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도롱뇽 (개구리강 도롱뇽목 도룡뇽과 Hynobius n. nebulosus) 어릴적…, 꽁꽁 얼어붙은 대지가 기지개를 켤 무렵, 마을 어른들이 몸에 좋다며 계곡의 물흐름이 완만한 지역이나, 물웅덩이에 흩어져 있는 도롱뇽 알을 한 입에 털어 넣는 것을 보았다. 그럴 때마다 궁금했던 것은, 도롱뇽은 도데체 어떻게 생겼을까? 도롱뇽 알은 많이 봐 왔어도 정작 도롱뇽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도롱뇽은 유생 때에는 연못이나 물웅덩이에서 지내고, 자라서는 허파가 생겨 육지의 숲 속 습기가 많은 돌 밑이나 낙엽 밑에서 사는데, 주로 밤에만 활동하므로 사람의 눈에 …

키처럼 생겨서 ‘키조개’

  키조개(Atrina pectinata, 키조개과) 는 우리나라 연안에서 나는 조개류 중에서는 가장 크다. 큰 놈의 경우 30센티미터 이상까지도 자란다. 조가비의 빛깔은 회록갈색 또는 암황록색으로. 모양은 꼭지(각정, 殼頂)가 매우 좁고 아래로 점점 넓어진 삼각형이어서 마치 곡식을 까부르는 키를 닮았다. ‘키조개’라는 이름도 키처럼 생겨서 얻어진 이름이다. 부안이나 김제, 고창 지역에서는 ‘치조개’라고 부른다. 조가비는 얇고 겉면에 성장맥과 방사륵이 있다. 자웅이체의 난생으로 산란기는 7~8월이며, 발생하여 15~20일 동안은 부유생활을 하다가 곧 족사(足絲)를 내어 부착생활에 들어간다. 부착기간 1~2개월이 지나면 조간대에서 수심 300m까지의 진흙에 뾰족한 꼭지 부분을 박고 …

눈꿍의 숭어회 맛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몰러…

  가을부터 이듬 해 봄까지 변산반도 연안에는 숭어떼가 몰려온다. 언젠가 바닷가 절벽 위에서 새까맣게 몰려있는 숭어 떼를 본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 이야기를 계화도 사는 한 친구에게 했더니 ‘잡지 그랬어요?’ 하는 것이었다. 맨 손으로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숭어란 놈이 얼마나 의심이 많고 민첩한 놈인데…, 정약전은 그의 자산어보에서 숭어를 이렇게 기록하였다. ‘큰 놈은 길이가 5~6자 정도이며 몸이 둥글고 까맣다. 눈은 작고 노라며, 머리는 편편하고 배는 희다. 성질은 의심이 많고 화를 피하는 데에 민첩할 뿐 아니라 잘 헤엄치며 잘 뛴다. 사람의 …

계화도 ‘백합’의 운명

  백합은 하구역의 고운 모래펄갯벌에서 잘 자란다. 그러기에 전국 유일의 강다운 강인 만경, 동진강 하구역인 김제의 거전갯벌과 부안의 계화도갯벌에만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두 강을 똥구멍 틀어막듯이 막기 시작하자 이 지역의 백합들은 몸부림치기 시작했고, 33킬로의 방조제 중 4.5킬로 정도만 남겨놓은 지금 백합은 멸문지화 직전에 놓여 있다. 작년(2002년), 계화도 주민들은 그래도 손을 놓을 수 없어 걧벌에 나가 ‘그리질’을 해보지만 매번 뱃삯도 못 건진 채 빈구럭으로 돌아와야 했다. 지금은 아예 갯벌에 나가지 않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그러자 백합의 고장인 부안시장에서도 …

[이용범 연작 시]지운 김철수7-고문한 자리에 고자리가 슬고…

    “조선 독립운동에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김철수는 1928년에 검거되어 8년 8개월 동안 형무소에 있다가 만기 출소한 뒤, 1940년 여름 다시 수감되어 해방될때까지 감옥생활을 했다. 항소하자는 권유를 뿌리친 것은 제국주의 일본의 법률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에서였다. 고문으로 실신하여 정신을 잃을 정도였지만 민족의 독립을 위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또한 그는 국내와 일본, 만주, 중국, 소련 등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사회주의자였으며, 민족의 독립이라는 대의명분 아래서는 민족운동가들과의 협조체계를 긴밀히 했었다..”(정재철의 ‘민족의 하나됨을 위한 고독한 삶’ 중에서) 지운 김철수 · 7 조선공산당 재건과 독립운동에 몸 …

[이용범 연작 시]지운 김철수6 – “풍설흑야風雪黑夜에 김동지였지!”

