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적에 대한 엇갈린 평가
그러나 김홍원의 관리로서의 삶이 그렇게 영광스러운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후에 그는 위의 평판과 전혀 상반되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사헌부 관원들은 그를 관직에서 파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한 예를 살펴보자. 그는 선조 39년(1606) 8월에 원주목사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같은 왕 40년(1607) 7월에 사헌부에서는 그를 파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계를 올렸다.
원주는 관동의 큰 고을로 목사가 조방장까지 겸하고 잇기 때문에 직임이 몹시 중대합니다. 따라서 진실로 적임자가 임명되지 않으면 (이 지역을)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목사 김홍원은 문벌이 한미하고 명망이 가벼워서 맡은 업무에 대해 제대로 호령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근신하지 않아서 관고를 텅 비게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루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할 수 없으니 파직시키고 이를 대신할 만한 사람을 각별히 선정하여 보내소서.
앞에서 우리는 김홍원이 금산군수로 재직할 때 훌륭한 치적을 이루어 왕으로부터 지방관으로서의 자질이 뛰어났다는 칭찬을 듣고 아울러 표리일습도 하사받았던 사실을 살펴보았다. 또 그가 의병장으로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하루아침에 정 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에 올랐던 점을 통해 그가 무인으로서 탁월한 능력도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위 사헌부의 계에는 이와 정반대로 김홍원이 지방관으로서나 무인으로서 전혀 자질이 없는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그에 대한 상반된 평가 중 도대체 어느 것이 타당한 것인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벌이 한미하고 명망이 가벼운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호령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성품도 근신하지 않으며 관아의 재정을 잘못 관리하여 관고를 텅텅 비게 하였다면, 그는 수령으로서나 무인으로서 자질을 전혀 작추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김홍원에 대한 이러한 혹평은 이때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가 인조 2년(1624) 12월 회양부사로 임명되자 사헌부에서는 즉각 다음과 같은 계를 올려 해임을 촉구하였고 이번에는 왕이 이를 받아들여 그를 교체시켰다.
회양부사 김홍원은 본시 미천한 신분으로 문재나 무재도 없는 사람인데 오직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아첨하는 것만을 장기로 삼아 왔으며, 혼조(:광해조-인용자 )에는 초액(:후궁-인용자)에 빌붙어 잇따라 호남의 큰 고을 수령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파직하고 서용하지 말도록 명령하소서.
김홍원이 왜 사헌부의 관원들로부터 이와 같이 질타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 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가 지방관에 임명될 때마다 사헌부에서 심하게 반대하였던 주된 이유는 그가 권신과 가까이하였다는 점과 광해조에 벼슬살이를 하였다는 점이었다.
위에서 말하는 권신은 추포 황신을 지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김홍원이 황신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정유재란이 발발한 직후였다. 당시에 전라감사로 부임한 황신은 김홍원으로부터 적을 물리치고 민심을 안정시킬 방책을 듣고 그에게 장사 수십 명을 주어 왜군을 물리치도록 하였다. 황신은 전란 기간 내내 김홍원의 의병활동을 여러 측면에서 지원하고 또 그가 승전을 하면 이를 조정에 보고하여 포상을 받도록 해주었다. 이들의 인연은 그 후로도 지속되었다. 전란이 끝나고 김홍원이 관직에 진출하여 벼슬살이를 하자 황신은 후견인으로서 그의 뒤를 계속해서 돌보아 주었다고 한다.
김홍원 또한 이러한 황신을 극진히 섬겼다. 광해조에 들어와 황신은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정협으로부터 무고를 당하여 마침내 황해도 옹진현으로 유배되었다. 그러자 김홍원은 정성을 다하여 황신의 유배 생활을 뒷바라지 하였다. 또 황신이 유배지에서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는 일에 온갖 정성을 쏟았다. 김홍원의 이러한 행동은 정권을 잡은 이이첨 등에게 미움을 받을 만한 빌미가 되었다.
하지만 김홍원은 이이첨 일당으로부터 그다지 큰 미움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이첨의 집권 기간 내내 그는 나주목사와 담양부사 등과 같은 지방 수령직을 역임하고 충무위 부사용과 용양위 부사과 등과 같은 서반직을 두루 거쳤기 때문이다.
그후 인조반정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김홍원에게는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다.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그가 광해조에 현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벼슬살이를 하였다는 이유로 오히려 그를 강도 높게 비난하였다. 이러한 일에는 항상 그러하듯이 사헌부와 사간원 등 대간의 관원들이 앞장을 섰다. 그래서 그가 회양부사에 임명되자마자 사헌부 관원들이 즉각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줄 것을 왕에게 강력이 요청하였으며, 왕은 이를 받아들여 그를 곧바로 파면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역모혐의와 유배생활
그러나 김홍원의 불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역모를 꾀하였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며, 조사 결과 그가 역모를 도모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배형에 처해졌다.
