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 기둥이 싸리나무…?

 

작지만 쓰임 다양한 싸리나무

옛날 어떤 이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금의환향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마을 고갯마루에 이르자 갑자기 말에서 내리더니 숲 속으로 들어가 싸리나무에 넙죽 절을 하더라는 것이다. 까닭인즉 싸리나무 회초리가 아니었다면 어찌 오늘의 영광이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싸리나무의 쓰임이 어찌 서당훈장님의 회초리뿐이었겠는가? 광주리, 채반, 삼태기, 바작, 병아리 가두어 기르는 둥우리, 빗자루 등 각종 생활도구에서부터 초가의 울타리로, 어살의 울타리로…(지금은 어살에 그물을 두르지만 나일론 그물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대나무나 싸리나무를 엮어 둘렀다.)

그뿐만이 아니다. 싸리나무는 단단한데다 곧게 자라기 때문에 화살대로, 또 나무속에 습기가 적고 화력이 강하기 때문에 횃불로도 많이 이용되는 등 그 쓰임이 다양했다.

이렇듯 우리조상들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나무였던 싸리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으로 우리나라에는 싸리, 조록싸리, 꽃싸리, 참싸리 등 대략 20여 종이 분포하며,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 건조하고 척박한 땅을 기름지게 만들면서 잘 자란다.

꽃은 여름부터 피기 시작하여 늦가을 서리 내릴무렵까지 오래도록 피며, 밀원이 되는데 꿀의 질도 매우 좋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잎과 가지를 목형 또는 형조라 하여 기침, 백일해 또는 오줌소태를 치료하는 약으로 쓰인다고 한다. 키는 다 자라봐야 2~3미터로 작게 자란다.

그런데 마곡사 대웅보전, 김천 직지사 일주문, 장수 신광사 명부전, 신륵사 극락전 등의 아름드리 기둥이 싸리나무 기둥이라고 한다. 또, 송광사의 명물 중의 하나가 쌀 7가마분(4천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다는 비사리 구시인데 이 구시 역시 싸리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어찌 된 영문일까? 어린아이 손목 굵기 정도에 그것도 밑 등걸은 고목이 되어 고사 직전의 싸리나무가 내가 본 싸리나무 중에서는 제일 컸었는데…, 아름드리 기둥감이라니…, 사람 발길 닿지 않는 깊은 산 속에서 몰래 몇 백 년 몇 천 년 아름드리로 자랐다는 것인지…? 오랫동안 가진 의문이었다.

식물학자들 얘기로는 “식물학적인 상식으로는 전혀 가능하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싸리나무로 알려진 송광사 구시나 절들의 기둥은 무슨 나무일까? 이 의문은 박상진 교수<경북대 임산공학과>의 글을 접하는 순간 풀리게 된다.

“이 의문을 풀어보기 위하여 현미경으로 세포모양을 조사해 보았다. 예상대로 싸리나무가 아니라 실제로는 느티나무였다. 느티나무가 왜 싸리나무로 알려지게 되었을까? 어디까지나 추정이겠으나 느티나무의 재질이 사리함 등 불구(佛具)의 재료로 매우 적합하여 절에서도 흔히 사용한 것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즉 사리함을 만드는데 쓰였던 느티나무를 처음에 사리(舍利)나무로 부르다가 발음이 비슷한 싸리나무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허철희(글쓴날  2006·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