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엔 곽재우, 호남엔 김홍원] 영욕으로 점철된 김홍원의 일생

  치적에 대한 엇갈린 평가 그러나 김홍원의 관리로서의 삶이 그렇게 영광스러운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후에 그는 위의 평판과 전혀 상반되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사헌부 관원들은 그를 관직에서 파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한 예를 살펴보자. 그는 선조 39년(1606) 8월에 원주목사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같은 왕 40년(1607) 7월에 사헌부에서는 그를 파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계를 올렸다. 원주는 관동의 큰 고을로 목사가 조방장까지 겸하고 잇기 때문에 직임이 몹시 중대합니다. 따라서 진실로 적임자가 임명되지 않으면 (이 지역을) …

개암사 대웅보전은 법당인가, 용궁인가?

  개암사 법당(대웅보전)은 용궁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다른 절의 법당에 비해 유난히 용이 많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는(혹 틀렸을지 모르니 다음에는 정확히 세어서 메모해 두리라), 천정 사방에 한 마리씩 네 마리, 동서 보에 한 마리씩 두 마리 천정 중앙에서 석가모니불을 호위하는 다섯 마리의 용이 있고, 또, 닫집 안에 다섯 마리의 용이 석가모니불을 호위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당 안에만 열여섯 마리의 용이 있고, 법당 밖 용두까지 합하면 도합 열여덟 마리의 용이 이 법당을 수호하고 있다. 불국정토로 인도하는 사찰의 수호신-용 사찰에서 가장 흔히 …

절집 기둥이 싸리나무…?

  작지만 쓰임 다양한 싸리나무 옛날 어떤 이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금의환향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마을 고갯마루에 이르자 갑자기 말에서 내리더니 숲 속으로 들어가 싸리나무에 넙죽 절을 하더라는 것이다. 까닭인즉 싸리나무 회초리가 아니었다면 어찌 오늘의 영광이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싸리나무의 쓰임이 어찌 서당훈장님의 회초리뿐이었겠는가? 광주리, 채반, 삼태기, 바작, 병아리 가두어 기르는 둥우리, 빗자루 등 각종 생활도구에서부터 초가의 울타리로, 어살의 울타리로…(지금은 어살에 그물을 두르지만 나일론 그물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대나무나 싸리나무를 엮어 둘렀다.) 그뿐만이 아니다. 싸리나무는 단단한데다 곧게 자라기 때문에 화살대로, 또 나무속에 습기가 …

산 산에 요강 엎어지는 소리

  빨갛게 불타는 산딸기 옛날에 한 부부가 대를 이을 자식이 없다가 늙으막에 아들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병약해서 좋다고 하는 약은 모두 구해 먹여도 별 효험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한 스님이 병약한 아들에게 산딸기를 먹여보라고 권했다. 부부는 열심히 산딸기를 따다 먹였더니 놀랍게도 아들은 병도 없어지고 몸도 튼튼해졌다. 그 아들이 얼마나 건강하고 정력이 좋았던지 오줌발이 너무 세서 요강이 엎어지고 말았다. 바로 산딸기가 양기를 강하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산딸기의 이름이 ‘산딸기가 요강을 엎었다’고 해서 ‘엎칠 복(覆)’자, ‘항아리 분(盆)’자를 써서 ‘복분자(覆盆子)’라고 …

칠산바다 수호신 ‘개양할미’

  칠산바다 수호신 ‘개양할미’ 변산반도는 노령산맥이 서해를 향해 달리다가 우뚝 멈춰 선 형국으로 서해상에 깊숙이 돌출되어 있다. 이곳 변산반도 서쪽 맨 끝지점(변산면 격포리 죽막동) 해안가 높은 절벽 위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 수성당이 있다. 이 당집은 女海神 개양할미를 모신 곳이다. 개양할미를 서해를 관장하는 聖人으로 여겨, 水聖을 모신 堂집이라고 부르게 된 게 아닌가 한다. 전설에 의하면 개양할미는 딸 여덟을 낳아 칠산바다 각지에 시집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았다하여 수성당을 구랑사(九娘祠)라고도 불렀다 한다. 그리고 개양할미는 키가 매우 커서 굽나막신을 신고 서해를 걸어 다니면서 수심을 재고, 풍랑을 …