대부분의 역모 사건은 모반에 가담하였다가 후에 변심한 사람이나 혹은 역모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가담자의 측근이 역모 사실을 고발하는 것을 고변이라고 하는데, 김홍원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첩의 오라버니가 고변을 하였던 것이다.
고변이 접수되면 관에서는 일단 관련자들을 모두 체포하여 옥에 가두고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였다. 이때 관련자들은 조사관들로부터 범죄 사실 등에 대해 하나하나 심문을 받고 또 자신의 행적 등을 낱낱이 고백하는 진술을 해야 했는데 이 진술이 바로 공초이다. 그러면 이제 김홍원의 역모와 관련하여『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고변의 내용과 김홍원의 공초에 대해 살펴보자.
김경현이라는 자가 고변하기를 “저의 누이동생 말치가 한글로 쓴 편지를 보내왔는데, 그 내용은(다음과 같습니다. 즉) 그의 남편인 김홍원이 윤운구, 유인창등과 함께 혈서를 써서 맹세하고 항상 제암정에 모여 반란을 모의하였답니다. 그런데 김지수가 이 사실을 알고 친한 사람에게 이를 누설하자 (김홍원의 역모) 사실은 (역모와 관련된) 운구, 인창, 홍원, 진수, 민안 등을 잡아들이라고 명령하였다.
역관 장경인의 아내는 말치의 아우였다. 말치가 경인의 처와 사사롭게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편지의 사연도 대략 이와 비슷하였다. 그래서 경인도 역시 그 편지를 근거로 고변하였다.
드디어 홍원을 잡아들여 반역한 상황을 조사하니, 홍원이 공초하기를, “신이 옛날 서울에 우거하고 있을 때 이웃에 한 여자가 있어서 저를 협박하기를 ‘그대가 나를 첩으로 삼지 않으면 내가 그대를 모함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는 정치가 문란했던 호조여서 전후로 모함을 당해 죽은 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신은 이를 두려워하여 부득이 그를 첩으로 데리고는 있었으나 매우 매정하게 대하였습니다. 때문에 그녀는 항상 원한과 독기를 품고 있었으며 그래서 결국은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고 하였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인조반정 후에는 전국 각지에서 역모 사건이 자주 일어났으며 또 이와 관련한 고변도 매우 잦았다. 김경현의 고변도 그 중 하나인데 그는 자신의 누이이자 김홍원의 첩인 김말치로부터 김홍원 등이 반란을 모의하느라 자주 회합을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 고변하였던 것이다.
제일 먼저 잡혀 온 김홍원은 첩인 김말치를 매정하게 대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변명하였다. 뒤이어 고변장에 거론된 윤운구와 김지수 등이 모두 잡혀와 국문을 당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진상을 실토하지 않는다며 여러 차례 매질을 당했다. 심지어는 달군 쇠로 몸을 지지는 낙형과 무릎 위에 무거운 돌을 얹어 놓는 압슬형까지 당하였으나 모두 자복하지 않았다. 갖은 조사 끝에 왕과 국청 관원들은 이 사건을 무고로 결론짓고 윤운구와 김지수 등을 방면하였다. 다만 이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김홍원은 유배형에 처해 멀리 함경도 부령으로 귀양을 보냈다.
그런데 김홍원의 서녀서인 최경은 그가 지은 김홍원의 가장에서 이 사건을 상당히 달리 설명하고 있다. 즉, 김말치가 궁궐에서 왕을 해코지하려고 저주하다가 적발되었는데 여기에 김홍원이 무고하게 연루되어 유배를 당했다는 것이다. 최경은 역모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 하지 않았다. 최경이 쓴 글 중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부분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약방사령 김인의 아내인 김녀는 남편에게 버림을 받아 (김홍원에게 와서) 첩으로 삼아주기를 간청했다. 공(:김홍원을 가리킴-인용자)은 본디 그 여자가 간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매를 때려 쫓아 보냈는데 그녀가 이것을 가슴에 새겼다. 그녀는 한찬남과 이이첨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으며 궁녀들과 (두터운) 교분을 맺고 있었다. (인조)반정 후에 (그녀가) 몰래 저주하는 일을 꾸며 궁궐 안에서 해코지를 하다가 일이 발각되었다. (궁궐 안 의 의심나는 곳을) 파보니 인골이 나왔으며 또 공의 이름을 쓰고 머리털로 싼 것도 나왔다. 그녀는 즉시 법에 따라 처벌되었으며 공은 이에 연루되어 부령으로 귀양갔다가 (후에) 흥해로 이배되었다. (이배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조가 그의 억울함을 알고 은전을 베풀어 석방시켰다.
