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낮은 백산이 이렇게 높은 줄을 누가 미처 알았으랴. 사방이 눈앞에 환하기가 지리산보다 환하고 태백산보다 더 환하구나. 그 까닭이야 너무도 명백하니 이 산이 홀로 들판 가운데 있기 때문이로다. 이 세상에 사람이 산천의 수목처럼 가득하되 모두 그만그만 키가 같은지라 서로가 서로에게 묻혀 내려다보는 사람이 없더니 드디어 한 사람이 우뚝 솟아 세상을 내려다 보거늘, 그가 그렇게 우뚝한 까닭은 다만 그가 한 자 높은 돌 위에 섰음이로다. 그 한 자의 돌을 분별하는 사람이 없다가 이제 비로소 눈이 뜨인 사람이 있어 여기 백산 위에 섰으매 그의 눈에는 온 세상이 이 들판처럼 한 눈에 환하리라. 백산, 그 이름이 백산일 줄을 내 이제야 비로소 알았노라. 어느 것도 아니던 그냥 백산이 마침내 주인을 만났으니 천변만화 그 조화가 어찌 무쌍하지 않으리오. 바람을 부르면 바람이 일 것이요, 비를 부르면 비가 올 것이니, 동국에서 제일 낮은 이산이 제일 우뚝한 제 이치를 이제야 비로소 찾지 않겠는가.
– 송기숙의 장편 소설 <녹두장군>에서
남접의 서장옥(徐璋玉)이 백산으로 전봉준을 찾아와 단둘이 들판을 바라보며 고부봉기를 전국으로 확대할 것을 다짐하며 한 말이다.
1894년 1월 11일 고부 관아를 점령한 전봉준과 농민군은 고부군 마항에서 보름 가까이 머문 다음 백산으로 옮겨 사령부라 할 수 있는 창의도소(倡義都所)를 설치하고 창의문을 발표하니 인근 고을에서는 물론 전라도 거의 전역에서 농민군 3만여명이 구름처럼 백산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손에 손에 죽창을 들고 있어서 서면 흰 옷 입은 농민군들로 온 산이 하얗게 뒤덮여 백산(白山)이 되었고, 앉으면 죽창의 숲이 솟아 죽산(竹山)이 되었다.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에 있는 백산은 해발 47미터의 낮은 산이다. 그런데 이 산은 호남평야 한가운데 바가지를 엎어놓은 형국으로 홀로 솟아있어 이 곳에 오르면 옛날 군현으로 김제, 만경, 금구, 태인, 정읍, 흥덕, 부안, 고부 등 8개 고을을 고스란히 바라볼 수 있었다.
바로 옆으로는 동진강이 흐르는데 백산 바로 밑에까지 조수가 드나들었다. 삼국시대 당시에 백산은 바로 해안가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백산은 동진강을 거슬러 내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을 지키는 군사적 요새였던 것이다. 소정방이 1,900여척의 병선을 이끌고 쳐들어와 뭍으로 오른 곳 중의 한 곳이 바로 이 백산이었다.
1998년 5월 7일 정부는 백산 성지를 사적 407호로 지정하였다. 이곳은 또한 어망추, 토기 등의 선사시대 유물도 발견되어 고고학적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허정균의 ‘주류성 가는 길’에서)
글쓴이 : 부안21
작성일 : 2003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