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동해의 낙산 일출과 서해의 변산 낙조를 일대 절경으로 쳤다. 변산8경 중의 1경으로 ‘서해낙조’를 꼽았음도 물론이다. 노산 이은상은 아름다운 변산의 낙조를 보고 이런 시를 지었다.
변산의 마천대에 오른 듯 내려
저분네 바쁜행차 어디로 가오
물속에 불구슬이 빠진다기에
월명암 낙조대를 찾아간다오
/노산 이은상
또, 육당 최남선은 1900년대초에 변산을 여행하고 기행문을 남겼다. 그는 영전으로 해서 버드내, 환의고개를 지나 내소사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원암고개를 넘어 직소폭포, 실상사를 둘러본 후, 서해낙조를 보기 위해 실상사 뒷등을 타고 낙조대에 올랐다. 그러나 구름이 끼어 변산 낙조의 황홀함도, 한식 사리때가 아닌데다 날씨마저 쌀쌀해 조기잡이 배들의 해상 어화도 못보고 말았던 것 같다.
다음은 육당의 ‘심춘순례’ 내용 중, 변산의 서해 낙조에 대한 감회가 담겨있는 부분만을 옮겨왔다.
…전략…
낙산의 일출과 월명의 낙조는 반도 동서안에 있어 일대 절경으로 치는 것이요, 이른바 변산8경 중에서도 가장 기장한 줄로 칭허되는 것이니 공기의 관계로 변화가 무궁하여 만일 그 만판 조화 부리는 날을 만나기만 하면 인간의 구경으로는 다시없는 미묘 웅대를 맛보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날이 그리 많치 못함으로 좋은 낙조를 구경하려면 일부러 하늘이 허락하기까지 몇일이든지 묵어야만 한다는데 내 욕심은 서울서 떠날 때부터 첫 장중에 알성급제는 딸기 따듯하여 아침부터 날이 좀 시원치 아니하여도 설마 저녁때까지야 상품쾌청이 아니 되랴 하였더니 때는 이미 일말이 되었건마는 수증기의 포화가 조금도 늦구어지지 아니하여 아무리 하여도 天寵이 박하신 모양이다. 만인계출통장(萬人契出桶場)에 가는 마음으로 암자 뒤의 낙조대에 올랐다. 우선 들러보니 뒤에는 고부의 효심산을 비롯하여 十分 변산이 十二分까지 죄다 보이고 앞에는 북의 계화도로부터 고군산의 무더기 섬과 위도의 덩어리 섬과 형제의 쌍둥이 섬이 석가산처럼 내려다 보이는 밖으로 바다! 구름과 입맞추는 바다가 낙조 없이라도 이미 흉금을 한번 탕척(蕩滌)하여 낸다.
꺼지려는 촉화가 밝아지는 끠끠으로 별안간 환한 기운이 어렴풋한 西天으로서 번개같이 쫙 퍼진다. 아무리 頑惡한 구름도 최후의 악쓰는 광휘를 가리다 못한 것이다. 욱일이 솟아오르는 동천은 수선수선하여 큰 난리가 쳐들어 오는 것 같지마는 夕日이 내려가는 西雲은 뭉수레 부스스하여 선지에 수묵이 스며 나가는 것 같다. 물붓듯이 한번 지나간 구름 밖으로 잠자는 광선이 부스스 기동을 하면서 하늘과 바다를 한데 어울려서 응달에서 익은 목과(木瓜)빛을 물들여 낸다. 누르다면 엷고 붉다하면 짙다. 빽빽한 캠퍼스에 진채 바른 서양화가 조일의 기분이라 하면 부드러운 화선지에 담채를 슬쩍 얹은 것이 석휘(夕暉)의 정미라 하겠다. 分分秒秒로 시네마 필름처럼 변해가는 광선은 무엇이라는 것보다도 만법무상의 대연설 그것이다. 울고 싶은 정, 소리 지르고 싶은 정, 뛰어나가 덥썩 껴안고 싶은 정이 그대로 북받쳐 나온다. 보송보송한 날의 낙조는 내가 어떠한 줄을 모르지만 약간 운애를 낀 낙조 그대로에 나는 말할 수 없는 느껴움을 자아내었다. 무엇이라 할까? 무엇이라 할까? 그렇다! 의성태궁(疑城胎宮)을 격(隔)하여 건너다 보는 태극세계가 저러한 것이겠다. 더 통속으로 말하면 뿌연 안경 속으로 요지명(瑤池冥)을 구경하는 셈이라고도 하겠다. 염막(簾幕)을 격하여 보는 미인이 더욱 멋있는 것이라 하면 오늘 낙조는 정히 거기 해당하는 것이다. 쨍쨍한 낙조는 알지도 못하지만은 뭉싯한 낙조 그것도 나는 좋다! 나는 좋다! 이렇게라도 월명의 낙조를 놓치게 아니 됨이 다행이라 하는 것보다는 이만한 낙조를 내게 보여주시는 은총을 햇님 하느님께 고마워 하였다.