현재로서는『조선왕조실록』과「가장」의 내용 중 어느 쪽이 사실에 근접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찌 되었든 그는 이일로 인조 7년(1629) 2월에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되었다가 그해 12월에 경상도 흥해로 이배되었다.
목청 좋은 종년을 곁에 두어 울적한 마음 달래소서
김홍원이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된 지 근 10개월 만에 남쪽인 경상도 흥해로 옮기게 된 것은 인조가 은전을 베풀어 그의 귀양지를 따뜻한 곳으로 옮겨 주도록 명령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명령에 따라 남쪽으로 호송되던 그는 같은 해 12월 5일에 강원도 원주를 지나가게 되었다. 원주는 그가 36살의 젊은 나이에 목사로 재직하였던 곳이다. 그의 나이가 벌써 환갑을 바로 눈앞에 둔 59세였으니 이곳에 재직한 때로부터 어언 20여 년이나 흘렀던 것이다. 이러한 그가 이제 목사로서가 아니라 이배지로 호송되는 죄인의 몸으로 옛 근무지를 지나게 되니 자연히 만감이 교차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김홍원과 절친한 친구인 심광세의 동생 심명세가 목사로 와 있었다. 심명세는 김홍원이 그토록 정성껏 섬겼던 황신의 제자이기도 하였다. 인조의 종모제였던 심명세는 반정에 참여하여 청운군에 책봉된 인물이며 내섬시 제조를 거쳐 당시에 원주목사로 재임하고 있던 중이었다.
심명세는 김홍원이 호송되어 와 그의 관내에 기숙한다는 소식을 듣고 단숨에 달려와 김홍원의 손을 부여잡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술잔을 기울이며 장차 유배지에 도착하여 무료하게 지낼 일과 궁핍할 귀양 생활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심명세는 김홍원의 곁에 노래를 잘하는 계집종이라도 두면 그나마 유배 생활에 위로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노비 중 노래를 잘하는 비 애향을 김홍원에게 선사하였다.
아래의 문서는 심명세가 김홍원에게 애향을 주면서 작성한 것인데 김홍원과 황신과의 관계나 심명세와의 관계가 잘 나타나 있다.
(전라도) 고부의 계집종 애향은 바로 (임금님께서) 나에게 영원히 지급해 주신 사패비인데 령(:김홍원을 지칭함-인용자)의 집에서 산 지 오래되었습니다. (임금님께서) 은혜로 내려주신 계집종을 다른 사람에게 영영 허급하는 것은 죄송한 일이지만 저와 령과의 정과 도리는 흔히 얼굴만 알고 지내는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령의 재능을 알아보고 령을 관리로 천거한 사람은 저의 스승인 추포 선생이십니다. 선생이 돌아가신 지 15년이 되는 오늘날까지 (선생에 대한) 령의 성실한 마음이 시종 변하지 않으니 선생의 문하생들이 령의 일에 대해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하물며 저의 백부와 가형은 령을 사랑하고 믿는 마음이 아주 깊었습니다. 제가 령과 왕래를 시작한 것도 아득히 먼 어린 소년시절부터였습니다.
(그러니) … 령을 위해 도모하는 일이라면 생사조차 피하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한 명의 계집종을 아끼겠습니까? 혹시 사람들이 (임금님께서) 은혜로 내려주신 것을 가볍게 다른 사람에게 양도했다고 해서 저를 탓한다면 저는 이를 기꺼이 감수하고 (그 책임을) 피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금 령께서 지극히 원통한 마음을 품고 북에서 남으로 유배지를 옮기다가 제가 다스리는 고을의 길가에서 기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손을 부여잡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 비통한 눈물만을 떨구었습니다.
