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사 대웅보전 ‘귀면’

 

▲개암사 대웅보전은 건물 전체가 보물덩어리이다. 내부를 들여다보노라면 이게 법당인지 대형 공예품인지 착각하게 된다. 건물 외부도 그렇다. 그 중에서 대웅보전 전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마 밑에 2구의 귀면상이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아주 특이하다. 전체 모습이 네모에 가까운 조각품인데 시선을 보면 왼쪽의 것은 정면을, 오른쪽의 것은 눈을 흘겨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악한 무리를 경계하는 벽사의 화신

사찰 법당의 안팎에서 흔히 다리도 없고 팔도 없고 몸뚱이도 없는, 오직 얼굴만 보이는 물상을 만나볼 수 있다. 주로 법당 전면 문짝의 궁창이나 처마 밑, 기둥머리, 창방, 평방, 불단 등에 장식되며 그림이나 목각(木刻)의 형태로 되어 있다.

이 물상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눈은 반구형으로 돌출되었고 코는 중앙에서 넓은 자리를 차지하며 높이 솟아 콧구멍이 드러나 있다. 귀와 수염, 머리카락을 갖추고 있으며 눈 위쪽 좌우에는 큰 뿔이 솟아 있다. 입을 크게 벌려 커다란 치아를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아래위로 나 있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위압적인 인상을 준다.

전체적인 인상이 용과 비슷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용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연꽃이나 당초(唐草) 등을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 물상을 용으로 단정해버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용은 여의주 이외에 다른 것을 입에 물고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찰에 보이는 이 물상의 정체는 무엇일까? 인도 불교사원의 키르티무카에서 그 연원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시선으로 사찰을 지키는 벽사상

인도 고대의 신인 시바의 성소와 불교사원에 가보면 흔히 마주치게 되는 장식용 벽사의 탈이 있다. 그 모습은 우리나라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귀면상의 전체적인 인상과 매우 닮았다. 범어로 이것을 키르티무카(Kirttimukha)라고 하는데, 키르티(Kirtti)와 무카(mukha)의 합성어로 ‘영광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시바신의 무서운 측면을 표현할 것으로, 사악한 자를 물리치고 참배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인도 불교사원의 하나인 아잔타 석굴사원의 제1굴 정면 기둥 위와 왼쪽 회랑의 기둥에 키르티무카상이 새겨져 있다. 이 상은 우리나라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면상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실에 꿴 진주다발 같은 장식물을 입에 물고 있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이 키르티무카란 존재는 인도의 고대신화에서 태어났다.

인도 고대신화에 의하면 쟐란다라(Jalandhara)라는 거인 왕이 있었는데, 그는 다른 영역의 신들에 대항하여 그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한다. 쟐란다라는 극도에 달한 자존심으로 세계의 창자조이고 유지자이며 파괴자이기도 한 시바에게 도전하여 그를 굴복시키기 위해 전령을 보냈는데, 그 이름은 괴물 라후(Rahu)였다.

시바에게 전해진 최후통첩은 시바의 신부가 될 ‘온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포기하고 새 주인 쟐란다라에게 그 처녀를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순간 시바는 크게 화를 내며 응수하였다. 양미간의 점에서 무시무시한 힘을 뿜어냈는데, 그것이 폭발하면서 곧바로 끔찍한 사자머리 형상의 악마로 변하였다. 그 악마는 바로 시바가 다른 모습으로 화한 분노의 피조물이었다.

이 괴물의 놀라운 몸뚱이는 깡마르고 야위었으며, 쉽게 만족할 수 없을 정도로 굶주려 있었지만 강한 탄력과 불굴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목구멍에선 천둥같이 으르릉거리는 소리가 울려나왔으며, 눈은 불같이 타올랐고, 텁수룩한 갈기는 우주 공간에 널리 펼쳐졌다. 이 모습을 본 라후는 아연 질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괴물이 라후에게 덤벼들자 라후는 최후의 수단으로 전능한 시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자비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피신하였다. 이것은 매우 새로운 상황을 불러일으켰다 시바는 즉각 사자 머리 형상의 괴물에게 명하여 탄원자를 살려주라고 하였고, 괴물은 시바에게 자신의 굶주림의 고통을 가라앉혀줄 희생물을 달라고 강요하였다.

시바는 괴물에게 시바 자신의 손과 발을 먹으라고 제안했다. 타고난 굶주림에 지쳐 있던 괴물은 정신없이 먹고 또 먹었다. 손과 발을 삼켜버렸을 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를 삼키고도 그칠 줄을 몰랐다. 급기야 그의 이빨은 자신의 배와 가슴과 목까지 삼켜 결국 얼굴만 남게 되었다.

시바는 극에 달한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이 광경을 묵묵히 지켜본 다음, 자기 본질의 또 다른 일면이 생생하게 나타난 것에 만족하여 분노의 피조물에게 미소를 보내며 인자하게 선언한다. “이후로 너는 키르티무카로 알려질 것이며, 너는 나의 문에 영원히 머무를 것을 명한다. 너를 숭배하는데 게을리 하는 자는 결코 너의 은총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다.

키르티무카는 애초에 시바 자신의 특별한 상징이었으나, 시바사원의 상인방 위에 걸어두는 전형적인 장식물이 되었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불교에 수용되어 불교사원의 수호신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연꽃이나 풀입을 입에 문 귀면

우리나라 찰의 귀면상을 일명 ‘낯휘’라고도 한다. ‘낯’은 얼굴의 또 다른 말이며, ‘휘’(暉)는 몇 가지의 색깔 띠로 나누어 채색한 것을 가리킨다. 한편 현존하는 우리나라 사찰의 귀면상은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분류된다. 하나는 입에 아무것도 물고 있지 않은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연꽃이나 풀잎 등을 입에 물고 있는 얼굴이다. 비율로 보면 전자가 주종을 이루고, 후자는 전자보다 적지만 오히려 이것이 귀면상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다양한 시선으로 사찰을 지키는 벽사상

귀면상은 그림뿐 아니라 조각상으로 제작되어 법당을 장식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부안의 개암사 대웅보전의 귀면상이다. 개암사에는 대웅보전 전면 처마 밑에 2구의 귀면상이 있는데, 전체 모습이 네모에 가깝고 모두 뿔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시선을 보면 왼쪽의 것은 정면을, 오른쪽의 것은 눈을 흘겨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참고문헌 허균의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4년 03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