 뚜껑높이 5.0 cm
• 입지름 : 6.5 cm
• 문양·장식 : 복합문(復合文) 운학문(雲鶴文) 물상문(物象文) 여의두문(如意頭文)
• 용도·기능 :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병(甁)
• 출토지 : 경기도(京畿道), 개성부근(開城附近)

<참고자료>
명품도감, 국립중앙박물관 편, 삼화출판사, 1985, 도116

매병에는 원래 뚜껑이 있었지만 이 매병과 같이 온전히 남아 있는 예는 드물다. 뚜껑의 양식을 보아 그 기능이나 용도를 짐작할 수 있는데, 이러한 뚜껑은 병의 입 위에 비단이나 자수 보를 어깨까지 덮어 씌우고 그 위에 뚜껑을 덧얹었던 것으로 보인다. 뚜껑의 윗면에는 학이 흑백상감되었고 옆면에는 구름이 백상감되어 있으며 옆면 아랫단 둘레에 뇌문(雷文) 띠가 백상감으로 둘리어 있다. 몸체의 어깨 부분에는 여의두문(如意頭文) 띠가 있고 전면에 백상감 구름과 흑백상감의 학이 여유있게 배치되었다. 굽도리 둘레에도 뇌문 띠가 백상감되었다. 유(釉)는 엷고 광택이 있는 비색유(翡色釉)이며 상감 무늬를 중심으로 방사선 모양의 빙렬(氷裂)이 나타나 있다. 유약이 불완전하게 녹은 탓에 병 아랫도리와 굽 둘레가 일부 변색되었다. 유와 태토의 질로 보아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청자 가마에서 제작된 작품들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청자상감동채모란문매병
(靑磁象嵌銅彩牡丹文梅甁)

• 유물번호 : 중앙, 덕수 434-0
• 지정·구분 : 보물(寶物) 제 346 호
• 시대 : 고려(高麗)
• 재질 : 도자기(陶磁器), 청자 (靑磁)
• 크기 : 높이 34.5 cm 입지름 5.8 cm 몸통지름 21.2 cm
• 문양·장식 : 식물문(植物文) 모란문 (牡丹文)
•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병(甁)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병(甁)
• 출토지 : 경기도(京畿道), 개성부근(開城附近)

<참고자료>
고려청자명품, 국립중앙박물관 편, 통천문화사, 1989, 도252

작은 입과 둥글고 부드러운 어깨, 유연한 선을 그으며 흘러내린 허리와 다시 조금 넓어져 안정감을 주는 다리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인 고려 매병의 곡선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입 둘레로부터 어깨까지 국당초문(菊唐草文)을 넣은 커다란 복사문(복紗文) 네 개가 흑백상감되었다. 몸체 양편에는 모란 꽃가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꽃잎과 봉오리 끝에 진사를 칠하여 화사하게 표현하였는데, 이처럼 매병의 장식 의장으로 진사를 사용한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 아래쪽에는 백상감으로 연판문(蓮瓣文) 띠를 두르고 연판 안에 양식화한 당초문을 흑상감하였다. 굽다리 둘레에는 뇌문(雷文) 띠를 흑상감으로 둘렀다. 광택이 은은하고 투명한 회청색 유(釉)에 그물꼴의 빙렬(氷裂)이 몸체 전면에 퍼져 있으며 굽 밑에 규사(硅砂)눈 자국이 7군데 남아 있다.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청자 가마터에서 이 매병과 같은 유약과 태토, 상감 기법을 보이는 파편들이 발견되었다.

 

청자상감용봉당초문편병
(靑磁象嵌龍鳳唐草文扁甁)

• 유물번호 : 중앙, 덕수 4229-0
• 시대 : 고려(高麗)
• 재질 : 도자기(陶磁器), 청자 (靑磁)
• 크기 : 높이  23.8 cm 지름 18.6 cm
• 문양·장식 : 동물문(動物文) 용봉문(龍鳳文) 식물문(植物文) 당초문(唐草文)
• 용도·기능 :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병(甁)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병(甁)
• 출토지 경기도(京畿道), 개성부근 (開城附近)