    “김철수는 자신이 사회주의 사상을 갖게된 것은 천성적으로 가난한 사람과 약자를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고, 특히 걸인이나 아려운 자들을 보면 도와주는 집안 고모의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하였다. 이러한 성향은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반쪽의 독립과 불쌍한 자들의 계급해방을 위한 행동으로 나타났다.”(정재철의 ‘민족의 하나됨을 위한 고독한 삶’ 중에서)   지운 김철수 · 6 그는 천상 동지였습니다. 흩날리는 눈발 헤치며 비밀리에 서울가다 이리역에서 환승換乘하는 사이 옛 동지 임혁근을 찾았습니다. 늙은 아버지 돌보고 단칸 방에서 취위에 떨며 굶주린다는 소식 듣고 담요 한 장 가지고 …

[오! 주류성-5] 주류성(周留城)과 백강(白江)은 어디인가?

    662년 총력을 기울인 두량이성(豆良伊城) 싸움에서 백제부흥군한테 패한 신라는 타격이 컸다. 당군이 백제부흥군에 포위되어 곤경에 빠진 틈에 독자적으로 백제부흥군 세력을 발본색원하려던 태종무열왕의 야망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패전 충격으로 인해 태종무열왕은 통일의 웅지에 불을 당겨 놓고 아직 그 귀결을 보지 못한 채, 태자 법민에게 마무리과업을 물려주고 죽고 만다. 이처럼 백제부흥군은 두량이성 싸움 승리로 기세를 떨쳐 백제 부흥도 눈앞에 두는 듯 했으나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복신이 모반하지 않을까 의심한 풍왕은 복신을 죽이는 자중지란에 빠지게 된다. 이때의 상황을 <구당서>백제전 용삭2년조의 …

[오! 주류성-4] 豆良伊城은 부안에 있다

    전영래 박사는 “고사비성(古沙比城)은 궁색스럽게 5만분의1 지도상에서 찾아낸 김제군 진봉면의 古沙里가 아니라 百濟五房城 중의 하나인 中方古沙夫里城으로 오늘의 고부(古阜)임을 밝혔다. <삼국사기> 지리편에도 ‘古阜郡 本 百濟古沙夫里郡 景德王 改名今因之…(고부군은 본래 고사부리군인데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주서(周書)’.‘북사(北史) 등의 백제전에는 국내를 오방(五房)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했는데 당 고종대에 엮어진 ’한원(翰苑)(蕃夷部 百濟)에 인용된 ‘괄지지(括地志)’에는 ‘房은 중국의 도독(都督)과 같으니라’하고 다음과 같이 오방을 설명하고 있다. “國南二百六十里에 古沙城이 있는데 城房百五十里步요 이는 그 中房이라 房은 兵千二百人을 거스리며 國東南百里에 得安城이 있는데 城方은 一里요, 此其東方이라. 國南三百六十里에 卞城이 있는데 …

[오! 주류성-3] 두량이성(豆良伊城)은 어디인가?

    660년 백제 도성이 함락되자 소정방은 의자왕과 왕자 융 등 포로들(구당서 58명, 유인원의 平百濟碑에는 7백여명,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장사 88명, 백성 12,807명, 김유신전에는 왕과 신하 93인 군졸 2만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을 당에 끌고 가서 고종에게 바쳤다. 당 고종은 의자왕 일행을 접견했으나 죄를 묻거나 벌을 주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 ‘금자광록대부위위경’이란 벼슬을 주어 예우했다. 그러나 며칠 뒤 의자왕은 억울하고 분통터지고 한 많은 망국의 설움을 감내하기 벅차 이국땅에서 허망하게도 지존의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렇다고 백제가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었다. 투항을 거부한 백제군은 …

[오! 주류성-2] ‘장패들‘과 ’신라28장군 묘’

    상서면 소재지인 감교리 일대의 들판에는 전쟁과 관계되는 지명이 많다. ‘장밭들(長田坪) 또는 將敗坪)’, ‘신라 28장군 묘’, ‘대진터(對陣터)’, ‘되야지터(退倭地터)’ 등이 그것이다. ‘되야지터’는 정유재란 때 왜군을 물리친 연유로 유래된 지명이므로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장밭들 또는 장패평’, ‘신라 28장군 묘’, ‘대진터’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장밭들(長田坪)‘을 살펴보자면 ’將‘자가 ’長‘자로 변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싸움이 벌어졌던 곳에서 연유된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장패평(將敗坪)‘은 너무도 확연하다. 문자 그대로 ’장군이 싸움에서 패하였던 들판‘이란 뜻이다. 그리고 청등리 개암사 입구 동쪽 도로변에는 19기의 고인돌이 몰려있다. 원래 …