생각컨대 령께서 영남의 유배지에 도착한 후 무료하고 울적할 것이니 무엇으로서 마음의 위로를 삼을 것입니까? (유배 생활이) 궁핍하고 고생스러울 것이니 어떻게 살 것입니까? 이 계집종은 자못 노래를 잘 부르며 또 오랫동안 령과 가까이 지냈으니 령이 부리기가 매우 편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계집종을) 령에게 영영허여하니 령께서는 저에게 난색을 표하지 않으시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하물며 제가 충주로 귀양가 있을 때 령께서 아주 좋은 망아지를 제게 보내 주셨는데 저는 그때 이를 사양치 않고 받았습니다. 지금 제가 령께 계집종을 드리오니 령께서는 (어찌) 이를 사양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위 문서의 끝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는 심명세의 유배사건은 인조 3년(1625)에 일어났다. 당시에 인조는 세자빈을 고르기 위해 전국에 간택령을 내렸다. 이때 경상감사 윤의립의 딸이 물망에 올랐다. 그래서 인조가 그녀를 세자빈으로 맞이하려고 하자 여러 신하들이 이를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이유는 그녀가 이괄의 난에 가담한 연적 윤인발의 4촌 누이였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심명세가 특진관으로 참여하고 있던 경연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 심명세는 당나라 중종 때 무후의 친족인 무삼사가 안락공주와 혼인하여 그 폐단이 백여 년 동안이나 미쳤던 고사를 예로 들며 윤의립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이하는 것에 대해 극력 반대하였다.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인조는 경연을 직시 파하였다. 그리고 곧 이어 인조는 심명세가 패악스러운 말을 장황히 늘어놓고 불측한 말로 왕실을 욕되게 했다며 그를 충주로 유배시키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심명세는 충주에서 1년여 동안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김홍원이 그에게 망아지 한 마리를 선사한 것은 바로 이 때였다. 심명세는 귀양살이 도중 마음이 울적하거나 어수선할 때면 이 망아지를 타고 달리며 마음을 달래곤 하였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역전되어 김홍원은 유배를 당하여 영어의 몸이 되고 심명세는 복직되어 원주목사에 임명되었던 것이다. 때마침 날씨가 추워지자 인조는 김홍원을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옮기도록 명령하였다. 이 명령에 따라 유배지를 옮기던 김홍원은 공교롭게도 심명세가 수령으로있던 원주를 거쳐가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심명세는 단숨에 김홍원에게 달려와 술잔을 기울이며 그를 위로하고 또 옛 일들을 회상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목청좋은 계집종 애향을 그에게 선사하였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유배를 당하면 곧 영어의 몸이 되어 매우 혹독한 고생을 하였을 것으로 곧잘 상상을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말을 타고 유배지로 이동하였으며 가는 도중 경유하는 고을의 수령들로부터 향응이나 노자 등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유배지에서의 생활은 대역죄인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자유로워서 유배지의 관내를 벗어나는 경우가 아니면 지인이나 친척의 처소를 마음대로 방문할 수 있었다. 또 가족이나 식솔들을 거느리고 유배지로 이주하여 함께 생활할 수도 있었다. 다만 가족을 동반하여 이주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운 점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 흔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홍원이 이배 도중에 기숙지의 수령인 심명세를 만나 함께 술을 마시던 일이나 심명세가 김홍원의 적적한 유배생활을 걱정한 나머지 그에게 애향을 선사한 일, 그리고 심명세가 유배지에서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김홍원이 선사한 망아지를 타고 이곳저곳을 달리며 배회한 일 등은 조선시대 유배인들의 생활이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런데 심명세는 왜 하필이면 김홍원에게 사패비인 애향을 주었을까? 그리고 애향은 어떠한 인연으로 김홍원의 집에 들어와서 그를 모시고 오랫동안 살게 되었을까? 심명세가 김홍원에게 작성해 준 문서를 읽다보면 이러한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데 아직까지는 이와 관련된 다른 자료들이 발견되지 않아 이를 명확히 해명할 길이 없다. 다만 한 가지 추정을 해본다면, 어떤 계기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김홍원이 일찍이 심명세의 사패비인 애향을 매우 가까이 했으며 그래서 그녀를 첩으로 삼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우선 심명세가 위 명문에서 ‘(애향이) 오랫동안 령과 가까이 지냈으니’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때 남녀가 가까이 지내는 것을 뜻하는 ‘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역시 심명세가 위 명문에서 ‘(애향이) 령의 집에서 산 지 오래 되었습니다’라고 말할 때 첩 등을 데리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 ‘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애향은 이미 김홍원의 첩이 되어 그의 집에 가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그녀에 대한 소유권은 여전히 심명세에게 있었는데 이때 심명세가 김홍원을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소유권을 김홍원에게 넘겨주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심명세는 김홍원이 이배지에 도착하여 한편으로는 무료하고 또 한편으로는 울적하게 지낼 일을 걱정하여 소리 잘하는 계집종을 그에게 선사하였다. 그러나 김홍원은 나이가 이미 환갑을 바로 눈앞에 둔 59세였던 데다 언제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설령 목청 좋은 계집종이 곁에 있어 시름을 달래주고 이것저것 시중을 들어준다고 한들 이젠 그에게 그다지 큰 위로가 되지 못하였다.
그는 이배지인 흥해에 도착한 후 영욕으로 점철된 짧지 않았던 생애를 곱씹어 보며 회한의 나날을 오랫동안 보내야만 했다. 그가 유배지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3년 반 더 지난 63세 때의 일이었다. 그는 결국 인조 7년(1629) 2월부터 같은 왕 11년(1633) 5월까지 무려 4년 3개월 동안이나 유배생활을 했던 것이다.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4년 05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