<참고자료>
한국의 미 4 청자, 최순우 외 편, 중앙일보사, 1981, 도90

항아리의 몸체 양면을 납작하게 만든 편호(扁壺)로서, 고려 후기의 청자상감편호 가운데서도 단정한 형태와 정성들인 상감 무늬의 기법이 돋보이는 예다. 몸체의 납작한 면에는 흑백 두 줄을 상감하여 마름꽃(菱花) 모양의 테를 두르고 그 안에 여의주를 쫓는 용 한 마리를 백상감했으며 나머지 여백을 구름 무늬로 채웠다. 몸체의 둥근 면에는 봉황당초문(鳳凰唐草文)을 빽빽하게 백상감했고 어깨에는 뇌문(雷文) 띠와 여의두문(如意頭文) 띠를, 굽도리에는 연판문(蓮瓣文) 띠와 뇌문 띠를 돌렸다. 이 편호의 백상감 부분은 모두 도드라져 있는데 용 무늬 부분이 특히 도드라졌다. 회청색을 띤 투명한 유약이 비교적 얇게 입혀져 있고, 상감 무늬 위에 기포(氣泡)와 빙렬(氷裂)이 많이 들어가서 운모처럼 빛나는 석(石) 얼음이 눈에 띈다.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청자 가마터에서 이와 비슷한 상감청자 파편이 발견되었다.

 

청자철유상감화조문사이편호
(靑磁鐵釉象嵌花鳥文四耳扁壺)

• 유물번호 : 중앙, 덕수 6221-0
• 시대 : 고려(高麗)
• 재질 : 도자기(陶磁器), 청자(靑磁)
• 크기 : 높이  29.4 cm 몸통지름 19.8 cm
• 문양·장식 : 복합문(復合文) 화조문(花鳥文) 물상문(物象文) 여의두문(如意頭文)
• 용도·기능 :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항아리
• 출토지 : 경기도(京畿道), 개성부근(開城附近)

<참고자료>
한국의 미 4 청자, 최순우 외 편, 중앙일보사, 1981, 도183

항아리를 빚어서 양면을 조금 두드려 편평하게 만든 형태이다. 청자 태토 위에 백토를 상감하여 문양을 나타낸 다음, 상감 문양 부위를 제외한 바탕에 철사유(鐵砂釉)를 발랐다. 이러한 기법을 보이는 파편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청자 가마터에서 상당량이 수집되었고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에서도 발견되었다. 청자 최성기인 12세기를 지난 시대의 유물들과 함께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13세기쯤에 유행한 기법으로 여겨진다. 어깨에는 선을 한 줄 돌리고 그 선에 잇닿게 큰 여의두문(如意頭文) 띠를 돌렸고 굽 둘레에도 역시 선을 한 줄 돌리고 그 위로 연판문(蓮瓣文)을 둘렀다. 넓게 펼쳐진 몸체의 편평한 양면에는 겹선으로 마름꽃 모양(菱花形)을 만들고 그 안에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 한 마리씩을 나타내었다. 마름꽃 모양의 테두리 밖에는 어깨에서부터 굽에 이르기까지 세로선을 성글게 그어놓았다. 어깨 위 전후좌우에는 짐승 머리 모양의 고리를 장식하였는데 그 위에 청자유를 두껍게 입혀서 청자색으로 빛난다.

 

청자상감음각모란문매병
(靑磁象嵌陰刻牡丹文梅甁)

• 유물번호 : 중앙, 본관 1981-0
• 지정·구분 : 보물 (寶物) 제342 호
• 시대 : 고려(高麗)
• 재질 : 도자기(陶磁器), 청자(靑磁)
• 크기 : 높이 35.4 cm 입지름 7.0 cm  몸통지름 22.1 cm 바닥지름 15.2 cm
• 문양·장식 : 식물문(植物文) 모란문(牡丹文) 기하(幾何文) 사각형문(四角形文)
•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병(甁)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병(甁)

