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산바다 수호신 ‘개양할미’

▲적벽강 사자바위. 금방이라도 바다에 뛰어들 듯한 사자형국이다.

 

칠산바다 수호신 ‘개양할미’

변산반도는 노령산맥이 서해를 향해 달리다가 우뚝 멈춰 선 형국으로 서해상에 깊숙이 돌출되어 있다. 이곳 변산반도 서쪽 맨 끝지점(변산면 격포리 죽막동) 해안가 높은 절벽 위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 수성당이 있다.

이 당집은 女海神 개양할미를 모신 곳이다. 개양할미를 서해를 관장하는 聖人으로 여겨, 水聖을 모신 堂집이라고 부르게 된 게 아닌가 한다. 전설에 의하면 개양할미는 딸 여덟을 낳아 칠산바다 각지에 시집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았다하여 수성당을 구랑사(九娘祠)라고도 불렀다 한다. 그리고 개양할미는 키가 매우 커서 굽나막신을 신고 서해를 걸어 다니면서 수심을 재고, 풍랑을 다스려 어부들이나 이곳을 지나는 선박들을 보호했다고 한다.

언제부터 이 당집이 있어 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전의 건물 상량에 <道光 三拾年 庚戊 四月二十八日 午時 二次上樑>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1850년 훨씬 이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92년 전주박물관에서 수성당 주변을 발굴하여 이곳이 선사시대이래로 바다 혹은 해신에게 제사를 지내왔던 곳(죽막동제사유적)임을 확인하였는데, 그렇다면 수성당의 연원은 훨씬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 않겠는가?

얼마 전까지 만해도 이 지역 사람들은 매년 음력 정초에 수성당에서 제를 성대하고, 경건하게 지냈다고 한다.

▲수성당은 사자 잔등에 있다.

[전설1] 개양할미와 수성당

개양할미는 칠산바다를 관장하는 해신이다. 아득한 옛날 적벽강의 대막골 뒤 ‘여울굴’에서 개양할미가 나와 바다를 열고, 풍랑과 깊이를 조정하여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풍어를 관장하여 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개양할미를 물의 성인으로 높여 수성할미라 부르고, 여울골 위 칠산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절벽에 구랑사를 짓고 모셔왔는데, 이는 개양할미가 딸 여덟을 낳아 위도, 영광, 고창, 띠목 등, 칠산바다 요소에 보내 바다를 지키게 하고, 개양할미는 막내딸을 데리고 구랑사에 머물며 서해바다를 총괄했다고 한다. 지금은 수성당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그런 개양할는 키가 어찌나 크던지 굽나막신을 신고 바다를 걸어다녀도 버선도 젖지 않았다 하며, 다만 곰소의 ‘계란여’에 이르러 발이 빠져 치마까지 젖었는데, 화가 난 개양할미가 치마에 돌을 담아다 계란여를 메웠다고 한다. 지금도 깊은 물을 보면 ‘곰소 둠벙 속 같다’는 속담이 전해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음력 정월 보름이면 죽막동을 중심으로 한 주변 마을 어민들이 무사태평과 풍어를 비는 수성당제를 지내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맥이 끊긴 상태다./출처:부안군지

[전설2] 청동사자와 변산 호랑이

변산을 장광팔십리(長廣八十里)의 겹산이라 하여 소의 쳔엽 속처럼 겹겹의 험산이라 말한다. 그래서인지 변산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았으며, 변산호랑이는 특히 영악했다고 한다. 변산에 호랑이가 많아지면 피해가 많아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았는데, 이 호랑이를 칠산바다를 관장하는 개양할미가 다스렸다는 것이다. 격포의 채석강 북쪽 끝에 청동으로 만든 큰 사자가 있어, 변산에 호환으로 인한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면, 개양할미가 청동사자 머리를 남쪽의 고창 선운산 쪽으로 돌려 선운산 쪽으로 쫒고, 또 선운산 쪽이 시끄러우면 다시 청동사자 머리를 변산 쪽으로 돌려가며 호랑이의 극성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양할미는 산중의 왕이라는 호랑이까지도 다스렸다 하는데, 이 청동사자가 언제 없어졌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출처:부안군지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4년 04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