기름 바른데 미끄러지듯 술술 내려간다. 느리게 굴러가는 탱크의 보법이다. 누렁, 朱, 紅, 어디가 경계랄 수 없는 채로 삼색 삼층진 구름이 부드럽고도 무서운 대원경을 행여 다칠세라 에워싸고 내려간다. 누렁은 느는 듯 줄고 紅은 주는 듯 느는 동안에 기장(奇壯)이 비장(悲壯)으로, 비장이 처장(凄壯)으로 우리의 눈앞에 말할 수 없는 적막이 뭉게뭉게 솟아 나온다. 눈썹만큼 남았던 호(弧)가 언뜻 마져 보이지 아니하자 축축한 나무 때는 연기 같은 것이 一字로 가로 건너 지른다. 사라쌍수(娑羅雙樹)에 세존이 입멸하시고 세계가 인제는 무불장암(無佛長闇)에 울게 되었다. 찬바람이 이마를 쓱 스친다. 눈물이 핑그르 돈다. 어허! 소랑(昭朗)하던 夕紅이 손바닥 뒤집히듯 황혼하고 교대하는 대목의 비량미(悲凉味)를 누구더러 무엇이라고 말할거나, 돌아서는 줄 모르게 발길이 도는 곳에 어느새 보름달이 높다랗게 떴다. 눈물도 거치고 풀렸던 맥이 고대 불뚝 어릴 듯 하였다.
맑았던 물 하늘에 불을 왼통 놓으셔도
발길만 돌으시면 자최마져 없을 것을
저렇듯 버둥거리심 나는 몰라 합네다.
어둡고 치우실 일 알은체 말양이면
내 어이 손 떼기에 착 살을 부리리만
왼 하루 쪼이던 정을 나 못잊어 하노라.
저 해가 진다하야 눈물지고 돌아서니
어느덧 돋은 달이 벌써 나를 기다리네
보낸가 맞었는가를 뉘야 안다 하리오.
한식 사리의 조기 잡는 배가 많을 것 같으면 이 곳 해상의 또한 장관으로 치는 어화(漁火)까지 보려 하였더니 바람이 차므로 배가 한 척도 나오지 아니 하였다. 내려오는 길에야 보니 낙조대 뒤에 나무 불태운 등걸이 많이 있기에 물은 즉 지난해 가뭄에 기우한 것이라 하며 가물면 여기 와서 화톳불을 놓아서 천제를 지내는 법례라 한다. 쌍선봉에는 法王, 鬼王 등의 옛 이름이 있고, 이 법은 금강산의 法起, 지리산의 法雨에서 보는 것 같이 “밝”의 변형일 것인 즉 쌍선이 변산에 있는 고신도의 최고대상임은 대개 의심 없는 일이요, 그러면 그것을 가장 잘 바라보이는 낙조대를 최고 제단으로 씀이 또한 당연할 것이며, 더욱 기우 같은 제는 용신에도 있는 만큼 바다를 아울러 바라보는 이곳이 가장 적당한 지성터가 될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슬렁어슬렁 내려오노라니까 모애(暮靄)에 쌓인 遠近衆巒이 마치 엷은 안개에 머리만 보이는 해상군도와 같다. 어두어 가는 저녁보다 밝아오는 아침이 갑절 미관을 바칠 것인 즉 월명암이 낙조와 한가지 조애(朝靄)의 승지로 이름있는 소이를 알겠다. 암(菴)에 돌아와서 저녁을 마치고는 부설전의 고사본을 떠들어 보았다. 거기 나오는 부설, 묘화, 등운, 월명 등 명목에 드러난 고유신앙대 신래불교의 갈등적 일면을 생각하는 중 드는 줄 모르는 잠이 어는덧 새벽 쇠북을 놀라게 되었다.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3년 0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