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는 또 백자로 이어지고

 

부안에는 청자 요지 외에 조선 초기의 백자 요지가 산재해 있어 분청자기에서 백자로의 이어짐을 살펴 볼 수 있다.

 


석포리 백자가마터

• 소재지 :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구
• 시 대 : 조선시대

석포삼거리 진서농협특산물직판장에서 내소사방향으로 50여m를 가다가 좌측길로 접어들어 대소(신선대)마을방향으로 300여m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심촌마을 논가운데에 있다. 퇴적된 자기편들을 살펴보면 서민들이 주로 쓰던 병, 접시, 대접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부안군지>

 

소산리 백자 가마터

• 소재지 : 부안군 주산면 소산리
• 시 대 : 조선시대

주산면 소산리 주산(배매산)기슭에 있다. 조선시대 백자가마터로 이곳에서 출토되는 자기편을 살펴 보면 백자의 굽은 굵은 모래괴임으로 되어 있어 투박한 편이며 접시, 대접 등의 서민들이 쓰는 그릇이 주로 보여진다. <참고문헌·부안군지>

 

▲원사산 조선시대 가마터_포크레인으로 밀어버리자 자기편들이 나뒹굴고 있다.

사산리 백자가마터

• 유적의 위치 : 부안군 주산면 사산리 원사산마을
• 유적의 종류  : 조선자기 가마터

현황 토취작업으로 인하여 가마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구릉이 이미 삭평된 상태이고 다수의 자기편이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다. 지표상에는 자기편 외에 자기를 구울 때 사용된 도짐, 가마의 벽체로 추정되는 불에 탄 흙, 돌등이 흩어져 있다. 이들 자기편 등이 흩어져 있는 지역은 그 아래쪽 한단 낮은 밭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토취작업이 중지된 상태이다. 연대 지표상에서 파악되는 자기는 시기차이를 가지고 구워진 것으로 여겨지며 이들 자기의 지표상 관찰 결과로는 최소한 3

▲원사산에서 출토된 자기

개의 시기로 구분이 가능하다. 이 같은 시기 차가 가마의 연대와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동일한 가마에서의 시기차이 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가마자체의 선후관계에 의한 시기차이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유구의 잔존 여부 토취작업으로 인하여 본디의 지형을 파악할 수 없고 지표상 관찰에 의하면 유구의 대부분이파괴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다량의 자기편과 도짐, 벽체 등에 의하면 자기를 굽는 주요한 부분인 소성실이 파손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아래쪽 밭과 상당한 높이 차이가 있고 이 같은 높이차이에 의하여 가마의 아래 부분, 즉 화구부분과 그에 이어지는 소성실이 일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 아래쪽 밭과 이어지는 부분에 대한 지표상 관찰에 의하면 2기 내외의 가마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대학교 고고인류학 윤덕향 교수
전북대학교 박물관장
호남 고고학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