<참고자료>
한국의 미 4 청자, 최순우 외 편, 중앙일보사, 1981, 도71

풍만한 어깨와 점차 가늘어져 내려온 허리, 바닥에 이르며 다시 조금 벌어진 다리 등 아름다운 곡선미를 지닌 매병이다. 뚜껑이 갖추어져 있고 접시 모양의 승반(承盤)도 딸려 있다. 병 입에 백상감 뇌문대(雷文帶)를 돌렸고 어깨에는 병입 언저리를 중심으로 해서 네 귀에 술을 늘어뜨린 사각형 복사(복紗) 무늬를 흑백상감하였다. 몸체 양면에는 모란을 한 가지씩 음각했으며 아랫도리 네 군데에는 운두산형(雲頭山形)을 음각하고 굽다리 둘레에 음각으로 뇌문대(雷文帶)를 돌려 마감하였다. 뚜껑은 가장자리에 백상감 뇌문대를 돌리고 측면에 운학문을 상감하였으며 승반에도 같은 운학문이 상감되었다. 장식이 많은 듯하지만 전체 의장은 단순하며, 특히 어깨의 복사문에만 상감 장식을 국한시키고 음각문은 그 아래 몸체에만 넣어 의장을 이원화하였다. 태토는 비교적 고르고, 광택이 있는 청회색계 유약이 입혀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그물 모양의 잔 빙렬(氷裂)이 있다.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청자 가마터에서 이 작품과 유사한 유태(釉胎)와 상감기법의 파편들이 출토된다.

 

청자음각연꽃무늬매병
(靑磁陰刻 蓮花文 梅甁)

• 시대 : 고려(高麗)
• 크기 : 높이 27.7 cm 입지름 5.3 cm 몸통지름 10.2 cm

고려적으로 세련되어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12세기의 전형적인 매병형태를 보이는 작품이다. 표면에는 가늘고 유려한 음각선을 사용하여 어깨 네 곳에 여의두문(如意頭文)을 배치하고, 몸체에는 자태를 조금씩 달리한 연꽃을 네 곳에 그린 후, 굽 언저리에 연잎무늬와 번개를 상징하는 뇌문(雷文)를 배치하여 마무리하였다. 광택이 있고 투명한 담록색의 은은한 비색유가 얇고 고르게 시유되었으며, 빙렬이 일부 있다. 이 매병의 굽 안바닥에는 ‘효문(孝文)’이라고 음각으로 적은 글씨가 있어 주목되는데, 이것과 동일한 문자가 적힌 파편이 전북 부안군(扶安郡) 유천리(柳川里)에서 출토된 바 있어, 이곳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씨가 이 작품을 만든 장인(匠人)의 이름인지 혹은 작품주인의 이름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풍성하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아름다운 형태, 맑은 시냇물같은 청초한 유색, 숨을 듯 곱게 새겨진 부드러운 음각문양 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이 작품은, 엄중한 송대(宋代) 청자(靑磁)와는 판이하게 다른, 고려청자만이 이루었던 위대한 미(美)의 세계를 대표하는 명품이라 하겠다.

 

청자투각돈

• 지정·구분 : 국보 제416호
• 크기 : 좌 높이 48 cm 몸지름 38cm 우 높이 49.5cm 몸지름 38cm
• 출토지 : 경기도 개성시 고려동

돈(墩)은 일종의 의자이지만, 때로는 받침대로서 화분 같은 것을 올려 놓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송대의 그림에 이 돈(墩)과 비슷하게 생긴 예가 보이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려시대에 그런 류의 그림이 발견된 예가 없다. 고려청자돈에 관해서는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전북 부안 출토 청자파편(12세기 작품) 중에 이러한 돈의 파편이 수십 조각 있어서 12세기부터 그 실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괄 출토된 4점의 청자투각돈은 완형을 갖춘 귀중한 유물이지만 유약이나 유조문양의 세련도, 제작기법 및 전체적인 조화면에서 부안 출토 파편에 비해 뒤떨어진다. 따라서 이 작품들의 제작 시기는 12세기 이후라고 생각되며 족부(足部)의 연판문(蓮瓣文) 모래받침 등으로 보아 14세기경까지 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윗면에는 중앙 원권(圓圈)안에 연화문(蓮花文)이 있고 그 주위 전면에 연당초문이 각각 음각되었다. 그리고 주연(周綠)에는 2조의 음각원권(陰刻圓圈)으로 마무리 하였다. 측면은 신부(身部)와 족부(足部)로 구분할 수 있으며, 신부는 3단구성으로 중앙에 넓은 주문양은 대칭쌍호문(對稱雙弧文)을 어긋매껴 중첩되게 배열하고, 그 아래 위와 가운데를 엮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그리고 종속 하단 문양은 네 군데에 안상문(眼象文)을 배열하고 그 사이를 세로로 구획하였다. 유약은 암녹색이 비친 약간 탁한 청자유로 일부 산화되어 담갈색을 머금은 곳이 있으며 바닥에는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