개암사 대웅보전 ‘귀면’

  사악한 무리를 경계하는 벽사의 화신 사찰 법당의 안팎에서 흔히 다리도 없고 팔도 없고 몸뚱이도 없는, 오직 얼굴만 보이는 물상을 만나볼 수 있다. 주로 법당 전면 문짝의 궁창이나 처마 밑, 기둥머리, 창방, 평방, 불단 등에 장식되며 그림이나 목각(木刻)의 형태로 되어 있다. 이 물상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눈은 반구형으로 돌출되었고 코는 중앙에서 넓은 자리를 차지하며 높이 솟아 콧구멍이 드러나 있다. 귀와 수염, 머리카락을 갖추고 있으며 눈 위쪽 좌우에는 큰 뿔이 솟아 있다. 입을 크게 벌려 커다란 치아를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아래위로 …

벼농사 문화의 발상지-부안

위의 두 볍씨자국토기편은 전영래 박사가 습득, 소장하고 있다. 부안의 문헌에 볍씨자국토기편은 보이는데 사진자료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전영래 박사를 수소문해 여쭈어 봤더니 당신이 소장하고 있노라고 했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박사님 댁을 방문하여 찍은 사진이 위의 사진이다. 박사님은 ‘출토’가 아니라, ‘습득’이라고 ‘습득’을 유독 강조 하셨다. 김제 벽골제 민속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볍씨자국토기편은 위 사진의 것을 모조한 것이다. 말 나온 김에 하는 얘기지만, 김제 벽골제 민속박물관에 들를 때마다 김제가 부럽기만 하다. 3면에 바다를 끼고 있고, 너른 들을 끼고 있는 부안… 일찍이 해양문화가 발달하고, 김제와 …

부안이 낳은 시인 신석정의 시세계

  일제 때 양심지킨 시인 해방 후 치열한 저항의식 표현한 작품 남겨 부안이 낳은 시인 신석정(辛夕汀:1907~1974).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목가시인’ 또는 ‘전원시인’이라는 수사가 붙어다닌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리 험한 세상일지라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원초적 내면의 향수를 자극하는 시어들을 찾아 일생을 향토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석정은 간재 전우의 제자로 한학자였던 부친 신기온(辛基溫)의 3남2녀 중 차남으로 부안읍 동중리 ‘노휴재’ 뒤편의 본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때부터 그의 집안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안읍에서 한약방을 해오고 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석정(錫正)이었다. 그가 태어난 날이 7월 …

백산성지

  아, 이 낮은 백산이 이렇게 높은 줄을 누가 미처 알았으랴. 사방이 눈앞에 환하기가 지리산보다 환하고 태백산보다 더 환하구나. 그 까닭이야 너무도 명백하니 이 산이 홀로 들판 가운데 있기 때문이로다. 이 세상에 사람이 산천의 수목처럼 가득하되 모두 그만그만 키가 같은지라 서로가 서로에게 묻혀 내려다보는 사람이 없더니 드디어 한 사람이 우뚝 솟아 세상을 내려다 보거늘, 그가 그렇게 우뚝한 까닭은 다만 그가 한 자 높은 돌 위에 섰음이로다. 그 한 자의 돌을 분별하는 사람이 없다가 이제 비로소 눈이 뜨인 사람이 있어 여기 …

물속에 불구슬이 빠진다기에 … 서해낙조

  예부터 동해의 낙산 일출과 서해의 변산 낙조를 일대 절경으로 쳤다. 변산8경 중의 1경으로 ‘서해낙조’를 꼽았음도 물론이다. 노산 이은상은 아름다운 변산의 낙조를 보고 이런 시를 지었다. 변산의 마천대에 오른 듯 내려 저분네 바쁜행차 어디로 가오 물속에 불구슬이 빠진다기에 월명암 낙조대를 찾아간다오 /노산 이은상 또, 육당 최남선은 1900년대초에 변산을 여행하고 기행문을 남겼다. 그는 영전으로 해서 버드내, 환의고개를 지나 내소사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원암고개를 넘어 직소폭포, 실상사를 둘러본 후, 서해낙조를 보기 위해 실상사 뒷등을 타고 낙조대에 올랐다. 그러나 구름이 끼어 변산 낙조의 황홀함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